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괄목상대(刮目相對)

한문덕 목사(생명사랑교회 담임)

생명사랑교회 한문덕 목사가 다음주부터 안식년에 들어감에 따라 향후 6개월 동안은 설교 원문 게재가 불가한 점 알려드립니다.- 편집자주

hanmoonduck
(Photo : ⓒ생명사랑교회 홈페이지(https://www.agapao-zoe.com))
▲생명사람교회 한문덕 담임목사

성경본문

역대지하 29장 3-11절, 시편 101편 1-8절, 누가복음서 14장 15-24절

[안식년/재연수년]

여러분 모두 알고 계시지만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교회 내 자치 규약인 정관이 있습니다. 정관을 보면 생명사랑교회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운영되는 교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작으나 건강한 교회', '평신도 중심의 사역', '선교 사명에 충실한 교회'라는 세 가지 목표는 우리 교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며, 목사와 장로 임기제, 부교역자의 임기 보장, 투명한 재정 사용 및 공개, 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목회운영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사회 선교 지향 등은 우리 교회 정관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목사 임기제에 따라 담임목사는 6년 6개월을 목회하고, 6개월의 안식년을 가지며, 교회는 안식년 개시 후 2개월내에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담임목사의 연임을 결정합니다.

제가 부임하여 목회한 지 어느덧 6년 6개월이 되었고, 오늘이 안식년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설교가 됩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6개월의 안식년 기간 동안 무슨 계획이 있냐고 물으십니다. 한편 노회에서는 안식년을 재연수년이라고 부릅니다. 재연수의 시간을 갖게 되는 목사는 노회에 목사재연수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거기에 연수 기간과 연수하는 곳, 연수계획, 연수 기간에 시무하는 교회의 예배 인도는 누가 하는지를 써야 합니다.

제가 안식년을 갖는 동안 육성한 목사가 대리 당회장이 되어 예배 인도를 합니다. 설교는 부교역자들과 우리 교회의 협동목사이신 한세욱 목사가 번갈아 가며 하고, 평신도들도 참여하고, 외부 강사들을 초청합니다. 외부 설교자로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의 이영미 교수님을 비롯하여 생태환경, 장애인, 교회 개혁, 이단 문제 등의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오시게 됩니다. 신앙 영상 자료들은 계속 이어지는데, 사도신경 강의는 50강으로 종강하고, "명랑 목회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태복음서 강해와 생명사랑 5분 말씀 묵상은 지속됩니다. 이밖에 월요아침묵상, 오늘 읽으실 성경말씀, 화요기도회 기도문, 월삭 기도회 등 제가 해온 다른 목회 활동들 또한 상황에 맞게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처음 해보는 것이고, 어떤 분들은 담임목사가 교회를 그렇게 비우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 걱정과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우리 모두가 잘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부교역자들은 한층 더 깊이 있게 목회를 하는 경험이 되고, 교인들에게는 평신도 중심 사역을 펼칠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 동안 지난 6년 6개월의 목회를 되돌아보면서 몇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은 코로나 2년 동안 하지 못한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기고, 가족들에게도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20년 넘는 시간 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면서 쌓인 자료들을 정리하고, 목회와 신학에 있어서 제가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노회에 제출하는 목사재연수신청서에 연수처를 연세대학교 도서관이라고 적었습니다. 또 그동안 했던 강의 자료들을 정리해서 책을 한 권 쓰고, 다음 목회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할 생각입니다. 틈틈이 전국에 계신 온라인 성도들도 찾아뵈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게 되지만, 노회와 총회, 여러 외부활동은 계속해야 합니다. 총회 영성수련원 모임, 연금재단 이사, 심원 안병무기념사업회 서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 노회 부서기, 연세대 신학대학 강의, 수요 사경회 등입니다. 안식년이라고 하지만, 쉰다는 개념보다는 다음 목회를 위한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알차게 보내고 싶은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목회 준비]

코로나 2년이 지나고 사회적 거리 두기는 폐지되었지만, 한국 개신교가 당면한 상황은 매우 깊은 수렁과 막막한 안개 속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엊그제 방배동에 있는 어떤 교회의 장로님으로부터 목회자 청빙 관련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29년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는데, 코로나 이전에 200명 정도 출석하던 교인이 지금은 70명으로 줄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단 내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그래서 두 교회가 합병한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기근과 전쟁, 전염병 유행이나 혁명과 급격한 기술 발전과 같은 사회 대변동을 겪고 나면 세계는 완전히 다르게 변합니다. 그때 적응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소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중세 시대 전 유럽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그리스도교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근대가 열리면서 엄청난 혼란을 겪었고,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또다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변하는 시대에 맞게 거듭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익숙한 과거로 회귀하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성벽을 쌓는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가 힘이 있을 때는 성벽을 쌓고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지금처럼 사회적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코로나가 끝나면 교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저 바람일 뿐입니다. 코로나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대면으로 하는 목회와 선교가 아니라 대면과 비대면을 동시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목회와 선교를 해야 합니다. 주일성수와 같은 기존 규범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해오던 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적 고민과 삶의 문제라는 과제를 두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목회적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안식년 동안 저는 새롭게 바뀐 세상에서도 우리 생명 사랑의 목회와 선교가 활기차게 작동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다음 목회를 계획하고자 합니다. 10주년 준비위원회가 만든 설문조사도 그런 계획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서 본문들은 현재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목회를 성찰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 줍니다. 첫째로 구약의 말씀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성서는 주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서 진노하셨고, 그래서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진노하셔서 교회들은 시름이 깊고,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당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히스기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조상이 죄를 지어,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하였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서,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소를 등지고 말았소. 그뿐만 아니라, 성전으로 드나드는 현관 앞문들을 닫아걸고, 등불도 끄고, 분향도 하지 않고, 성소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도 않았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유대 민족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 주민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문들을 닫아걸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았다고 히스기야는 말합니다. 이 말은 실로 충격적입니다. 신앙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이들이지만 사실상 신앙이 없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등졌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위기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위기는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가만히 분석하면 한완상 전 총리가 쓰신 책 제목처럼 <예수 없는 예수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교회가 작동하는 원리를 가만히 보면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덩치가 큰 교회들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내세워 세속 권력에 영합합니다. 가진 자들의 친교 모임으로 전락하고, 기득권자들 옆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이들이 교회로 몰려듭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삶의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얻은 자본과 권력으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려는 욕망이 가득합니다. 예수께서 금칠한 예루살렘에 경탄하는 제자들을 보고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신앙이 아니라 욕망이 작동하는 교회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한편 작은 교회들은 반(反)종교, 탈(脫)종교, 무(無)종교 시대의 풍조에 휩쓸려서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정말 많은 목회자가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다른 일을 찾고 있습니다. 너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년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려는 이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큰 교회들이 신앙보다는 자본과 권력에 기대었다면, 작은 교회는 자본과 권력에 지고 말았습니다.

많은 한국교회들이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작지만 신앙으로 똘똘 뭉친 강소형 교회가 희망이라지만, 어떻게 그런 교회를 세워나갈지 고민이 많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다가 십자가에 달린다면, 그것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열매로 부활하겠지만, 어중간한 신앙으로, 미지근하게 있다가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냥 땅속에 파묻혀 썩어 없어지고 마는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세상의 부적응자이거나 욕망의 화신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어나 사회의 악으로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부터 다시 불러 모아서 온전히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부터 개혁을 시작합니다. 한국교회의 개혁도 목회자들, 목회자를 길러내는 신학교, 목회자들의 모임인 노회와 총회 등의 뼈를 깎는 반성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서는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 된 사람들이 오지 않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로 자리를 채우고, 또 그것으로도 모자라 큰 길과 산 울타리로 나가 사람들을 억지로 채워야 하는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비유는 해석하기가 매우 어려운 비유 중에 하나입니다. 마태복음서에도 나오고, 도마복음서에도 등장하는데, 서로 내용이 많이 다르게 변형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유의 본래 모습을 찾기가 어렵고, 예수님께서 어떤 맥락에서 이 비유를 하셨는지도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서의 비유도 매우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고, 다양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잔치는 보통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 잔치의 초대를 거절하는가? 하나님 나라 잔치라면 누구나 초대되어야 할 것 같은데, 나중에 온 부류들은 왜 처음부터 초대되지 못했나? 왜 주인은 강제로라도 사람들을 채우려고 하는가? 고대의 잔치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또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에는 격식이 있어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경우 잔치를 베푼 사람은 모욕을 당하게 되는데,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라면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신 것인가?

이 비유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여러 질문에 대한 폭넓은 신학적 해석은 수요사경회 46강 "나의 삶에 누구를 초대할까"를 보시면 되겠고, 오늘 저는 한 부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오늘 비유의 특징 중 하나는 초대해도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을 초대하면 과연 몇이나 올까요? 온다고 했을 때, 몇이나 그 교회의 교인으로 정착하게 될까요? 한때 총동원 주일이라는 것이 유행했고, 지금도 그런 행사들을 하는 교회가 있을 테지만, 온갖 노력을 다해서 교회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도 1년이 지나면 그때 왔던 이들은 대부분 떠나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소식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상징하는 잔치에 당시 성전의 기득권자들, 율법학자들,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 헤롯당원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바닥 사람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의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시 90%가 훨씬 넘는 민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식은 그야말로 복음, 기쁜 소식이었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 2,000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불평등한 사회에 평등을 가져오고, 폭력적인 세상에 평화를 가져 왔으며, 억압과 착취가 만연한 곳에 자유와 서로 돌봄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하였습니다. 예수의 정신과 삶을 이으려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분투와 노력은 오늘날 민주 사회에서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 형제자매애, 인권에 대한 존중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그리스도교는 국민을 돌보지 못하고, 양반과 상놈을 나누던 조선 사회를 개혁했고, 일제 식민지의 설움을 견뎌내게 했으며, 전쟁의 폐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과 힘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개신교는 우리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사회가 교회보다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초대를 해도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즉 교회가 이 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치유하거나, 거기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도 못하고, 무한한 욕망 속에서 경쟁으로 치닫는 사회에 참된 삶의 의미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서에서 잔치를 베푼 사람은 그래도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 눈먼 사람, 다리 저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들은 원래 초대받은 사람들 대신 잔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회가 차린 잔치에는 오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잔치를 가장한 꿍꿍이가 있고, 세상이 주는 잔치보다도 못하고, 그렇다고 들을 만한 또는 배울 만한 것이 더욱더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갱생의 길: 복음의 회복]

이제 한국교회는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옛날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덕이는 못사는 나라가 아닙니다. 물질적 구제나 심리적 위로, 엔터테인먼트적 행사로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일 수 없습니다. 지금의 한국인들은 교회가 아닌 넷플릭스나 애플 TV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더 큰 재미와 감동, 심지어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교회에 오기보다 가족과 함께 캠핑가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홀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심지어 알 수도 없는 것을 교회가 보여주어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더 철저하게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과 정의를 노래하렵니다. 주님께 노래로 찬양드리렵니다. 흠 없는 길을 배워 깨달으렵니다. 언제 나에게로 오시렵니까? 나는 내 집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살렵니다.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마음이 오만한 자는, 그대로 두지 않으렵니다. 나는 이 땅에서 믿음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가, 내 곁에 있게 하고, 흠이 없이 사는 사람을 찾아서 나를 받들게 하렵니다. 속이는 자는 나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앞에 서지 못하게 하렵니다. 이 땅의 모든 악인들에게 아침마다 입을 다물게 하고, 사악한 자들을 모두 주님의 성에서 끊어버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세상이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괄목상대(刮目相對)입니다. 이 말은 '눈을 비비고 서로를 본다.'라는 뜻입니다. 중국 삼국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손권(孫權)이 그의 장수 여몽(呂夢)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을 나무랐습니다.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후에 노숙(魯肅)이 찾아가 전과 달라진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워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합니다(士別三日卽當刮目相對)"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일화에서 괄목상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서 사흘 만에 눈을 비비고 볼 만큼 진보합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괄목상대할 만큼 진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년 6개월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괄목상대할 만큼 진보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재연수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명사랑교회가 6년전의 생명사랑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앞으로의 생명사랑교회는 더 진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교회에서 목회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제가 더 화살촉처럼 앞에 있어야 합니다. 제게 허락해 주신 6개월의 시간 동안 알차게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 단련하시길 빕니다. 그래서 우리 다시 만날 때, 우리 모두 서로 눈을 비비고 볼만큼 성숙한 믿음과 성령의 능력, 하늘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입과 행동과 삶에서 드러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세우시고 기르시고 돌보아 주신 은혜에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어느덧 열 살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급변하는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뀝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합니다. 그 세월 우리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복을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새로운 10년을 또 준비하며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작지만 강하고 건강한 교회, 온 교우들이 한 마음 되어 주님의 일에 나서는 교회,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 사명들을 적절하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온전히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생명사랑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세계 대유행의 위기를 우리 모두가 극복해 가게 하신 은혜 감사 드립니다. 우리 생명사랑 신앙공동체의 지난 10년을 지켜 주시고,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게 하시니 감사하고, 인내 속에서 다시 대면 예배를 재개할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사랑을 위하여 늘 기도하길 원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물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돌보게 하시고,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소서. 영혼을 돌보고 내면을 풍성하게 하는 일에도 힘쓰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날마다 나아갑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우리의 사랑이 더욱 힘 있고 아름답게 피게 하소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전 삶과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 받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전국의 성도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당당하게 그리고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모두 주님만 믿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가다가 지치면 쉬었다 나아갑시다. 가다가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 줍시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나아갑시다.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거룩한 친교가 괄목상대하기를 기대하고 꿈꾸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애쓰는 생명 사랑 교우들과 전국의 모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험악한 세상살이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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