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자처하며 지배 권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제국의 기독교는 지배 계급에 의해 순치된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런 기독교를 향해 내세를 담보로 피지배계급의 현실 변혁 의지를 말살하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일갈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당연하고도 정당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제도 기독교는 힘 있는 자, 권력의 편에 서서 억압받는 피지배계층을 상대로 한 지배자들의 수탈을 눈감아주며 동조하고 심지어 선동하며 부채질하기까지 했던 흑역사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숭실대 김회권 교수(기독교학과)는 최근 펴낸 신간 『자비 경제학』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오해는 기독교 신앙은 내세를 담보로 현재의 악과 고난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마비시키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보는 칼 마르크스의 관점"이라며 "마르크스가 본 기독교는 당시 독일과 유럽 중간층 시민들의 사교 동아리로 전락한 제도권 기독교였고 당연히 성경에서 엄청나게 이탈되어 변질된 기독교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회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칙령 이후 사회 상층부 구성원들에게 친근하고 우호적이며 제국에 순치된 기관으로 전락했다"며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라는 책 결론부에서 313년 이전의 교회만이 야생적이고 순수한 갈릴리발 기독교를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 후로 전개된 교회사의 여러 시대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민중의 아편처럼 기능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민중의 아편' 역할을 하는 기독교는 왜곡된 기독교라고 규정한 김 교수는 "신구약 성경은 세계변혁적이고 세계갱신적인 거룩한 영의 쉼 없는 열정을 증언한다"며 "피억압자의 대표인 '가난한 자들'을 해방하고 속량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가 안식일, 안식년 그리고 희년사상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안식, 안식년, 희년은 창조주 하나님의 항구적인 관심사다"라고 전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지배 권력과 결탁하며 지배 이념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억업자의 해방에 있음을 확인해 주는 저서로 평가된다. 약자의 편에 서기 보다 힘 있는 자들 편에 서서 정치 권력과 유착 의혹을 사고 있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안타깝게도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한편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노래하는 안식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을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한 김회권 교수(숭실대 기독교학과)의 신간 『자비 경제학』 북콘서트가 희년책읽기 모임 주관으로 오는 20일부터 내달 11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에 진행될 예정이다.
『자비 경제학』은 경제적 불평등, 저성장 사회, 공정 가치의 훼손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되는 오늘날 한국사회 앞에서 공평과 정의의 길을 구약성서에서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모세오경, 십계명 등에 등장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무한 경쟁의 경제학'이 아닌 '회복을 위한 하나님 나라 경제학', 즉 '자비 경제학'의 핵심 가치와 원리를 제시했다. 이 밖에 한동안 지구촌을 들썩이게 만든 기본소득 문제를 구약성서에 비추어 판단해 흥미를 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