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물들어간다는 것은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물들어간다는 것은

                                                                                                                                                     조동례

물들어간다는 것은

마음 열어 주변과 섞인다는 뜻이다

섞인다는 것은

저마다의 색을 품어 닮아간다는 것이니

바람이 불 때마다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닫힌 마음이 열릴 때까지

서로의 체온을 맞춰가는 것이다

태양이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도

봄꽃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마음이 닮아가는 것이고

마음이 닮았다는 것은 편하다는 것이고

편하다는 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네가 아프면 곧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시인(1961- )은 공감을 물들어가는 현상으로 형상화한다. 물든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 것과는 정반대로 개념화했다. 물드는 것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로 융합하여 제3의 결과를 만드는 과정을 일컫는다. 그 과정에 서로 섞이고 닮아가고 맞추어감으로써 편안해진다. 편안해진다는 것은 서로에게서 이질감이 사라지고 하나가 된 증거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공감의 완결이다. 시인은 왜 공감해야 하는지도 암시한다. 서로가 마음을 닫고 저마다의 색을 품어주지 않으면 밀었다 당겼다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혹독해지고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은 일상생활 속의 걸림돌에 한정되지 않고 생존의 문제와도 상관있다. 이는 공감이 태양이 어둠을 받아들이고 봄꽃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생명의 현상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프게 된다. 이 존재론적 아픔은 서로 섞이고 닮아가고 맞추어감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공감이 치유한다.

"물들어간다는 것은/ 마음 열어 주변과 섞인다는 뜻이다." 이 선언적인 정의는 공감의 기초적 절차를 알린다. 공감은 무엇보다 먼저 주변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가능하다. 주변에 대해 마음을 닫으면 서로 섞일 수 없다. 섞이는 것은 공감의 외형적 증거이다. 물론, 마음이 섞이니까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마음으로 "섞인다는 것은/ 저마다의 색을 품어 닮아간다는 것이니" 다른 실체들이 서로 닮아가는 상호작용을 전제한다. 그 작용이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 작용이란 "바람이 불 때마다/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하는 일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므로 그러한 뜻밖의 계기가 상호작용의 동력이다. 이처럼 "주변"과 "바람," 즉 일상의 터전과 뜻밖의 계기는 마음의 상호작용을 불가피하게 일으켜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가 공감의 결과이다.

그러한 작용을 거쳐 공감을 이루었으므로 공감이란 "닫힌 마음이 열릴 때까지/ 서로의 체온을 맞춰가는 것이다." "서로의 체온을 맞춰가는 것"이 바로 "닫힌 마음이 열[린]" 표시이자 삶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닫힌 마음으로 주변과 섞이지 않고 바람이 불어도 밀었다 당겼다 하지 않는다면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으랴! 고독한 성찰이 삶의 이야기에 한편의 구도를 잡아주기는 해도 그때도 밀었다 당겼다 하는 교섭의 경험이 있을 때나 그 성찰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설득력은 논리 이전에 공감의 기억 때문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체온을 맞춰가는" 기억이 그 이야기의 줄거리이지 않은가?

이는 인간 세상에만 한정되지 않고 우주적인 원리와도 통한다. "태양이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도/ 봄꽃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것도/ 마음이 닮아가는 것이[다]." 빛과 어둠이 섞이고 온기가 한기와 섞이는 것이 우주의 운행의 원리이다. 그 원리는 생명의 현상을 주관하므로 우주의 원리는 생명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 원리가 섞임을 지향하고, 그것은 "마음이 닮아가는 것"과 같다. 마음으로는 태양과 어둠을 구별하되 봄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온기를 안길 수 있다. 마음에서는 주변과 뜻밖의 계기가 걸림돌 없이 섞일 수 있으므로 그 마음에 우주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저마다의 색"을 품지 않고 구별하여 방치하는 것은 그 원리를 방해하는 일이다. 그 원리에 따르자면 그 색들은 서로 닮아가야 한다.

마음에서 색들이 서로 닮는다면 각 색깔의 마음도 서로 닮는다. "마음이 닮았다는 것은 편하다는 것이고/ 편하다는 것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마음이 닮았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이 갈등을 빚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서로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조건이 된다. 그래서 서로 편해진다. 이 편함은 심리적, 사회적 평화이자 우주의 원리와 상응함으로써 존재론적인 불안감마저 해소하는 상태이다. 고독, 소외, 결별, 대립의 지속은 우주 혹은 생명이 원하지 않는다. 고독은 교감으로, 소외는 동행으로, 결별은 재회로, 대립은 유대로 가는 길목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가 안개 속을 거닐며 절대고독을 느꼈지만, 절대고독이 인간의 실존적 조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안개 속에 있을 때의 상황을 전제한다. 인간에게는 주변과 뜻밖의 계기가 주어져 있으므로 그 우연적 요소들을 명확히 분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안개 속에 밀어넣고 "모두가 혼자이다"라고 외칠 일은 아니다. 안개는 모호한 상태이기는 하나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개가 덮쳐서 생긴 어둠의 의미를 현명하게 되새길 필요는 있으되 그 시간 속에서는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길을 선택할 일이다.

그 길에서는 "마음 열어 주변과 섞[이고,]" "저마다의 색을 품어 닮아[가며,]" "서로의 체온을 맞춰[감]"으로써 서로 물들게 되면 편해지게 된다. 그렇게 하나가 된 상태는 "네가 아프면 곧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공감을 생각하면서 시인이 굳이 아픔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의 즐거움에도 공감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아플 때 우리가 마음을 닫게 되므로 아픔은 곧 마음을 열게 할 뜻밖의 계기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아픈 사연으로 어둠 속에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될 때 "모두가 혼자이다"라는 성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인생을 살지 않지만, 우주가 태양과 봄꽃이 암시하듯이 서로 섞이며 하나가 되는 공정을 운행하므로 절대고독의 안개 속에 머무는 것은 생명의 원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존재론적인 불안은 서로 물들어감으로써 해소할 수 있는 아픔이다. 안개가 걷히면, 혹은 안개 밖으로 나오면 태양과 봄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인간이 아프자 곧 그 아픔에 공감하셨다. 그 아픔과 편해지도록 그들과 하나가 되기로 결정하셨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밀었다 당겼다 밀었다 당겼다/ [그들의] 닫힌 마음이 열릴 때까지/ 서로의 체온을 맞춰가[셨다]." 그렇게 인간에게 물들어가심으로써 아픔을 씻어주셨다. 태양이 어둠을 받아들이듯이, 봄꽃이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듯이 죄의 짐을 대속하고, 차가운 죽음의 세계로부터 따뜻하고 화사한 생명의 세계로 이끄셨다. 그와 같이 인간과 함께 아파하신 공감의 힘으로 서로가 건강하게 편한 관계가 되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로서 사신 그분의 이야기는 인간이 서로 물들며 아픔을 나눌 때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서로의 아픔을 공감할 때 그 자리에 태양처럼, 봄꽃처럼 생명의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성경을 읽을 때 "자세히 보아야/ 예[쁜]" 성품을 찾을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자신이]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말씀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이처럼 성경 읽기의 과정을 형상화한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형상화 기능을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과정에 적용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형상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논리를 따라 의미의 형상화 작업에 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결부해보았다. 글쓴이는 반포소망교회에 시무하는 이인기 목사다. 매주 한편의 시를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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