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혜암신학연구소 가을 신학기 세미나가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유산으로서의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17일 오후 안암동 소재 동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열린 가운데 주제 발표에 나선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가 '민중신학의 시대적 타당성과 그 문제점'에 대해 논했다.
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민중신학의 문제점으로 민중신학이 성경의 구속사건을 민중사건으로 변형시키고 하나님을 인간으로 대체하고 죄 대신 한을 주제로 삼으며 회개, 치유, 구원 대신 증오, 한풀이, 인간성 실현을 지향하며 교회 개념을 변질시켰다고 비판했다.
또 민중신학의 공헌으로 정통신학의 타계주의적, 집권층 안주와 옹호에 대한 비판 그리고 민중의 억눌린 한을 대변하고 신학의 역사 참여와 현장성을 강조함 그리고 한국적 신학으로 세계신학계에 해방신학과 같이 분류되어 인정받은 점 등을 꼽았다.
아울러 민중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민중신학의 주요 개념에 대한 수정 논의를 제안했다. 김 교수는 첫 번째로 민중 개념을 탈이데올로기화해서 사회경제사적 개념이 아닌 성경적 개념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오클로스는 갈릴리에서는 예수님을 추종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를 처형하라고 소리쳤던 우매한 무리였다"고 밝혔다.
둘째로 민중을 사회경제사적 지평이 아니라 구속사적 지평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성경에서 오클로스는 사회적으로 죄인으로 정죄된 의인이 아니다"라며 "오클로스는 의인이 아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부르심을 받은 죄인이다"라고 했다.
셋째로 민중 사건을 하나님의 역사 주권 및 역사적 책임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불의를 타파하기 위한 민중의 과제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회개와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밖에 민중과 예수를 동일시 하는 안병무의 민중 그리스도론에 대해서도 강도높게 비판했다. 민중신학이 민중을 너무 미화한 나머지 민중의 죄성을 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논찬도 이어졌다. 윤철호 박사(장신대 명예교수)는 민중신학이 민중을 이상화하고 있다는 김 교수의 주장에 동의를 표하며 "성서에서 민중은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양면적인 존재로 나타난다"며 "예수를 따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도 민중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자들도 민중이다"라고 했다.
윤 교수는 이사야 53장 6절의 본문을 인욯해 "여호와의 종"과 "우리"를 대비시키며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종"과 "우리"(이스라엘 백성)는 동일시 되지 않고 오히려 대창된다. 성서에서 "연대"와 "대리"는 분리될 수도 없지만 혼동될 수도 없다. 타자와 "함께 하는" 연대는 타자를 "위한" 대리행위의 전제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대리행위 없는 민중만의 연대는 스스로 구원을 이루어낼 수 없다"고 전했다.
윤 교수는 그러면서도 안병무 선생이 사변적 이론 체계를 수립하고자 했던 "책상"의 신학자가 아니라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수차례 구속되고 옥고를 치른 "현장"의 신학자였다고 평가하며 민중신학의 유산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1990년대 군사독재 통치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래 절차적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건전한 시민사회가 정착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사회와 교회는 이전 시절의 독재-반독재, 자본가-노동자, 압제자-피압제자, 부자-빈자의 이분법적 사고와 이러한 사고에 기초한 무력 투쟁의 패턴과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윤 교수는 "우리나라가 성숙한 시민사회로 발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붉은 띠를 이마에 두른 무력 투쟁이 아닌 공적 포럼에서의 상호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공적 포럼에서의 상호 소통과 합리적 담론을 위한 성숙한 공적 신학(public theology)의 수립이 한국교회에 요청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