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식 한일장신대 교수가 예수의 핵심 메시지 "하나님 나라"는 신앙적인 언어이자 정치적인 언어였다고 주장했다. 차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신앙적인 언어, 정치적인 언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같이 밝히며 보수 개신교 목사들이 "정치적인 언어와 신앙적인 언어를 편리하게 양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글에서 차 교수는 먼저 "(예수)당시 로마 황제가 다스리던 왕국 시대였지만 그 제국 위에 하나님이 왕중 왕으로 통치하는 새 나라가 임하리라는 예언은 그래서 정치적으로 위험했고 결국 예수님은 정치범으로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구약성서의 메시지는 제사장 전통이든, 예언자 전통이든, 아니면 신명기 사관에 입각한 것이든, 신정통치의 세계관을 깔고 형성된 것이었기에 세속정치든, 종교적인 신탁의 정치든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며 "요한계시록의 저자에게 로마제국의 정치권력은 사탄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음녀 바빌론"의 불의한 권세로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할 사악한 원수였다"고 설명했다.
또 "세속정치에 비교적 보수적인 사도 바울조차 대로마제국 인식이 그 권세가 하나님의 공의를 집행하는 사자(messeng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 그 공권력에 순복하는 것이 마땅할지라도 그 권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적 권력과 결부돼 하나님의 공의를 그르치거나 대적할 잠정적 원수로 늘 경계 대상이었다"고 덧붙였다.
바울에 관해서는 John Barclay를 언급하며 "(그의)통찰대로 바울은 반정치적이지도, 비정치적(apolitical)이지도 않았고 현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하지도 않았으며 그 실체를 무시하지도 않았다"며 "오히려 미시적인 국면에서 그의 정치외교적 수완은 에클레시아를 세우는 역량으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다만 그에게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나라의 값어치에 비추어 이 세상의 제국과 그 권력은 아무리 막강할지라도 지나가는 한시적 영향변수로 상대화되었을 뿐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차 교수는 "이모 목사님의 변명처럼 오늘날 보수적인 다수 목사들이 정치적인 언어와 신앙적인 언어를 편리하게 양분하고 후자의 순결성으로 전자의 음흉함을 커버하길 좋아한다"며 "또한 정교분리의 논리를 툭하면 내세우는 것이 현실 정치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방편인 양 간주하지만 그 기원은 서구 역사 속에 신구교 교회 간, 제후와 황제 간 복잡하게 뒤얽혀 저지른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교훈으로 소급될 뿐인데 그 형식논리만 차용해 이 땅에 피상적인 맥락에서, 특히 책임 회피적이고 자기 보신적인 논리로 유통되는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차 교수는 이어 "그들은 당회와 제직회와 노회/연회/지방회와 총회 등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앙의 언어로 정치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의 기준으로 신앙적 언어의 수위를 조절하는 데 민첩하다"며 "그 내심과 내막을 자기성찰적인 맥락에서 드러내며 지적으로 끝까지 정직하고자 하느냐, 속으로 꽁꽁 숨기며 정치적인 타산 속에 눈 가리고 아웅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부인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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