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
다시 또 봄입니다.
동백꽃, 산수유, 매화, 벚꽃이 피고
오래 숨죽여 기다려온
생명들이 기지개를 피는,
저기 목력은 벌써 지고 있네요
이 봄에, 이 봄을
아무런 새로움도 없이
무덤덤하게 지나치면서
환절기 온도차에
옷깃만 여밉니다
지난 번
제 생일에 주신 편지
깊이 감사드립니다
과분하다는
그저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이기에
더 조심스러울 뿐입니다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며...
저는 요즈음
자신이 누구인지 살펴보고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되고픈 자신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를 들여다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초라하고 남루한 모습의 자신을
60을 바라보는 노숙인
누군가의 짐이거나 걱정거리이고
외면하고 싶은 대상
남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배려의 무관심, 평가 없는 관찰
관심이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무언가 남긴다는 것
그것이 기록이든지
사람들의 눈에
보여진다든지 하는 것들이
조심스럽고 저어됩니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러고
노력하는 것도
제게는 중요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보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여전히 지난 날의
과오와 실패가
발목을 잡지만
늘 새로워져야 한다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각오는 단단합니다
자신에 대한 착각과 오해
환상을 경계하고
부정하지 않으면서...
목사님, 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언제나 성장하며 성숙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난 날의 기억과
상실의 상처들이
아직도 저를
사로잡아
움츠러들게 합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시선과
신뢰의 마음에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늘 따뜻한 손길과
정성어린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정석현-
『어느 노숙인과 함께 한 시, 이야기』(정석현·권영종 지음/ 도서출판 우리와누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