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혼합주의 논란을 일으키며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조장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를 민중신학적 관점의 한(恨)에 초점을 맞추어 재해석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방연상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는 『신학논단』 제109집에 실은 '세계기독교 관점에서 본 민중신학의 "한(恨)"과 그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WCC총회에서 정현경의 초혼제를 필두로 하여 '한'의 개념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과 맞물릴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이 '한'에 대한 민중신학적 이해를 통해 새로운 세계 기독교의 관점에서 지평을 더욱 넓히는 것에 초점을 둔다"고 밝히며 정현경의 초혼제를 민속신앙의 관점에서 살폈다.
정현경 교수는 앞서 지난 1991년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제7차 WCC 총회에서 초혼제를 올리기 위해 소복차림으로 사물놀이패를 앞세우고 무대에 나타난 바 있다. 당시 정현경은 호주 원주민의 민속춤에 맞추어 사물놀이 춤을 추다가 춤을 멈추고 향불을 담은 그릇을 들었고 그것에서 한 맺힌 영혼들의 이름이 적힌 창호지에 불을 붙여 하늘에 재로 날리면서 영문 초혼문을 읽은 바 있다. "광주와 천안문 광장과 리투아니아에서 탱크로 깔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여!"로 시작해 각종 혼령을 부르는 초혼제였다.
이에 대해 방 교수는 "동방 정교회 등 WCC에 속한 회원 교회 중에서 종교 혼합주의라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었으며 모든 기독교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현경의 초혼제는 "혼합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건" "혼합주의적 범신론과 신성모독 수준"이라는 복음주의 신학계의 거센 비판에 마주했다.
이러한 비판에 WCC를 위시한 일부 에큐메니칼 신학계에서는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는 개인의 돌발 행동일 뿐 WCC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취하며 종교 혼합주의 논란을 불식시키려 했다. 하지만 방 교수는 "정현경의 초혼제는 세계기독교의 신학적 논의의 장에서 다양한 문화-신학적 해석과 논쟁, 정치-사회적 시사점을 촉발하는 민중신학적 관점의 실험적 퍼포먼스로 어느 정도 의도되고 기획된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구태의 보수-진보의 양립과 대립, 그리고 반목과 분열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개신교의 신학 배경에서 보면, 이는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충격적인 논란의 사건으로 포착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세계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과 텍스트, 역사와 성서는 주체 중심의 이항대립 실선으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왜냐하면, 이른바 '상황 신학'은 사실상 불순한 의도로 신성모독적인 신학을 위해 인위적으로 기획된 주체 중심의 신학이 아니라, 처절하고 치열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본문과 정황이 상호 침투(浸透)되고 교직(交織)된 하나의 덩어리, 말 그대로 "상황-신학"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의 상황신학인 민중신학에 주목한 그는 그 중에서도 민중신학자 서남동이 주장한 '한의 사제'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서남동은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무엇보다도 민중의 한의 영성을 이해하는 '한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 사제'란 민중이 아파하는 신음소리를 "이 세속시대에 오신 그리스도의 음성"으로 들을 줄 아는 목회자이며 한 맺힌 민중의 "소리의 내력"을 밝히고 그 한을 풀어주는 목회자를 의미한다.
이에 방 교수는 "정현경의 공연은 이교적(異敎的)인 '초혼제'라기보다 민중신학적인 '한풀이'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다시 말해서 이 퍼포먼스는 정현경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한'의 개념과 이해의 차원에서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방 교수는 또 "정현경은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이 사회적 불의에 도전할 수 있는 어떤 창구도 가질 수 없었던 한계 속에서, 오랜 기간 육체적, 심리적 압박과 폭력 아래에서 진솔한 감정을 토로할 기회와 자리를 갖지 못한 억울한 감정들을 '한'으로 이해했고, 그들의 영혼에 하나의 응어리(lump)로 남아 있게 된 고통과 슬픔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풀어내고자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논란을 샀던 정현경의 혼령 언급에 대해서는 "민중신학자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실재'로서 믿지 않고, 수난당한 역사, 억압과 폭력에 의해 고초를 당하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으로서 받아들였던 지평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중신학은 이러한 한풀이를 단순히 샤머니즘 혹은 이교적인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일종의 '민속'으로 해석하고 신학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방 교수는 이어 "선교적 토착화 관점에서 보면,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유교와 연합하려 했다면, 민중신학은 샤머니즘과 동맹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렇듯 민중신학이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현경의 한풀이가 바로 이러한 계통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정현경에게 당연히 예수는 '샤먼'이었다. 민중'에 의한' 민중신학과 샤머니즘을 재해석한 민속신학이 정현경의 퍼포먼스 안에 상징적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풀이가 이뤄지면 일시적으로 발생했던 사회적 갈등은 해소된다. 이 점에서 정현경의 퍼포먼스는 민속신학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방 교수는 그러면서 "정현경의 퍼포먼스는 신학적 관점에서 한국의 민중신학과 민속신학의 상징적 연합(聯合)과 토착화의 체현(體現)을 역동적인 에너지로 환원하여 세계기독교의 크랭크축으로 전달하고자 한 퍼포먼스로 해석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