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텍스트 속으로 10] 실존주의의 물음: 만일 신이 있다면[없다면] 바뀌는 것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박정태 옮김

사르트르

폴 틸리히는 20세기 실존주의 대표적 철학자로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를 꼽았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는 이른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이다. 이때 이들의 무신론은 신의 존재유무가 전혀 아니다. 이들은 단지 실존에 고도로 집중을 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실존에 집중하기 위하여 신을 제쳐놓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실존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실존에 집중하고자 했을 때 왜 신을 제쳐놓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을까.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는 둘 다 휴머니즘에 천착했다. 실존주의는, 인간 그 자체를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대면하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의 인간다움"(하이데거)을 탐색한다. 다른 종과 구별되는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만의 고유한 것,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 이러한 것들을 휴머니즘은 아우른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밝힌다. 실존주의 논의에서 실존의 반대 개념은 본질이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저 말은, 인간의 인다움을 본질이 아니라 실존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이 기독교에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인간 이해에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은 피조성, 즉 창조주와의 관계성에서 찾는다. 기독교 관에서는 바로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여기에 인간의 인간다움이 있다. 본질을 '저쪽' 세계에서 혹은 그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찾는다고 할 때, 실존은 아예 '이쪽' 세계이다. 그러니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두고 기독교는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사르트르도 이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에 대하여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사르트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가 자신을 무신론적 실존주의라고까지 스스로 칭하면서 밝히고자 했던 인간의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그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강의에 기반하면, 그것은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를 말하고자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의 자유와 행위이다. 자유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행위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행위하고 있는 그 자체이다. 즉 자신이 하고 있지 않은 것이 그 자신을 결정짓지 않는다.

실존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위가 인간 그 자체라는 것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사르트르는 인간의 선택에 있어 선천적인 것을 부정한다. 그는 "우리는 해야 할 것을 선천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천적으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모든 선택은 우리의 자유에 의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폭넓은 자유를 맞게 되고 또 그만큼의 무거워진 책임 역시도 감당하게 된다.

사르트르는 19세기 프랑스 급진주의자들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속적인 도덕을 세우고자 했던 시도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없다고 해도 인간이 가진 정직에 대한 가치, 비폭력에 대한 가치, 박애에 대한 가치와 같은 것들이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사르트르는 이와 같이 말한다.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신의 실존이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막는 것도 아니다.

양쪽의 케이스 사이에서 사르트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인간 자신의 선택 및 행위에 따르는 결과들에 대해 "핑계거리를 찾지 못한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읽혀진다.

본질을 우선시하는 종교는, 예정 교리를 내세워 인간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본질에 인간적 형태의 옷을 입힌 종교적 제의는 선택과 책임 모두에 있어 인간을 한껏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비일상적 형태의 종교적-초월적 체험은 경우에 따라 인간의 주체적 선택권마저도 상실시킬 수 있다.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논리는 직진한다. 그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즉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목소리인지 아니면 천사의 목소리인지,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결정할 사람은 아브라함 그 자신이라고 사르트르는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 음성이 천사의 목소리라고 결정할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입니다."

사르트르의 시대에 그의 실존주의를 처음 접한 종교계가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해될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신앙을 공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틸리히가 <종교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종교적인 것" 혹은 캔트웰 스미스가 <종교의 의미와 목적>에서 말한 "축적적 전통" 등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 오랜 전통적인 성서의 신앙을 보면, 오히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기보다 부여받은 창조성을 가지고 생물들에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리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철저하게 (동산에서 나가는) 책임을 수밖에 없는 실존이었다.

실존주의가 오늘 우리 시대의 불안과 절망을 다 이기고도 남을만한 무슨 대단한 답을 제공해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일정부분 유효한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를 가졌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의 선택과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종교적인 핑계를 댈 수 없다.

(다음 편에서는 하이데거의 휴머니즘에 대한 고찰을 다룰 예정입니다)


북리뷰/서평 문의 eleison2023@gmail.com

*책/논문에서 직접 인용한 어구, 문장은 큰따옴표(", ")로 표시하였음을 밝힙니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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