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주께 더 가까이(Nearer to God)

장윤재 목사(이화여대 대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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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성경본문

이사야 50:7-10, 야고보서 4:5-8, 누가복음 24:15-16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7월 12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찍은 5장의 풀컬러 우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우주를 보는 인류의 새로운 눈'이라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은 노후화된 허블 우주망원경(HST)을 대체하기 위해 작년 12월에 쏘아 올려졌습니다. 5장의 사진은 지구에서 약 40억 광년 떨어진 'SMACS 0723' 은하를 비롯하여 '용골자리 대성운', 'WASP-96 b', '팔렬성운' 그리고 '슈테팡 5중주' 사진이었습니다. 참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정말 불가사의하고 신비했습니다. 가장 감탄했던 것은 'SMACS 0723' 은하단의 뒤쪽 은하들에서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7억 년이 지난 시점인 131억 년 전의 초기 우주 빛이 포착된 것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138억 년 전 빅뱅(Big Bang)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빅뱅 이론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조차 "우주는 영원불멸하는 존재로서 그 상태를 유지한다"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벨기에 출신 가톨릭 신부이자 이론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 1894-1966)는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의 수학적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우주는 반드시 팽창해야 한다"라는 점을 이론적으로 밝혀 빅뱅 이론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131억 년 전 빅뱅 초기부터 지구를 향해 달려온 빛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찍은 우주의 빛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빛이었습니다. 131억 년 동안 이 광활한 우주를 달려 인간의 카메라에 잡힌 이 태고의 빛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시속 10억 8천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131억 년을 날아와 인간의 눈앞에 이른 우주 태동의 빛 앞에 저는 전율했습니다. 이제 7억 년만 더 다가가면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창세기 1:3) 하실 때의 그 '태초의 빛'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찬송가 79장)라는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빛은 어떻게 옵니까? 이 빛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여성 시인이며 화가인 얀 리처드슨 목사는 <빛은 어떻게 오는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빛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 / 우리에게 닿기 위해 놀라울 만큼 광대한 공간을 가로질러 여행해 왔다는 것. / 나는 안다. 그 빛은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 혹은 위험에 처해 있거나 고통 속에 있는 것들을. / ... / 빛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빛은 오고 있으며 언젠가는 오리라는 걸 나는 안다.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길을 내어 온다는 걸... / 그래서 오늘 내가 그 빛을 향해 몸을 돌리게 되기를. 그 빛이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내가 얼굴을 들게 되기를. 나를 열고, 더 많이 열게 되기를. / 오고 있는 그 축복받은 빛에게."

빛이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먼거리를 헤치고 오는지는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깊은 어둠과 절망 속에 길을 내고 오십니다. 내가 할 일은 그 빛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겁니다. 그 빛이 나를 찾을 수 있도록 내 얼굴을 드는 겁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겁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활짝 열어 그 축복받은 빛이 내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131억 년을 날아와 우리 앞에 이른 태고의 빛 사진을 보며 이정모 서울과학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깊고 분명해졌습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저 너머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환히 들여다볼 볼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더 투명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국민일보, 2022.7.13.)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더 맑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한 과학자의 신앙적 성찰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발견하고 경이롭게 여겨 그 앞에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출애굽하여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고 제사장들과 백성은 경계를 넘어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9-24장) 그것을 어기면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출애굽기 19:22, 24)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늘 가까이 계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을 들으셨느니라"(출애굽기 16:9)라고 말합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라고 노래하면서, 오늘의 교독문처럼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시편 65:4, 오늘의 교독문)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이사야 29:13)라고 비판하며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이사야 55: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늘 가까이했던 이사야는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이사야 50:8)라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유와 관념 그 너머 영원한 세계 그곳에 계시는"(조만나스, <하느님이신 당신에게>)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내게 '늘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나를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16세기 스페인의 성녀 아빌라의 테레사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의 현존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아빌라의 성 테레사,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 또 지난 세기 독일 최고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말하듯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와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태초부터 [나의] 내면에 하나님이 바람처럼 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릴케, <당신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천국은 내일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와 있고,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위에 있는 신이 아닙니다. 내 삶과 역사의 한가운데 늘 가까이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이름 모를 작가의 기도처럼, "내 존재의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잔잔한 빛"이시며 "내 존재의 밑바닥을 뒤덮은 어둠 속에서 우러나는 소리 없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늘 가까이' 계시는 이 하나님께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누가 저에게 '인생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저는 주저 없이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지금까지 30번도 넘게 봤습니다. 그다음은 또 어떤 영화냐고 물으시면 저 또한 주저 없이 <타이타닉>이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이유는 동일합니다. 음악 때문입니다. 그 차가운 빙하의 바다로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 호 위에서 살기 위해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위해 무명의 악사들이 연주하던 한 찬송가 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50분, 영국 벨파스트 항을 출발하여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 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이라는 우라누스(Uranus)와 지구의 신이라는 가이아(Gaia)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Titans)의 이름을 따서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라고 자부했지만, 6번에 걸친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빙산과 충돌하여 차가운 북대서양 바닷속으로 잠겼습니다. 승객 2천 2백 명 가운데 1천 1백 2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배가 침몰해 가는데도 선객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려는 무명 악사들의 연주였습니다. 탈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악사들은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을 마지막까지 연주하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사실 이들은 악장 윌리스 하틀리와 그의 동료들입니다. 그들은 단 한 사람도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 찬송가 338장은 1841년 영국의 여성 시인 사라 애덤스(Sarah Fuller Flower Adams, 1805-1848)가 자신이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님이 주일 설교 본문 창세기 28:10-22의 내용과 어울릴 만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하자 성경을 묵상하며 쓴 시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서 도망쳐 하란으로 가다가 해가 지니 돌멩이 하나 가져다 베개 삼고 잠을 잘 때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과 또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리라 말씀하시는 걸 듣고 깨어 일어나 베개 삼았던 그 돌을 가져다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은 벧엘(Bethel),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사라 애덤스의 시가 너무 좋아 이후 여러 사람이 이를 가지고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버전은 미국의 작곡가 로웰 메이슨이 1856년에 작곡한 곳으로 오늘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선율은 바로 그것입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하지만 우리말 번역은 원문의 감동을 세밀하게 잡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이 아니라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이 맞습니다. 국어를 전공하지 않아도 '하게'가 아니라 '하려'가 맞다는 것은 금방 압니다. 우리말에 서툰 선교사님들의 번역이 굳어졌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문은 "내 주를 가까이"가 아니라 "내 주를 더 가까이"라는 비교급이라는 사실입니다. 1절입니다.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E'en though it be a cross that raiseth me, / 비록 그것이 나를 들어 올리는 십자가라 할지라도," "Still all my song shall be,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노래는," "Nearer, my God, to thee /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한국 찬송가에는 한 번밖에 없으나 원문에는 "나의 하나님"이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님과의 가깝고 친근한 인격적인 관계가 나타납니다. 시인인 여기에 감탄부호까지 사용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가고 깊은 간절한 마음이 읽혀집니다.

2절입니다. "Though like the wanderer, the sun gone down, / 비록 그 방랑자처럼, 해가 지고," "Darkness be over me, my rest a stone; / 어둠이 내 뒤에 깃들며 돌멩이 하나가 내 안식처라 해도," "Yet in my dreams I'd be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꿈에서," "Nearer, my God, to thee; /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한국 찬송가는 2절에서 '야곱'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문은 '그 방랑자'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창세기 28장의 야곱을 가리킵니다. 형을 속이고 살기 위해 도망치던 그 야곱 말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야곱을 '방랑자'라고 표현한 것은 매우 깊은 상징성과 의미를 가집니다. 방랑자는 단지 야곱만이 아니라 야곱과 같이 모든 타락한 인간, 모든 좌절한 인간, 삶의 목표를 잃은 모든 인간, 바로 나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방랑자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어둠이 내리면 갈 곳이 없어서 돌멩이를 베개로 잠을 청해야 하는 가련한 노숙인 신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Yet)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려 합니다.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닥다리를 보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꿈을 꿉니다. 이 시의 핵심은 1절과 2절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1절에서도 시인은 비록 자신이 십자가에 들어 올려져 못 박힌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Still)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노래는 "더 가까이, 나의 하나님, 당신께 더 가까이" 밖에 없다고 노래합니다. 신앙은 바로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설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만사형통해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고통이 찾아오고, 재난이 닥쳐오고, 배가 난파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내 입에서 노래가 끊이지 않는 게 신앙입니다.

성경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신명기 4:7) 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시편 34:18) 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편 145:18) 했습니다. 지금 인류는 타이타닉이라는 침몰하는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코로나 역병과 기후위기, 전쟁과 기근, 가난과 실업 등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만, 인류를 안전하게 구조할 구명보트는 턱도 없이 모자랍니다. 우리의 타이타닉이라는 배를 운전하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지도자들은 충분히 훈련된 선원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탄 배의 규칙은 일등석 승객부터 구조하는 것입니다. 여성과 어린이가 먼저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것처럼 삼등석에 탄 여성과 어린이는 갑판 위에 올라올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배가 강철로 지어져서 절대 가라앉지 않을 거라 기대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입니다. 수천 미터 깊이의 얼음장 같은 바닷물로부터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타이타닉 호의 강판 두께는 겨우 10cm에 불과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두께가 겨우 10cm였습니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모두가 살겠다고 아비규환입니다. 나만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구명보트 위에 올라타시겠습니까? 우리는 침몰하는 배 위에서도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찬송가를 연주하던 윌리스 하틀리와 그의 동료 악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을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가까이] 나가기 원합니다"라는 찬송이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입에서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이 찬송이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이 세계를 위로하는 하늘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도움으로 우리는 이번에 우주의 가장 깊은 곳을 보았습니다.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서 131억 년 전 태고의 빛을 보았습니다. 우주를 탐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경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에 본 천체는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광활한 우주의 지극히 일부이자 찰나에 불과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우주는 어둠으로 충만합니다. 빛은 빅뱅의 우주가 탄생한 후 38만 년이 지나서야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우주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물질이 가득한데,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과학자들은 이를 암흑물질 혹은 암흑에너지라 부릅니다. 이런 어둠이 우주 전체 물질의 96%입니다. 이렇게 우주는 그 자체로 충만한 어둠입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1%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희덕 시인이 이번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노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 아, 얼마나 다행인가 /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나희덕, <어둠이 아직>) 하나님은 이렇게 영원한 신비입니다.다. 언제나 "우리의 사유와 관념 그 너머 영원한 세계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은 거룩한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가까이' 계시고 우리는 날마다 이 하나님께 조금씩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능소(凌宵) 이어령 선생님은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냉철한 지성인이자 무신론자였습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도 없고, 어떤 종교도 믿은 적이 없던 선생님은 2007년에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간의 지성(知性)의 끝이 냉소와 회의주의가 아니라 깊고 겸손한 영성(靈性)에 이른 것입니다. 이제 신자로서 새로운 길을 떠난 선생님은 어느 날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고 이름 붙인 첫 번째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 헤엄치게 하셨을 때 /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 아, 정말로 하나님 /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하나님."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 낙망하여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누가복음 24:15-16) 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자신의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 위에 언제나 별처럼 빛나고 있던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이 어떻게 그에게 왔는지 그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빛은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 혹은 위험에 처해 있거나 고통 속에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빛을 향해 몸을 돌리[고]... 그 빛이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얼굴을" 들었습니다. "그 축복받은 빛에" 자신을 활짝 열었습니다. 인간의 지성 위에 비치는 영원의 빛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의 근원이 되시는 분에게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신비이신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세아 6:3) 했습니다. 우리는 '늘 가까이' 계시는 이 하나님께 날마다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야고보서 4:8)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레위기 10:3) 하셨습니다. 하루 한 발짝씩만 주께 조금만 더 가까이 가시면 됩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분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 [우리의] 때 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볼 수 있을 때까지 날마다 조금씩, 하루 한 발짝씩만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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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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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