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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식 칼럼] 생명윤리와 품위있는 죽음

한신대 명예교수

이 지상에 생명을 가진 것들에는 식물과 동물이 있는데 이런 것을 다루는 학문을 생물학이라고 한다. 사람도 생명을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룬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과 본성이 생물학적 존재 이상의 존엄성 즉 인간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인간은 자연적 요소 이외에 정신적, 도덕적, 종교적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것이 인간존재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생물학적 존재는 자연법칙에 따라 성장하거나 생명을 보존하지만, 인간은 개개인의 자의식과 자주성을 가지고 자연에 적응 또는 대응하면서 삶을 영위해간다. 따라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어떻게 죽어야 할지도 생각한다. 이것은 사람이 삶의 의미와 목적과 가치를 의식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자고로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하였고 기독교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 존재와 생명의 존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은 인간의 존귀성에 부응하는 정신적 도덕적 삶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왔으며, 죽음의 문제도 신중하게 다루기 위해 소위 '생명윤리'를 다루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 생명윤리가 다루는 많은 문제들이 생겼는데 뇌사, 장기이식, 임신중절(낙태), 안락사, 사형제도, 복제인간 등이다. 이 문제들은 인간 생명의 보존과 함께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한 것이지만 생명의 존엄성은 생명의 단순한 보존이나 연장이나 장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생명의 보존 및 연장은 자기 생명에 대한 애착에 기인하는 자연적 또는 본능적 욕구이지만, 죽음의 문제는 개개인이 자기의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 등에 관하여 자의식을 가지고 결정할 '실존적 문제'이다. 의(義)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던져버릴 수도 있고, 반면에 불의와 악에 대결해서 살아남도록 투쟁할 수도 있다.

죽음에 대한 이러한 실존적 결정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함께 영원성 또는 불멸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다든지 사람의 영혼은 영원을 사모한다든지 하는 선천적 신념을 가진 일종의 초자연적 존재라는 인식이, 죽음에 대한 실존적 결정에 동반되는 것이다. 즉 삶의 종말(죽음)은, 죽음 다음에 오는 영혼이 탈 수레(車)로 환승하는 것이란 말이다(어거스틴은 이 수레를 안식으로 생각하여 죽음은 안식이라고 했다).

말기 중환자의 병상은, 그를 전송하는 유가족들과 친구들이 사후의 새롭고 평안한 여정을 축복하고, 그가 육신의 병고를 잘 참고 이겨 환승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 죽어가는 사람은 유가족들과 친구들의 기도와 위로에 감사하며 유익하고 아름다운 말을 남기고 마치 어린아이가 한낮에 잠들어서 단 꿈을 꾸게 되듯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요즘 많이 논의되는 호스피스(hospice)의 이념일 것이다. 그 장소가 병원이든 가정이든 또는 어떤 호스피스기관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오늘날 의료학의 진보로 육체의 병을 고치고 병고를 덜어주며 육체의 생명을 가능한한 최대로 연장시키는 방법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하여 뇌사로 의식을 잃은 식물인간이 된 환자나 그 밖의 난치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도저히 회복불가능한 환자라도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형식논리이다. 그리하여 환자가 생전에 자기 생명을 무리하게 의술의 방법으로 연명시키기를 원하지 않는 것도 무시하려는 것은 의료학의 윤리일지 모르지만 환자의 실존적 생명윤리관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또 유가족들이 가족적 애정으로 의료학의 윤리에 순응하는 것도 잘못이다. 실존적 생명윤리관을 가진 사람은 자기 육신의 고통이 자기의 생명의 존엄성을 말살하기를 원치 않는다. 유한한 인간존재의 육체의 생명을 아무리 연장시켜도 유한한 것이어서 그것이 영혼의 영원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말씀의 뜻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죽음이 생의 절망의 벼랑길이라든지 육체의 사멸이라는 공포심을 이기는 길은 인간존재와 생명의 유한성과 함께 영원성을 자각하는 데 있다. 사람은 존재하는 것과 사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자의 수가 자꾸 늘어난다. 가난이나 어떤 병이나 또는 어떤 절망 상태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이유의 자살이든 자살은 자기의 존귀한 생명을 저주하는 것이고 자기 존재 자체를 저주하는 일이다. 동시에 자기 생명을 낳아주신 부모에게는 불효이고 생명을 지으신 조물주에게는 역천자이며 무신론자이며 인간의 도리와 의무를 저버린 도덕적 파산자이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못하는 회의론자이며 옳고 그른 것을 분별 못하는 정신착란자이며, 지은 죄는 자살로도 용서받을 수 없으며 자기의 자살로써 상대방을 해치고 상처를 주려는 망상으로, 자살하는 것을 우리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치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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