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와 묵상] 나에게 나를 묻다

이인기 목사(반포소망교회)

나에게 나를 묻다 

                                                                                                                                        공석진

그대는 누구인가

나와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악어 소굴로

뛰어드는 누우입니다

그대여 사랑을 아는가

나만을 사랑하려

철옹성을 구축하여

다가오는 사랑에

화살을 퍼붓는 겁보입니다

그대여 길을 가는가

까마득한 숲에서

언제나 같은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헤매고 있는 바람입니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어서 가보게

그대의 가슴으로

시인(1960- )은 참 자아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상대화하여 "나에게 나를 묻[는다]." "그대"가 된 그가 답한다. 그 답은 필경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 탐색 중에 그가 제기한 세 개의 질문은 주체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사회관계망 속의 일원, 그리고 전반적인 인생의 차원과 각각 상관한다. 각 차원은 참 자아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파악하는 데 기여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을 누우, 겁보, 바람이라 부른다. 누우처럼 필사적으로 탐색하지만 겁보처럼 자기에만 집착하다가 바람처럼 떠돌고만 있다는 회한인가? 그러하다면, 그의 참 자아는 자신의 경험이나 교육 때문에 짐승처럼 겁쟁이같이 떠돌기만 하는 모습으로 왜곡되었다. 그는 그 왜곡을 감지한 듯하다. 그 반성의 귀결점은 "그대의 집," 즉 "그대의 가슴"이다. 왜냐하면, 왜곡되지 않은 참 자아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질문한다. "그대는 누구인가"? 자기를 대상화했으므로 그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나와 나"는 질문하는 나와 답해야 하는 나, 즉 교육과 경험의 복합체인 나와 본래적인 나를 가리킨다. 물론, 질문하는 나는 현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은 상태이다. 그는 본래적인 나의 대답을 듣고자 한다. 형성된 자아와 참 자아의 간극을 넘고자 한다. 형성된 자아란 일종의 자아의식이다. 참 자아를 정체성이라 지칭한다면, 자아의식은 환경과 경험에 반응함으로써 형성된 이차적 정체성이다. 그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려면 형성된 자아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미 의문을 품었으므로 그 자아의식은 벗어남, 즉 죽음의 경계까지 왔다. "그대"가 참 자아를 모색하는 과정이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 모색의 과정에서 "그대"는 "나와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강을 건너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악어 소굴로/ 뛰어드는 누우입니다." 누우가 참 자아를 모색하는 필사적인 노력의 형상이라면 강과 악어는 참 자아를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사랑은 그러한 방해에 저항하는 힘일 수 있다. "그대여 사랑을 아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 사랑은 전 존재가 투여되는 조건을 전제한다. 그래야 자아의식의 껍질을 깰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존재는 자신을 상대화할 수 있는 실질적 계기이자 사랑을 통해 그에게서 도리어 자신의 형상을 발견하고 자아의식의 철옹성을 허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개의 경우, 나는 "나만을 사랑하려/ 철옹성을 구축하여/ 다가오는 사랑에/ 화살을 퍼붓는 겁보입니다." 자기가 상대화되면서 자아의식의 철옹성이 깨지게 되나 그때 그 의식은 존재의 위기를 느끼게 된다. 그 위기 때문에 겁을 먹고서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할 수 있다. 그 사랑이 자아를 확장하기 위해 "다가[와서는]" 깨진 껍질의 상처조차 회복시킬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겁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셈이므로 "그대"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 한 발 더 다가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에 시행착오는 무수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뿐더러 내다보더라도 그 적절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인생은 하염없이 걷기만 하는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길을 가기는 가는 것인지 아리송할 때도 있다. "그대여 길을 가는가/ 까마득한 숲에서/ 언제나 같은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헤매고 있는 바람입니다." 자아의식을 갖고 인생의 길을 걷기는 하지만, 그 길이 자신의 참 자아에 이를는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탐색이 자아의식의 주도로 진행된다면, 여전히 그 경로에는 "악어 소굴," "철옹성," 그리고 바람길이 기다릴 뿐이다. 참 자아는 그 자아의식을 포기할 때 그 모습을 보여준다. 자아의식이 참 자아인 양 행세할 때는 모색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 반면에, 그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자아의식은 자체를 회의하게 되어 있다. 참 자아가 내면에서 그러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자아가 결국 그것을 찾고자 하는 자를 부르는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말할 듯하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어서 가보게/ 그대의 가슴으로." 가슴에 참 자아가 있다. 물론, 가슴은 해부학적 용어가 아니라 참 자아가 존재하는 상상과 의지의 공간이다. 가슴이 부를 때 그 부름에 응하면, 그대는 강을 건너고 철옹성을 깨트린 뒤 바람길을 가로질러 그 바람마저 머무는 울창한 숲속의 빈터에서 하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자아의식을 깨트리고 참 자아를 발견하는 일은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하다. 우리의 참 자아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에게 심어놓으신 그분의 형상에 상응한다. 신앙생활이란 다름 아니라 그렇게 이미 주어진 참된 자아의 형상을 현실화하는 노력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를 때 신앙인은 참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뜻을 찾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이 때문에 자신의 참된 자아에 반영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분께 묻고 강을 건너고 철옹성을 깨트리며 바람길을 가로지르는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어서 가보게/ 그대의 가슴으로."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믿음을 파편적으로 이해한 한국 개신교...은총의 빈곤 초래"

칼빈주의 장로교 전통이 강한 한국 개신교가 '믿음'을 파편적으로 이해한 탓에 '은총'에 대한 신학적 빈곤을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13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줄이는 것도 에너지 필요"

기후위기 시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배현주 박사(전 WCC 중앙위원, 전 부산장신대 교수)가 얼마 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바르트의 인간론, 자연과학적 인간 이해와 대립하지 않아"

바르트의 인간론을 기초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의 신학적 이해를 시도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이용주 박사(숭실대, 부교수)는 최근에 발행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여성 혐오의 뿌리는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이원론"

여성 혐오와 여성 신학에 관한 논의를 통해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우며 성서적인 교회론 확립을 모색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조안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세속화와 신성화라는 이중의 덫에 걸린 한국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최영 목사가 기장 회보 최신호에 실은 글에서 기장이 발표한 제7문서의 내용 중 교회론, 이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정치를 외면하고 지상의 순례길 통과할 수 없어"

3월 NCCK '사건과 신학'에서는 4월 총선을 앞두고 '4월의 꽃, 총선'이란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선거 참여와 정치 참여'란 제목의 글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 형상은 인간우월주의로 전환될 수 없어"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가 '기후위기 시대의 신학적 인간 이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박 교수의 창조신학을 엿볼 수 있는 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기독교가 물질 배제하고 내세만 추구해선 안돼"

장신대 김은혜 교수(실천신학)가 「신학과 실천」 최신호(2024년 2월)에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지구 신학의 형성을 위해 물질에 대한 신학적 반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