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부활주일설교] "갈릴리로 가라"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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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마태복음 28:1-10, 누가복음 24:36-43, 요한복음 11:25-26

유월절 명절이 지나고 날이 밝았습니다. 잔치는 끝났습니다. 별다른 폭동 사태가 없어서 적잖이 기분이 좋았던 총독 빌라도는 서둘러 예루살렘을 빠져나와 자신의 안락한 별장이 있는 가이사랴로 돌아갔습니다. 두둑한 성전세금을 걷은 대제사장 가야바도 오랜만에 늦잠을 즐겼습니다. 부지런한 율법학자들은 아침 일찍부터 책상에 앉아 말씀 연구를 시작했고, 세리들은 오늘도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유월절 대목으로 큰돈을 번 예루살렘 상인들 역시 벌어들인 돈을 단단히 갈무리하여 간직할 곳을 찾았습니다. 포도원을 가꾸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밀밭에 나갈 올리브 농장의 일꾼들도, 그리고 들판의 양치기들도, 늘 그랬던 것처럼 아침 끼니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쫓기듯 일터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일주일 전 예루살렘으로 행진했던 무리들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들 틈에 숨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모두가 돌아갔습니다. 자기들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2천 년 전 그해 니산 달 하순, 서력으로 주후 33년 4월 5일 일요일 아침, 유대 땅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엄청난 사건을 이런 평범한 일상의 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천 년이라는 시간의 장벽을 넘어, 그리고 팔레스타인이라는 공간의 장벽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다가온 이 엄청난 사건은 모두가 되돌아간 일상의 한 가운데서 터져 나왔습니다. 사건의 시작을 처음 알린 것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귀신 들렸었고, 자신의 삶과 존엄을 빼앗긴 채 인간 이하로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난 그분에 의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그분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큰소리치던 남자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골고다 언덕까지, 최후의 순간까지 그분의 곁을 지켰습니다. 절망의 한복판에서도 그들은 안식일 후 첫 해가 돋기를 기다렸습니다. 밤새 뜬눈으로 기다렸습니다. 어렴풋이 날이 밝자 여인들은 그분의 시신에 향료라도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서둘러 장사 지내느라 아무 것도 못 해드렸기 때문에 죄송했습니다. 가는 길에 로마의 군인들이 아직도 지킬까 봐 겁이 났습니다. 누가 그 육중한 무덤 돌문을 굴려 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길을 나섰습니다.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그분에 대한 간절함이, 그리고 그분에 대한 사랑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게 했습니다.

무덤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부활의 첫 소식을 들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는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주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덤에 머물러 새벽을 기다리시다가 서둘러 길을 떠나셨습니다. 다시 갈릴리로 가셔습니다.

단과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에게 주어졌던 땅, 다윗에 의해 점령되었다가 주전 73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했던 땅, 마카비우스 왕조 때 잠시 독립했다가 헤롯 시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유대화가 시작된 땅, 유대인들에 의해 개처럼 취급받았으나 강인하고 소박한 기풍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노동의 길을 걷고 있던 땅, 농부와 어부와 목동들의 땅,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으로 로마 황제를 도저히 '키리오스'(주님)이라 부를 수 없었던 땅, 그리고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 혹은 '갈릴리의 예수'라 불리게 했던 땅, 그가 오면 모든 사람이 병자들을 이끌고 나왔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말씀을 듣고 가슴 설레며 감격했던 땅, 그가 귀신을 내쫓고, 중풍병자를 고치며, 앉은뱅이를 걷게 했던 기적의 땅, 5천 명을 먹이고, 풍랑을 잠재우고,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외친 바로 그 땅, 물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아 죽음의 바다가 된 사해(死海, Dead Sea)와 달리 늘 흘려 내보내기만 하는 갈릴리 바다(호수)를 낀, 그래서 삶의 근원이자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땅, 메시아인 예수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가슴 깊은 곳에 간직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땅, 하나님의 나라를 열린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가난한 사람들이 얽혀 사는 땅, 성전 사람들처럼 종교의 이름으로 살찌지 않았고, 예루살렘 사람들처럼 로마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바리새 사람들처럼 권위와 가식으로 남을 정죄하지도 않았고, 사두개인들처럼 귀족이 되어 경제를 독점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이 함께 살던 땅, 남을 괴롭힐 생각은 없었지만 야훼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던, 불같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땅, 바로 그 땅 '갈릴리'(Galilee)로 부활하신 주님은 홀연히, 먼저,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나셨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거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마가 16:6-7) 교우 여러분, 이것이 복음서가 전하는 최초의 부활소식입니다. 주님은 또 어디를 이리 서둘러 가시는 걸까요?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일주일 전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베다니에서 감람산 등성이를 넘어 기드론 골짜기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군사적 메시아'가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시면서 주님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길었던 한 주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끝까지 주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왜 이리로 가십니까? 이 길이 어떤 길인지 몰라서 이리로 가십니까? 정녕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가셨습니다. 홀로 가셨습니다. 이 여정은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주님을 팔아 배신했고,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길인 이 길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거기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헛되이 봉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무덤에 머무시며 새벽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습니다]."(찬송가 160장)

주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제자들의 얼굴도 안 보시고 서둘러 새벽 길을 떠났습니다.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뵈려면 갈릴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사역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앞서 가신 갈릴리로 가기 위해 오늘 우리는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비행기를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갈릴리'는 모든 곳에 있습니다. 나의 슬픔이 있는 곳에, 이웃의 아픔이 있는 곳에,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과 어린이의 권리가 부정되는 곳에, 미사일과 탱크에 쫓겨 난민들이 방황하는 곳에, 억압과 차별이 있는 곳에,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생명이 죽어가는 곳에 '우리의 갈릴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낙심하여 엠마오로 낙향하지 마십시오. 낙향하여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갈릴리 호수에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주님은 지금도 갈릴리 호수 어느 편에선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갈릴리로 가십시오. 오늘의 갈릴리, 나의 갈릴리, 이 시대의 갈릴리로 가십시오. 갈릴리 호숫가에서 나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시며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두 팔 벌려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아멘.

기도합시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무덤을 향하고 / 예루살렘으로 향하려던 사람들에게 / 갈릴리로 발길을 돌리게 하신 예수님. // 부활하시는 순간까지도 / 온갖 영광과 화려한 예루살렘, / 요란한 도시에서 당신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 작고 보잘것없는 저희들의 삶터, /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소박하게 드러나셨습니다. // 혹시라도 제자들이 / 화려한 성전에서 당신을 찾을까 봐 / 갈릴리에 나타나신 예수님, // 저희들도 부활하신 당신을 만나기 위해 / 어서 갈릴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작자 미상, <어서 갈릴리로 돌아가게 하소서>.) 생명의 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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