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성령의 탄식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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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요엘 2:28-32, 로마서 8:22-27, 사도행전 2:1-4 -

작년 3월, 정부가 시행한 한 국민건강실태조사에서 사람들의 우울감 점수는 코로나 발생 이전과 대비해 무려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작년 12월, 한 학회에서 실시한 국민건강실태조사에서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은 코로나 초기와 비교해 40%나 증가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최근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상황이 나아질 거라 기대했지만 국민의 우울감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동아일보 2022.5.4., 이지윤, "'마스크 벗는데 나는 더 우울' - 엔데믹 블루 경고등.") 코로나 사태 초기, '재난은 누구에게나 다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는데 막상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도 경제적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건에 따라 사람마다 일상 회복에 격차가 발생하자 그동안 참아온 우울감이 오히려 더 폭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스물아홉의 한 취업준비생은 코로나로 인해 채용 문이 닫히면서 서류전형에서 숱한 탈락을 경험했는데 최근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이 자꾸 생기자 그동안 공들여 관리했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모두 '폭파' 시켜버렸다고 합니다. 한 꽃집 주인은 지난 2년여간 매출이 '반의반 토막' 나도 버텼는데 최근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래도 나만 가망이 없는 것 같다"라고 한탄했다 합니다. 코로나가 '엔데믹'(endemic) 즉 풍토병으로 전환되면서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재난 상황 이후에 갑자기 덮쳐오는 이 우울감을 기자는 '엔데믹 블루'(endemic blue)라 불렀습니다. 우울과 불안에서 오는 인간의 탄식 소리가 세상에 꽉 찼습니다.

그런가 하면, 코로나 이후 자연의 신음 소리가 더 깊어졌습니다. 코로나 이후 인간의 생활폐기물이 40%나 증가했습니다. 눈앞에 닥친 코로나 위기에 '우선 살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엄청난 일회용 제품 쓰레기를 양산했습니다. 특히 택배 물류, 포장 폐기물, 그리고 인테리어 건축폐기물이 급증했습니다. 투표를 한번 할 때마다 전 국민이 쓰고 버린 일회용 비닐장갑은 63빌딩 높이만큼 쌓였습니다. 단 몇 분간 사용하고 버리는 비닐봉지는 썩는 데 400년이 걸립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비닐봉지는 약 420개로 세계 2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쓰는 플라스틱은 약 98.2kg으로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신음하는 바다코끼리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누군가 일회용 비닐봉지를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인간이 만든 썩지 않는 쓰레기로 다른 모든 피조물이 고통으로 몸부림칩니다.

대지의 품에서 나고 자란 모든 생명은 순환합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19)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은 "흙으로"(욥기 34:15, 시편 146:4), "티끌로"(시편 90:3), 그리고 "먼지로"(시편 104:29) 돌아갑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전도서 3:20), 바닷속 무수한 생명도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시편 104:8)라고 성서가 말합니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이 오랜 법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 물질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100여 년 전 인간은 신이 만들지 못한 놀라운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가볍고 단단하고 저렴하며 무엇보다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이 물질에 인류는 열광했습니다. 열과 압력을 가해서 마음대로 성형할 수 있는 이 고분자 화학물질을 사람들은 '플라스틱'이라 불렀습니다. 현대인은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가전제품부터 액자, 용기류, 바닥 매트까지 재질만 다를 뿐 모두 플라스틱입니다. 현대문명의 발달 역시 플라스틱 없이 불가능합니다. 플라스틱 덕분에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플라스틱 덕분에 물질적 풍요와 시간적 여유를 누립니다. 그런데 다 쓰고 난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소각장으로 그리고 매립장으로 갑니다. 일부는 선별장으로 가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고 50~60%가 다시 쓰레기로 나옵니다. 전체 폐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35%에 불과합니다. 가벼워 물에 잘 뜨고 바람에도 잘 이동하는 플라스틱은 결국 물을 따라 정치 없이 여행하다가 하천을 거쳐 바다로 이르게 됩니다. 바다로 간 플라스틱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먼 곳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삽니다. 태평양의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에 지금 거대한 쓰레기 바다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크기는 무려 프랑스의 2배, 한반도의 7배입니다. 이렇게 바다로 흘러간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고 잘게 부서지기만 하기에 생태계를 위협하는 흉기가 됩니다. 해마다 바닷새 100만 마리가, 또 해양 포유류 10만 마리가 목숨을 잃습니다. 수프처럼 된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결국은 먹이사슬을 타고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옵니다. 살충제와 디디티 그리고 발암물질을 농축한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간의 몸으로 들어옵니다. 광활한 바다가 언제든 인간의 쓰레기를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썩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하셨는데, 인간은 이 순환의 진리를 거부하니 자연이 신음합니다. 자연이 탄식하니 인간의 고통이 더 커집니다.

오늘의 신약서신 본문인 로마서 8장에는 모두 세 가지의 탄식이 나옵니다. 피조물의 탄식, 인간의 탄식, 그리고 성령의 탄식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22절)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23절) 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바울은 심지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라고 말합니다. 신-인간-자연의 3중 탄식입니다. 바울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을 걸까요?

바울은 구원을 인간만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자연 만물의 회복까지 포함합니다. 인간과 자연은 운명공동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연환경 파괴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범죄와 타락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좋다/아름답다/사랑스럽다"라고 감탄하신 이 세계에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사망과 고통이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간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이 아니라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창세기 3:18) 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인간과] 함께 탄식하며 [인간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로마서 8:22)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모든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21)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받은 저주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를 때 함께 끝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탄식합니까? 바울은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로마서 8:23)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는 말은 구원의 보증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탄식하는 이유는 "양자(養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贖良)"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양자의 영'(로마서 8:14)이신 성령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으나 아직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로서 누릴 영광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현실 생활 속에서 고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속으로 탄식하며 구원의 완성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자]"(로마서 8:24)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왜 탄식합니까? 인간이 소망을 갖고 인내로써 고난을 이겨내려 하지만 연약하여 탄식하고 마땅히 기도할 바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이 현재의 고난을 감당하기에 연약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사람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는 방법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로마서 8:26)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로마서 8:27)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몰라도 우리의 기도와는 별개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직접 간구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탄식이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마음을 모릅니다. 인간은 성령의 생각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로마서 8:27) 말합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담대하게 지금의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로마서 8:28) 것이라 확신에 차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본문에서 놀라운 점은 피조물이, 자연이 무언가를 간절히 고대한다는 구절입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로마서 8:19)라고 했습니다. '나타나다'라는 말은 단순한 나타남이 아닙니다. 그리스어로 '아포칼립시스'인데 종말론적 용어입니다. 마지막 때의 나타남입니다. 부활의 때에 영광의 몸으로의 나타남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령한 몸으로 영광스럽게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죄와 불순종으로 '썩어짐의 종노릇'(bondage of decay / slavery to corruption)을 하던 인간이 그 고통의 사슬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러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피조물도 [같은]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로마서 8:21)을 고대한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변화해야 자연도 해방된다는 말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던]"(에베소서 4:22) 탐욕과 불순종과 이기적인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린도후서 5:17)로 변화되어야 자연도 인간으로 말미암은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고작 우리 몸의 구속, 천국만을 생각하지만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밝히는 하나님의 계획은 놀랍고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주적 구원입니다. 인간을 넘어 하나님의 온 창조세계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서재환 시인의 <걱정>입니다. "하늘나라 하나님은 / 요즘 / 걱정이 많으실 거야. // 무거운 돋보기를 손에 들고 / 벌레 먹은 사과 같은, 복숭아 같은 / 상처 난 지구를 멀리서 내려다보며 / - 저런, 내 별 하나 못쓰게 됐군. / 쯧쯧쯧...... // 밤이면 손전등 달로 / 낮이면 손전등 해로 / 우리가 사는 모습 비추시며 / 맨 처음 만든 세상 생각하실 거야. / 지 금 도 / 지그시 눈을 감고 / 이마에 깊은 주름 새기고 계실 거야."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당신이 지으신 이 땅을 바라보시며 땅을 파괴함으로 스스로 파괴하는 무지하고 연약한 인간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저희가 성령의 탄식을 멈추게 해드릴 수는 없을까요.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 [인간]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크리족 예언, <마지막 나무가 베어 넘어진 후에야>) 그렇습니다. 한 가족이 혈연으로 이어지듯,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게 아니라 인간은 단지 하나님께서 짜신 그 그물의 한 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그물에 가하는 모든 일은 자기 스스로를 향한 것입니다. 내가 지금 땅에 하는 모든 일이 내 자녀와 그들의 자녀와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닥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께서 탄식하시는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다른 피조물의 고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삶의 근심이 끊이지 않으나 오늘은 "작은 근심을 버리고 큰 근심을 품어야 합니다."(다산 정약용) 지구를 보며 탄식하시는 성령처럼 하나님의 온 피조세계를 근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난 2020년 3월 27일에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Statio Orbis)라는 회칙에서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위기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참회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강하고 불가능이 없다고 자만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익을 탐하고, 스스로 일에 휘말리고, 서두르며 달려왔습니다. 전 세계적 전쟁이나 불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도 않았으며, 가난한 사람이나 중병이 든 지구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병든 세상에서 언제나 건강하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무정하게 달렸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고통에 신음(탄식)하는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에 둔감한 채 달려왔습니다. 세상이 병들었는데 나만 건강할 줄 알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달릴 수는 없습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필요에 의해 만들고, 사용한 뒤 버리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만들고 너무 쉽게 버려왔습니다. 더 좋은 옷, 더 맛있는 음식, 더 안락한 집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만 무한정으로 키워왔습니다. 이웃과 자연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번 쓰고 버린 일회용 플라스틱이 수많은 생명을 질식시키고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죽어가게 하는 것을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삶이 성령의 큰 근심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 큰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아, 언제 인간은, 그리고 온 피조물은 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와 해방에 이르게 될까요.

어느 사람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전쟁과 가난 그리고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하나님께 항의했다고 하지요. "왜 당신은 이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정말 전능한 신이라면 대책을 세워 놓았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한동안 침묵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에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니. 나는 너를 만들었다. 너를 보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대책'입니다. 근심하시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큰 뜻을 이루는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박경리의 <기다림>입니다.

"이제는 누가 와야 한다 // 산은 무너져 가고 / 강은 막혀 썩고 있다 / 누가 와서 / 산을 제자리에 놔두고 / 강물도 걸러내고 터주어야 한다 // 물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고 / 하늘에 새들 날게 하고 / 들판에 짐승 뛰놀게 하고 / 초목과 나비와 뭇 벌레 / 모두 어우러져 열매 맺게 하고 // 우리들 머리털이 빠지기 전에 / 우리들 손톱 발톱 빠지기 전에 / 뼈가 무르고 살이 썩기 전에 / 정다운 것들 / 수천 년 함께 살아온 것 / 다 떠나기 전에 // 누가 와야 한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강림절인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바로 이 '누구'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영을 만민[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요엘 2:28)이라 하셨는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요엘 2:31)이 이르기 전에 여러분이 꿈을 꾸고 이상을 보며 하나님의 장래의 큰 구원의 일을 말하는 그 '누구'이기를 바랍니다. 2천 년 전 오순절(五旬節, Pentecost) 그 다락방에서와 같이 오늘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여러분]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여러분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사도행전 2:1-4) 신음하는 이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선포하는 바로 그 '누구'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공동기도문처럼, 여러분이 "육신에 속한 소욕을 모두 버리고 / 이제는 성령에 속한 거룩을 따라 /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는"(최용우, <육신과 성령>), 성령의 은사를 받은 그 '누구'이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생명의 하나님, /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깨우쳐주소서. / 그들이 숲 속에서 겪는 어려움 / 도시에서 겪는 푸대접을 기억하겠나이다. / 당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보호자, 섭리자의 역할을 /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게 하소서. / 들짐승을 잔인하게 대하지 않도록 금지하소서. / 존경심에서 나오는 부드러움을 우리에게 주소서. / 나보다 약한 피조물을 경애하도록 가르쳐주소서. / 모든 생명의 물줄기는 당신의 생명에서 흘러나오는 것. / 생명이란 지금도 우리에게는 신비일 뿐, / 우리가 짐승과 새와 친하도록 도와주소서. / 그들이 배고픔과 목마름, 피곤함과 추위, / 집 잃고 헤매는 고통에 공감하도록 도우소서. / 우리의 기도 속에 그들의 어려움도 끼워 넣도록 도우소서."(조지 마테슨의 <자연을 위한 기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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