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학에서의 종교간 관계유형 분류 구도로 볼 때 개신교 초기 선교사 언더우드의 종교간 관계유형은 배타주의가 아닌 "포괄주의에 근접한 입장"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재현 연세대 특임교수는 신학논단 제112집에 실린 논문 'H.G. 언더우드의 『동아시아의 종교』에서의 신관 비교에 대한 종교신학적 분석과 해석학적 성찰: 한국 개신교의 자기정체성과 타자관계성을 위하여'에서 언더우드가 저술한 『동아시아의 종교』 분석을 통해 "(언더우드는)한국 전통종교의 의미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보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며 이 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포괄주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정 교수는 "포괄주의는 그러나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기의 우월성을 주장하니 자-타 관계를 우열관계로 몰아갈 소지가 크다는 문제를 지닌다"며 문제 제기를 하면서 "포괄주의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종교의 단위로부터 인간 단위로 전환해 개인의 다종교성에 주목하고 한국 정신세계에 대한 언더우드의 이해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일구어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그리함으로써 한국 그리스도교인의 종교적 정체성이 같음으로만 채워지는 자기동일성에 근거하기보다는 더 큰 다름이 들어와 만들어져 가는 구성적 상대성이라는 것을 밝힌다"며 "즉 다름으로 이루어진 자기 정체성이 곧 다름과 만나는 타자관계성의 토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부연했다.
특히 그는 이 글에서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종교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언더우드를 둘러싸고 편협한 배타주의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 "그에 대한 오해일 뿐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와 종교에 대한 자기폄하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목에서 언더우드의 "종교는 문명의 산물이 아니며...진화의 산물도 아니고 오직 영감의 문제로서..하느님의 선물"이라는 표현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에 정 교수는 "여기서 특히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표현은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선행 은총으로도 새길 수 있을 것인데 이로써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의 선교 이전에 '하느님이 먼저 선교하신다'는 현대선교신학의 명제를 선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도 한국 전통종교들에 대한 언더우드의 입장은 배타주의를 훨씬 뛰어넘는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언더우드가 당시 한국의 종교 상황을 어떻게 관찰했는지도 세밀하게 살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언더우드는 당시 한국 상황을 고대 신앙의 단순성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토착종교로서의 샤머니즘 뿐 아니라 유교와 불교 등 외부로부터 적잖은 양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르게 "한국인 나름의 상상계를 형성하여 온" 유신론자이며 하늘을 가장 뛰어나고 모든 신들을 다스리는 최고신으로 받든다고 봤다.
이에 정 교수는 "세 나라의 토착종교는 물론 공통종교인 유교와 불교에 대해서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공유하지만, 통째로 폐기 처분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교 대상들 사이에서 최소한의 가치 부여를 전제하는 것이고 비교를 통해 우열 판정을 하더라도 여전히 무가치한 것으로 제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이런 점에서 언더우드는 다른 종교들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가치를 나름대로 인정하되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귀결시키는 포괄주의의 방식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포괄주의만으로는 바람직한 자기정체성과 타자관계성을 위한 논거를 세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포괄주의가 설정하는 자기정체성은 우월의 지위를 선점하려 할 것이니 타자관계성은 일방적 지배의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넘어가거나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종교의 단위로 유형 분류를 논하는 종교신학의 구도에서 인간 단위로 들어가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포괄주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정신세계가 함의하는 개인의 다종교성에 주목함으로써 우리의 과제에 기여할 길을 찾고자 함"이라며 "여기서 다종교성이란 한 개인 안에 여러 종교적 성향들이 공존 또는 혼재하는 상황을 일컫는다"고 정 교수는 부연했다.
이어 언더우드에게서 이런 다종교성을 암시하는 대목을 주목하며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하늘에 대한 숭배와 효도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한 끊임없는 공중 권세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 그들이 결코 숭배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위대한 존재'가 최고일뿐만 아니라 유일하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러한 저급하고 작은 악한 능력들은 단지 그들의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며,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은 사랑, 지혜, 정의 그리고 진리의 하느님인 것을 알 때 그는 그 하느님에게 온전한 충성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언더우드, 『동아시아의 종교』, 218)
이에 정 교수는 "선교의 대상(對象)을 진지한 상대(相對)로 존중하는 태도는 언더우드에 대한 여러 상반된 평가들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깊이 주목해야 할 결정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로써 언더우드는 한국 전통 종교와 문화가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단계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적어도 잠정적이고 부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대목은 단순한 포괄주의적인 입장을 넘어서 다종교성을 암시적으로라 인정하는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논의를 정리하며 정 교수는 "거꾸로 선교사들 덕분에 더욱 확연하게 발견된 한국인의 문화적-종교적 정서를 돌이켜 본다면 초월자 신앙의 유구한 전통이 역사의 부침과정을 겪으면서도 기층적으로 유지되는 토대 위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접목되었으니 한 개인에게서도 여러 종교들이 공존 또는 혼재하는 다종교성을 도출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라이문도 파니카(Rayumundo Panikkar)의 '구성적 상대성'을 개인의 다종교성의 근거로 활용해 "불변적 동일성이 아니라 가변적 상대성이 우리의 종교적 정체성을 이루어 간다"고 밝히며 종교적 정체성을 이름에 근거한 자기동일성을 기준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함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적 혼종성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 융합현상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정 교수는 "종교사를 포함한 인류학적 연구가 밝히듯이 인류문화사에 등장하는 종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습합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적 특성과 시대정신에 따라 변모해 왔으니 종교들도 사실 이름으로 경계를 가를 수는 없다"며 "이른 바 종교적 혼종성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적 융합현상이 모든 종교들에 걸쳐 일어났으니 이는 사실 인간 개인의 다종교적 체험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타자 관계에 대한 바람직한 구도도 모색했다. 그는 "타자라고 할 때 타종교인뿐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다른 신앙관을 지닌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많은 경우에 같은 그리스도교인들 안에서의 긴장과 갈등, 충돌이 결코 덜 심각하지 않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자기 안에 자기동일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규정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면 자기정체성이 이미 그 자체로서 타자관계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오히려 더욱 중요하게는 타자관계성이 곧 자기정체성이라고 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자기가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타자의 성분이 자기 안에 그토록 넓고 깊게 드리워져 있다면 이름으로 자신을 기만할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넘어서도 여전히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자기 안의 다름을 그렇게 다른 타자와 함께 나누는 것이 마땅한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