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장애인소위원회(이하 위원회)가 11일 장애인주일을 맞아 '혐오의 바다를 건너 평등의 들판으로'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위원회 측은 입장문에서 "정치인들은 장애인 이동권과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확보 등 권리 투쟁에 대한 왜곡과 혐오 발언을 멈추라"고 했으며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라"고 호소했다. 아래는 입장문 전문.
2023년 장애인주일을 맞으며
혐오의 바다를 건너 평등의 들판으로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한복음 9:2)
예수께서는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단호하게 "그들은 죄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셨다. 장애인과 그 가족을 죄인으로 몰아가려는 모든 생각을 거부하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저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안으셨다.
그러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장애인과 가족을 향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인들은 기본 권리를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행동을 폭력으로 치부하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이기적인 무리들로 규정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바 있다. 장애인은 자신의 권리를 외쳐서도 안되고 시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하며 그저 국가와 지자체가 베풀어 주는 시혜를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존재로 낙인찍는 등 또 다른 차원에서의 차별과 혐오를 드러냈다.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추락사 한 이후 장애인들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22년간이나 투쟁하고 외쳐왔다. 그러나 장애인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2022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률은 전국 평균 27.8%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국가와 지자체의 예산 수립 과정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한 장애인 사회복지 예산은 당연하다는 듯이 삭감되거나 기껏해야 동결되어 왔으며, 이러한 현실 가운데 장애인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빼앗긴 채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라"고 겁박한다. 한국 사회는 기다리라는 말 때문에 세월호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를 겪어야 했다. 장애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조용히 기다리라는 말로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를 포장하는 유무형의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풍조도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자 삶의 주체이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마태복음 8:26) 한국교회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무섭게 출렁이는 혐오의 바람을 엄히 꾸짖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 교회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차별과 혐오의 바다를 건너 평등의 들판을 향해 나아가는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당당한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펼쳐 가시는 구원과 해방의 역사라 고백하며,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정치인들은 장애인 이동권과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확보 등 권리 투쟁에 대한 왜곡과 혐오 발언을 멈추라.
하나, 장애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화하라.
2023년 4월 1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장애인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