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을 맞이하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24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를 모체로 하여 출범한 이래 지난 100년간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추구하며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펼치기 위하여 헌신해 왔다. 그 여정은 하나님께서 손수 펼치시는 선교 사역(Missio Dei)에 동참하여 이 땅에 정의·평화·생명(JPIC)을 구현하고자, 가난한 이들의 자리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복음(mission from the margins)을 신실하게 따르는 과정이었다.
지난 100년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였다.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 해방 후 남북 분단과 전쟁의 참화, 극단적 이념 대결로 인한 갈등, 분단국가 체제 안에서의 독재와 부패,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와 불평등의 심화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 난관을 돌파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 양 측면에서 이례적 성공 사례로 평가받을 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야말로 역동적인 현대사였다.
한국교회 역시 그 격동의 역사 가운데 함께하였다. 교회는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에 맞서 자주독립을 향한 대열에 함께하였고, 전쟁으로 상처 입은 민중들을 위로하는 역할을 감당하였으며,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고, 경제적 차별로 고통을 겪는 민중의 편에 섰으며, 굳어진 분단체제를 넘어서고자 화해의 일꾼으로 나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는 영광의 역사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역사 또한 안고 있다. 저세상만 바라보는 신앙으로 부당한 현실을 지나치는 과오를 범하였고, 분단과 적대 의식에 사로잡혀 국가폭력에 가담하기까지 하였으며, 독재 권력과 경제 성장주의에 편승하여 사회정의를 외면하기도 하였다. 생태위기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물질적 풍요를 축복으로 오도하고, 성차별과 권위주의적 위계질서를 용인하였다. 사회적 보편가치에 역행하여 거꾸로 사회의 근심거리가 되었으며,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도 스스로 성찰하고 변화하는 데는 더디기도 하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00주년을 맞이하며 그 역사를 돌이켜 보는 가운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교회로서 그 몫을 다하기 위하여 자세를 가다듬고자 한다. 과오를 범한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며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고난을 함께 겪을 때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진실을 기억한다. 부당한 권력과 체제에 맞서 정의를 외치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할 때, 비방과 박해 가운데서도 적대 체제를 무너뜨리고 화해와 평화를 위하여 나설 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할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철저히 구현되는 진실을 새기며, 그 뜻을 이어받아 세상의 희망이 되는 교회로 거듭나고자 한다.
100주년을 맞이하며 오늘 우리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하며 그 역사를 되돌아본다. 1932년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는 「사회신조」를 채택하여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과제를 천명하였다. 그 신조는 하나님 안에서 온 인류가 한 형제임을 고백하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사회의 기초적 이상"이라는 믿음으로, 사회 개혁의 전망을 제시하였다. 신조의 채택 배경과 동기 및 교회의 실천 의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신조가 제시하는 인류 평등의 이상, 여성·어린이·노동자 등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과 사회복지의 전망을 주목한다. 오늘날까지도 온전히 성취되지 않은 그 사회적 과제들에 대한 인식은 계승되어야 할 교회의 책임적 태도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분열된 세계의 일치를 위한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따라 오늘의 세계 현실 가운데서 역사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한다. 분열된 세계의 갈등을 극복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룸으로써 그 책임은 완수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평화의 이상으로 자주독립을 외쳤던 3.1운동에 함께하고, 정치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적대적 대결을 넘어 화해와 평화의 일꾼으로 나선 교회의 전통을 계승한다. 그것은 분열된 세계 가운데서 대결 의식을 조장하고 갈등을 심화한 교회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는 것을 뜻하며, 정의·평화·생명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뜻한다.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정치적 권위주의가 강화되고 소외된 민중의 문제가 전면화하는 국면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새삼 자각하였다. 1974년 2월 제정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헌장」은 그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헌장」은, "대립과 차별을 해소하며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힘쓰고 인권을 증진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되 우선적으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소외당하는 자와 차별받는 자의 입장에 서는 예언자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과 더불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세계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이 위협받지 않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88년 2월 채택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또한 그 정신을 계승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빛나는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이 선언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헌신해 왔던 교회의 역량을 모아 민족화해를 이루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의 표현이었다. 교회의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고 사회적 파장 또한 컸던 이 선언은 역사적 책임 앞에 선 교회의 자세를 일깨워주었다.
2022년 채택한 「교회고백문서 - 코로나19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서 본 교회와 사회의 현재와 미래」는 인류가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던 전지구적 팬데믹 현상 가운데서 교회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역사적 책임을 환기하고 있다. 이 문서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벌어진 팬데믹을 마주하며 인간의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 통찰을 지향한다. 그 통찰을 바탕으로 한 이 문서는 전지구적 위기 대응에 무력하기만 하였던 교회가 온 생명을 위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 고백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구원의 희망을 준 교회의 역할을 되새기며 오늘 세계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입장을 밝힌다. 우리의 입장은 생명·평화·정의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다. 생명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서로 돕는 가운데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하여 주시며, 평화의 하나님은 서로를 밀쳐내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적대를 넘어 새 하늘 새 땅 평화의 세계로 인도하여 주시며, 정의의 하나님은 누구나 일용할 양식을 누리는 가운데 삶의 기쁨을 맛보는 세계로 인도하여 주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다음과 같이 오늘의 세계적·사회적 과제들을 밝히며 우리의 결의를 다진다.
사회의제 - 한국교회의 경청과 응답
사회 의제를 선정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좌표를 확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과 부정의는 정치,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 속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가속화된 신냉전 구도가 한반도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고, 인공지능(AI) 중심의 디지털 문명은 산업과 노동시장을 비롯하여 삶의 지형을 변화하고 있다. 화석에너지 기반의 자본주의 문명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지구 지표면 온도를 높이고, 기후위기는 약자에게 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문명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한국 사회는 성장과 개발을 목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생존하였다. 그 결과 고도의 성장과 물질적 풍요는 이루었으나 서로 존중하고 서로 살리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적대하고 서로 배제하는 폭력과 죽임의 문화를 양산하였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경청하고 응답해야 하는 자리이자 앞으로 100년을 향한 성찰과 개혁의 자리임을 고백한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목하는 사회 의제는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긴밀하게 얽혀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 물질문명과 생명 파괴 문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사회 의제는 세계교회와 연대해야 하는 과제임을 밝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자본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보다 우위가 되는 사회에 응답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정부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경제개혁을 감행하였다. 세계화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표준이 되었고, 규제 완화, 민영화, 시장 개방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기업 편향의 경제구조는 대규모 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장시간에 걸친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불평등한 임금 구조는 중산층의 몰락과 서민층의 빈곤을 심화시켰다. 소득불균형과 자산불균형으로 인한 부의 양극화는 상대적 박탈감, 우울, 불안, 분노 등의 사회 문제로 확산하였다. 자본주의는 경제 그 이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은 폄훼되고, 사회적 신뢰와 공동체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부정의일한 만큼의 몫을 가져가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정의로운 사회를 요청한다.
국가 주도의 한국형 신자유주의 체제는 기업경제에 호황을, 서민경제에 불황을 안겨주었다. 고금리, 고물가, 가계대출 증가, 실업과 비정규직 확산은 민생을 악화하였고, 임금 소득이 자산 소득을 따라갈 수 없는 사회에서 성실한 노동은 경제적 불이익이 되어버렸다.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주거는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이 자산과 거주지역을 기준으로 계급화되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은 사라지고 공존과 연대가 설 자리를 잃었다. 경제 부정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넘어 정치적 비민주주의와 사회적 병리 현상의 원인이 되었다.
정치 양극화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경쟁하며 소통하는 정치 민주화가 절실하다.
한국 정치는 공공선을 위한 사회적 공론장이 아니라 권력투쟁의 장이 되었다. 참여와 협력의 정당정치가 아니라 진영논리로 구축한 파당정치가 횡행하고, 국민의 삶과 권리, 국익과 안보를 향한 이념과 가치 대신 권력 자원을 향한 배타적 정치가 성행한다. 현재 극단적 양당 체제는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거부하고, 합리적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구조와 일방적인 소통만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분단의 트라우마와 정치와 자본이 결합된 권력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정치 양극화는 사회분열을 넘어 시민의 정치 참여와 공동체의 책임성을 약화하는 것으로, 사회적 소통과 통합을 위한 정치 민주화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디지털 문명생명 존중과 인간 존엄을 보장하는 디지털 문명을 지향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 디지털 문명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세계는 시간과 장소를 넘어 온라인으로 소통하고, 산업 간 경계를 넘어 첨단 자동화 체계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데이터 입력을 위해 일하는 그림자 노동이 국경을 초월하여 양산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기술 독점, 딥페이크 성범죄, 가짜 뉴스, 사생활과 인권 침해, 정치 공정성의 위협 등 디지털 문명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혁신적 산업문명으로의 전환에서 생명 존중과 인간 존엄이 보장되는 윤리적 인식과 정책적 법제화가 시급하게 요청된다.
노동 현실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시장의 안정화가 시급하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 중심의 시장구조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갈라치면서 노동권을 박탈하였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저임금 노동과 비정규직 일자리가 보편화되면서 노동시장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 AI와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 위험의 외주화로 밀려드는 이주 노동자와 하청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의 분절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노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의 기본행위이자 삶의 의미와 본질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확보하고 노동시장을 안정화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다.
사회적 재난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체계와 사회적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고, 인간의 기본권리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 불의한 구조가 사회적 참사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나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인간의 상호관계성을 재확인하게 했고, 각 참사의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시민의 공감과 연대는 고통 속에서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나아가서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 생명과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연대와 공존에 기반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힘써야 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혐오상대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공존과 연대의 사회를 지향한다.
혐오가 범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과거 군사정권이 사회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 국가 주도로 혐오가 이루어졌다면, 민주화 이후 지속되는 경제 위기와 사회 불안 속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였다. 혐오는 권력이자 이데올로기다. 특정 존재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사회 내 위계질서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고 집단의 폭력으로 확대된다. 특히 한국교회는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지 못하고 배제와 혐오를 일삼았던 지난 일들을 반성하고 사랑의 가치와 공감과 공존에 기반한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폭력의 일상화생명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삶의 경험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
한국은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이다. 경쟁과 투쟁에서 낙오한 이들의 좌절과 소외, 불안과 분노가 폭력으로 번지고 있다. 번아웃, 불안장애, 마약, 성, 게임 등의 중독, 그리고 증가하는 자살률은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묻지마범죄(이상동기범죄)와 교제 살인의 증가는 사회적 관계 단절, 고립감과 과잉 분노로 가득 찬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다. 폭력이 일상이 된 사회의 근원에는 한국 전쟁, 국가폭력,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는 물론 기득권에 의한 힘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시대 폭력 현상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선 사회적 병폐로, 더불어 사는 삶을 잃어버린 사회의 비극이다.
이주민이주민과 동행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인식과 정책이 필요하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지방소멸의 위기는 이주민이 유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250만 명이 넘는 이주민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차별적이다. 폐쇄적 유교문화, 이민자에 대한 차별 인식, 도구적이고 시혜적 차원의 이민정책은 사회분열과 외교관계의 갈등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이주민을 둘러싼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이주민이 한국 사회에 안전하게 정주하고 정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인식과 정책 시행 그리고 시민 모두의 환대가 필요하다.
인구절벽인구절벽은 불평등한 경제구조와 성차별적 사회구조에서 출발한다.
생활 수준의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평균 기대수명은 증가했으나 저출생은 생산인구의 감소를 가속화하고 있다. 저출생, 고령화는 노동인구 감소, 소비 및 세수 감소 등의 경제적 영향은 물론 1인 가구의 증가, 연금 제도 개혁, 이주민 유입 및 다문화 사회 도래, 고독사 등의 사회적 변화와 제도 개혁을 수반한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은 청년세대의 주거와 고용 문제와 출산과 육아에 대한 성불평등한 인식과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양육 부담을 낮추고, 주거와 고용을 안정화하는 것이 저출생 해결의 급선무이다. 경제 안정화와 성평등한 사회 구조는 삶의 재생산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과 긴장을 해결하는 길이 된다.
성차별모두를 해방하는 정의롭고 평등한 인식과 제도가 요청된다.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 인식과 성불평등한 구조는 시대의 과제이다. 평등한 교육 기회, 여성의 고용 증가 이외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편중된 출산과 양육, 가사와 돌봄 노동을 해소하는 성평등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여성의 경력 단절, 저임금, 비정규직에 배치된 여성 노동은 개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문제이고, 사회 상층부로 갈수록 여성의 정치 참여율, 기업 내 임원 비율이 낮아지는 것은 사회구조의 문제다. 성 정의를 회복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 회복을 넘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존엄과 해방을 위한 것으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전환을 위한 토대가 된다.
청년세대다양한 청년정책 마련과 불평등과 부조리를 완화하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청년 문제는 고용불안, 세대갈등, 젠더갈등, 부의 양극화, 불안과 우울의 심리적 고통 등 다층적 문제로 전개되고 있다. 기성세대가 점유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일자리에 대한 반감이나 30년 뒤 연금 고갈 상황에 대한 불안감은 세대갈등을 부추기고, 경제적 취약성과 불공정에 대한 감각은 젠더갈등을 넘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부조리를 경험하였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 및 사회에 대한 냉소가 팽배한 이들에게 섬세하고 다양한 청년정책을 마련하고 불평등과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비핵화와 평화담론을 위한 책임있는 주체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국내 전쟁위협과 긴장을 넘어 동북아 및 국제 안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권력질서에서 미국 일변도의 안보 정책은 냉전 구조를 강화하고, 동맹국으로서 지위와 자율성의 행사를 저해하고 있다. 이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비핵화, 군비 축소, 한미 간 대등한 군사 동맹으로의 전환 과제는 신냉전 구조 속에서 퇴행 중이다. 미국 전초기지의 가능성이 농후한 제주와 새만금 국제공항사업이나 주한미군의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은 미국 의존적인 불균형한 상황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에 한국교회는 그간 생명을 말살하는 힘을 용인하고 국가폭력에 부역한 죄를 고백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평화 체제의 책임있는 주체로 비핵화 논의와 평화담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식민지 역사 청산과거사 청산은 이 땅에 정의와 평화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일본 정부는 일제 식민 지배에서 자행한 강제징용과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하지 않았다. 한일 양국은 국제사회의 전략적 동반자이자 혐한과 반일 관계의 적대자로 이웃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에서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식민 지배를 부정하고 역사의 퇴행을 일삼는 일본 정부와 이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 양측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의 과제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이룩한 폭력의 역사를 증언하고, 피해생존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이것은 또 다른 전쟁과 폭력의 구조를 거부하고, 이 땅의 정의와 평화,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기후위기인간중심적 세계관과 탐욕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생명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희망한다.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문명과 약탈적 자본주의 체계는 기후변화를 가져왔다. 기후변화는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한편,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더 많은 피해와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은 인간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인간을 세계의 지배자로 여기고, 개발과 성장을 명목으로 자연과 다른 인간의 착취를 정당화하였다. 지금의 생명과 지구공동체의 위기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빚어낸 불의한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교회는 인간중심적이고 이분법적 세계관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면서 생명 중심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야기해야 한다. 하나님이의 창조세계는 모든 생명이 연결된 하나의 그물망으로, 생명에 기초한 정의로운 전환이야말로 인류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다.
새로운 100년을 향하여
지난 100년은 한국사뿐 아니라 세계사의 격동기이기도 했다. 세계 대전의 참화를 겪었고, 더불어 인간성 말살의 참담한 비극을 겪었다. 그 참화와 비극의 고통이 컸던 만큼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비상하였다. 인류는 폐허를 딛고 풍요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 분투했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국제적 협력을 배가했고, 모든 사람의 존엄한 삶을 위하여 인권의 가치를 고양하였다. 그 성과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두운 그늘 또한 짙어졌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풍요와 더불어 부의 불평등과 자연의 훼손이 심각해졌다. 일상화한 기후위기에 더하여 전례 없는 팬데믹의 위기까지 겪어야 했다. 나라들 사이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또한 전쟁과 다르지 않다. 그 가운데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고통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앞서 주목한 사회 의제들은 바로 그와 같은 세계적 상황 가운데서 특별히 우리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들이다.
오늘 교회는 그 과제들 앞에서 스스로 돌아보며 응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간의 삶이 파괴되고 피조물의 신음이 깊어 가는 현실, 정의가 무너지고 평화가 파괴되고 생명의 존엄성이 말살된 세계 안에서, 교회는 정의·평화·생명의 복음을 구현해야 한다.
정의로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는 배타적 권력과 물질의 독점으로 인한 불평등한 차별의 세계를 넘어 저마다 마땅한 몫을 누리고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는 공평한 세계를 이루기 위하여 헌신하여야 한다. 평화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교회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종식되고,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화해하며, 전쟁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삶의 평화를 누리도록 헌신하여야 한다. 고귀한 생명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교회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피조세계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앞장서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가장자리,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선교를 몸소 보여 주시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신다. 교회는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하며 오늘 절망하는 세상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모인 우리는 여러 다양한 신앙고백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그 전통을 존중하는 가운데서도 일치를 추구하며 부단히 협력하는 또 하나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지난 100년간 교회가 마주한 세상의 일치를 위한 협력 가운데 물려받은 공통의 유산이다. 정의·평화·생명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그 유산의 정수이다.
우리는 그 공통의 유산을 발판으로 하여 오늘 이 땅 위에서 희망을 주는 교회로서 몫을 다하기 위하여 더욱 정진하고자 한다. 땅끝에 이른 복음의 정신이 온 세계를 감싸안음으로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 가운데 다가오는 100년을 맞이한다.
2024년 11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