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그리스도교, 깊이에서 만나다’(다산글방, 2003)란 저서를 내 유,불,선 그리고 기독교에 정통한 종교학자로 명성을 쌓은 이찬수 전 강남대학교 교수(종교문화연구원장)가 <신학아카데미 탈/향> 여름학기 강좌에서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을 강연해 관심을 모았다.
7일 서울 서대문에 소재한 한백교회에서 ‘유대- 그리스도교 내세관 변천사’란 주제로 강연한 그는 유대교의 내세관에 이어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을 ▲ 예수의 내세관 ▲ 바울의 내세관 ▲ 요한묵시록의 내세관 등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예수의 내세관에서 그는 예수의 부활관이 잘 나타난 누가복음(20:27~38)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을 풀이했다. 이찬수 교수는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예수는 부활을 긍정했으며 부활한 사람은 무성적(無性的) 존재가 되는 까닭에 육체의 욕망이란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가 모세가 신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것을 예로 들어가며 유대교적 죽음관의 한 측면을 재확인시켰다고 했다. 즉, 죽은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듯 신과 무관해지기는 커녕 신 앞에서는 살아있는 자들이 된다는 입장에 예수가 서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의 내세관과 더불어 바울의 내세관과 요한묵시록 내세관이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에서 갖고 있는 비중도 다뤘다. 이 교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보다도 내세에 대한 정보를 더 상세히 가지고 내세를 인생의 목적처럼 살게 된 데에는 성서적으로 보자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라며 바울과 요한묵시록의 내세관을 들었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 및 내세관에 상당한 그리스적 살을 입혔다”고 말한 이 교수는 바울이 독특하게 쓴 표현인 ‘신령한 몸’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죽음 후에도 인간의 육체적 형상 같은 것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 때의 몸은 공기처럼 무형적인 것이며 몸이 있다고 한다면 다분히 초월적 혹은 초형상적인 몸이다. 적어도 현세적인 몸과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신에 의해 영혼에 입혀진 이 몸은 영원한 신과 함께 살아가는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며 “바울로에게(바울에게) 내세는 육체의 죽음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즉 종말 때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해 신과 더불어 살게 되는 세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울이 ‘영적인 몸’이라는 개념을 통해 내세의 가능성을 좀 더 신중심적으로 구체화시켰다면, 요한묵시록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이어 받으면서 내세의 모습까지 세세하게 묘사했다. 요한묵시록은 알다시피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거치면서 로마의 황제 숭배 의식과 같은 것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이 극심한 억압을 받던 시절에 씌어진 장문의 편지다. 이 교수는 “그런 까닭에 묵시록의 천국에는 무수히 많은 순교자들이 살고 있다. 내세가 순교자들을 위로하는 순교자들의 시간과 공간이 되는 셈이다”라고 했다.
또 “억압 상황이 종결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는 소망이 기저에 늘 깔려있다는 점에서 요한의 환상에는 초기 그리스도교적 소망과 정신이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며 “무엇보다 종말에 하늘과 땅의 모든 질서가 싹 바뀐 뒤 신의 나라가 확립되고 나면 이 세상은 신을 찬양하는 소리가 결코 끝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즉 ‘새 예루살렘’으로 바뀔 것으로 믿고 있다는 점에서 요한묵시록의 내세관은 로마시대의 상황과 초기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잘 보여주는 문헌이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