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대담

"때때로 개념적 전제들이 하나님 앞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통과해야"

『폰티스 코드 : 차원 전환과 유-무-용-영 힘의 구조』 저자 김리아 박사 인터뷰 1부

복음과 영성을 접목해 독창적인 연구활동을 전개해 온 영성신학자 김리아 박사(나다공동체 대표, 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 원장)의 오랜 탐구가 응축된 신간 『폰티스 코드 : 차원 전환과 유-무-용-영 힘의 구조』(신의 정원, 744쪽)가 출간된 가운데 며칠 전 김 박사와 본지 사무실에서 만나 저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박사는 인터뷰에서 영의 흐름을 관통하는 것으로 성령에 의한 '수동적 이끌림' 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종교 체험이란 사유와 행위를 앞세운 자기 의식 지평이 아닌 무의 차원에서 자기 의식 밖의 초월적 지평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확인해 주는 영의 서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저자 김리아 박사(십자가의 도를 변증한다는 의미로 바꾼 김화영 박사의 새이름. 이후 김리아로 표기)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성해석을 주제로 박사학위(Ph. D.)를 받았으며, 서울신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가르쳤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길이상 3부로 나눠 싣는다.(스압주의)-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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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폰티스 코드』 저자 김리아 박사

-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영성과 복음을 접목한 벽돌 같은 책을 내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편집장님께서 이 책을 "복음과 영성을 접목한 영성신학서"라고 표현하신 것이 저는 참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분명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 안에 서 있지만, 복음이 단순한 교리적 신념이나 감정적 위안으로 축소되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복음은 결코 지성이 없는 신앙을 요구하지 않으며, 동시에 차갑고 개념적인 사유에 머무르는 학문도 아닙니다. 지성과 영성, 진리와 은혜, 고백과 실천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호흡하는 것-저는 그것이 성서가 보여주는 복음의 본래적 위대함이라고 믿습니다.

저에게 성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경이로움은, 활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만난 한 인간의 내면이 옥토로 갈아지고 영과 진리의 말씀의 지혜가 삶을 통해 '깨달아질 때'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 체험이 얼마나 사람의 존재를 바꾸는가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이 그 생명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영혼의 층위가 새롭게 열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실제적 변화를 일으키는 현장을 만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좋은 삶을 사는 법"이나 "신앙적 성숙을 위한 조언"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저는 존재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전체 삶의 구조가 다시 짜이는 그 '차원 전환'의 여정을 학문적으로 또 영적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식의 차원, 시간의 감각과 관계의 방식, 고통과 희망의 구조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조직되는 자리를 저는 '영성 형성의 지점'이라고 부릅니다. 변화가 아닌 전환, 성장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신과 인간이 만나는 위대한 존재의 이동, 저는 그 자리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목적은 각 학문적 이론을 해설하거나 비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지식과 이론을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재배열하여, 진리의 목적을 향해 정렬시키는 것입니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진리에 순복하고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것" - 저는 이것이야말로 신학이 추구해야 할 본질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학문이 자아의 명예와 지적 성취를 위해 존재할 때 얼마나 쉽게 교만해지고 환원되고 왜곡되는지 익히 보아 왔습니다. 그렇기에 특히 신학교육이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때로는 모든 개념적 전제들이 하나님 앞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는 경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야곱이 자신의 힘과 생존의 축이 무너진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순복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었듯이, 저는 학문도 그러한 영적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사실 이 책의 근원에는 저의 깊은 영적 체험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인간의 의가 완전히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남았던 깊은 회심의 자리를 지나면서, 저는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 얼마나 실존적 고백인지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금식과 열심, 사회정의의 실천이나 인간적 의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리-바로 거기에서 저는 복음을 우주적이면서 동시에 극도로 개인적인 방식으로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 복음은 제게 하나의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이 한 인간의 삶을 새롭게 창조하고 세계 속에서의 존재이유를 설명하는 살아있는 서사시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서사에 응답한 한 사람의 고백이자, 그 신비를 함께 나누려는 초대장입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복음이 이렇게도 광대하고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진리였구나"라는 감동을 조금이라도 경험하신다면, 저는 그것만으로 이 책이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믿을 것입니다.

- 이번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오랜 기간 글을 써왔습니다. 글쓰기는 하늘이 제게 준 선물이자 숨쉬기와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백일장의 상은 늘 제가 도맡아 받았던 기억도 있구요. 돌이켜보니 가르치고 목양하는 바쁜 중에도 1-2년에 한번 꼴로 2-3백 페이지가 넘는 저술과 번역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학문 분야의 저술에서 연구 성과도 꽤 있었습니다. 집필과 강의, 현장 적용과 내면적 성찰은 제 삶의 리듬이자 부르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7백 페이지가 넘는 집대성서인 폰티스 코드의 출간계기를 묻는다면 가장 먼저는 지난 십여 년간 축적된 목회와 깨어나기 과정, 영성 지도에 집중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전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고 동행한 경험일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은 제게 실존과 진리, 성서와 현실의 거리를 좁히는 소중한 현장적 통찰과 영적 성장에 관한 안목이 쌓이게 해 주었습니다. 또 대학원과 연구원에서 강의했던 자료(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 녹음녹취하여 풀어 둔 자료들)의 축적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은 단순한 이론 정리가 아니라, 사유와 체험, 실제 사역 현장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때가 찬' 결단과, 이 내용이 꼭 책으로 종합되기를 바라며 아끼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요청과 수고로 나온 책입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오랜 시간 축적된 영성 형성의 노하우 + 신학적 탐구 + 현장적 검증이 한 지점에서 만난 통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간 영성지 na.da와 월간 묵상지 보시니 참 좋았더라를 발행, 편집하면서 글쓰기와 영성훈련을 했던 시간, '나다영성연구소'(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의 전신)에서 76기를 거듭한 '깨어나기 과정'과 연구원의 포스트 디그리 과정 교육을 하면서 축적된 전환의 원리와 강의자료, 그리고 제가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했던 현대신학 세미나, 종교와 영성, 인문학적 지혜 강의들, 그리고 성서를 차원전환적 관점(신-인-세계 관계의 탈구조적 구조)에서 해석한 일련의 강의들이 총체적으로 이 책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 여정을 이끌어 온 저의 화두와 학문적 여정에 대해서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20대 중반에 큰 영적 체험을 한 후, 사역 현장에서 계속 헌신하며 영성지 『na.da』의 발행편집인과 묵상지 『보시니 참 좋았더라』의 편집인 등 문서사역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학문적 공부는 40대에 시작하여 영성을 현상학적-해석학적-성서적으로 통합하는 접근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 논문으로 성화 과정을 해석학적 성서모델로 정립했을 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고, 연세대학교 조직신학 석사과정에서는 에크하르트의 영성사상을 '오직'의 원리 안에서 재구성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또한 '사랑의 신학'(제디스 맥그리거) 번역 작업을 통해 케노시스(자기비움)의 영성적 원형에 보다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 대학원과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제 박사논문의 화두는 "영성을 어떻게 삶으로 풀어낼 것인가"의 화두를 담고 있으며 그 후 학회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영성, 삶으로 풀어내기』라는 책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냈습니다. 영성을 삶으로 풀어내는 것은 제 연구와 실천의 지속적인 화두입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저는 현대 사상, 특히 현상학과 현대영성, 그리고 과학철학 및 현대물리학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특히 과학자들과의 교류와 현대과학서와의 만남은 제 사고를 더 확장해 주었고, 현대현상학과의 만남은 "의식과 차원"이라는 주제를 보다 학문적으로, 동시에 영성적으로 구조화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간의 내면과 영성의 경험은 결코 신비적 언어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존재론·현상학·물리학적 세계 이해와도 연결될 때 더 풍부해진다는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뇌와 심층심리학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했는데, 뇌와 영성교육을 연결한 번역서, 『뇌와 종교교육』과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학분야 출간지원을 받은 두 권의 책,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 『내일의 종교를 모색하다』 등은 최근까지도 계속했던 연구 결과입니다. 목회의 결과물인 『본 어게인』과, 『우리의 크레도』는 복음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거라 믿습니다.

출간의 의미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해보자면, 저는 이제 "정리하고 넘겨야 할 시기"가 왔다고 느꼈습니다. 15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교육사역을 통해 깨어났고, 그 과정은 더 이상 하나의 프로그램이나 개인적 사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학문적 언어와 신학적 사유, 인문학적 통찰, 영성 형성의 실제가 하나의 구조로 제시되어야 할 때였습니다. 이 책은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영적·지성적 지도를 남긴다는 마음으로 쓴 책입니다.

- 기존 영성신학서와 달리, 폰티스 코드는 '영(0)'을 다루기까지 유(Yu/有)-무(Mu/無)-용(Yong/用)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인상적입니다. 저자만의 독창적 영성신학으로 보이는데, 삼라만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유-무-용-영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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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폰티스 코드』 저자 김리아 박사

많은 분들께서 이 책이 기존의 영성서적과는 결이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영성에 대해 단순한 영적 조언이나 명상 방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어떻게 변형되고 차원을 이동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신학·철학·과학적으로 통합하여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영을 'spirit'으로만 표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기독교 교리가 말하는 중생과 성화의 여정을, 성서-체험적 고백-현대물리학-현상학이라는 네 개의 언어를 가로지르며 교차학문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이 네 전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이 다른 차원과 겹쳐 있으며, 그 차원을 넘어 이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각기 다른 감각으로 증언합니다. 성서는 전환의 서사적 지도를 제시하고, 영적 체험은 그 전환이 인간의 몸과 감정, 상처와 관계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존재적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물리학의 통찰과 현상학적 자각이 결합되면서, 저의 핵심적 주제, '차원 전환(dimensional transformation)'을 가장 구조적이면서도 실존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저의 사유에 '구조영성학'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하셨습니다. 참고로 저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차원 전환을 일으키는 네 힘의 장을 "마당(Madang)"이라는 한국적인 공간 감각과 연결하려 했습니다. 물론 더 깊은 담론의 두께가 쌓여야 하겠으나, 의의가 충분한 시도라고 봅니다.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다층적 차원이 겹쳐진 '의식의 마당'에서 일어나는 역동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래서 유무용영을 굳이 한글 발음 그대로를 고집하면서 Yu-Mu-Yong-Yeong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는 서구 철학의 Being-Nothingness-Emergence-Spirit라는 단어로 환원할 수 없는 입체적 차원의 깊이와 결을 지니며, 동서·고금·신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전인적 사유틀을 한국인으로서 표현하고 싶었다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네 힘의 역동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Yu)는 익숙한 정체성과 질서, "이미 알고 있는 나의 세계"가 작동하는 관성의 장(場)입니다. 이곳에서 유는 '존재의 좌표'를 제공합니다.

무(Mu)는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틈과 균열을 통해 차원의 문이 열리는 임계 지점이자 잠재성의 무한 장이며 모든 차원들의 접속면마다 존재합니다. 공허의 심연이 될 것이냐, 구원어린 새 창조가 준비되는 잠재성의 장이 될 것이냐는 신론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용(Yong)은 Mu에서 열린 가능성이 삶과 관계와 공동체적 실천 속에서 창발적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로 구체화되는 힘입니다.

영(Yeong)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합하고 조명하는 근원이자, 신-인-세계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하는 메타 영성의 통찰과 리더십입니다. 유-무-용-영의 흐름은 사실 영→무→용 →유의 순환으로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즉, Yeong으로부터 오는 부르심이 Mu의 심연을 통과하고, Yong의 창조적 공동체적 재구성을 거쳐, Yu의 현실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이 책이 영성신학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네 힘의 구조가 삼위일체의 신적 생명력이 구원-성화-영화로 흐르는 구조를 유일신 하나님과 무의 관계가 인간과 세계의 마당 속에서 풀어지는 과정에 비추어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삼위일체 신학을 실존적 영성의 언어로 재번역한 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유틀에 대해 연대 박사과정의 지도교수이셨던 정재현 교수님은 출간 기념 논평에서 "<폰티스 코드>는 절묘하게도 각각의 원인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유-무-용-영을 독창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그러한 목석 같은 형이상학의 구조를 탁월하게 넘어서 살아 움직이며 살게 하는 힘의 역동성을 총체적으로 전개하고 있으니 가히 아리스토텔레스를 능가하는 대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 방향으로만 치달아가는 종래의 인과율이나 목적론을 넘어서 서로 주고받는 유기적 총체성을 그려냄으로써 살아 움직이면서 살게 하는 생명적인 학문적 과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라고 과찬해주셨습니다. 정재현 교수님과는 항상 영성적, 신앙적 관점에서의 논쟁과 사유의 긴장이 계속되기는 하지만, 제게 학문의 지평을 넓혀주신 분의 학문적 평가이기에 뜻깊게 생각합니다.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연구소 초빙연구원이셨고 한국천문연구원(KASI) 책임연구원인 과학자 이영웅 박사님은 "유-무-용-영의 흐름은 빅뱅의 혼돈 속에서 질서와 생명이 태어난 우주의 리듬과 같다. 인공지능, 인지과학, 바이오공학이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격변의 시대, 정신적 혼란과 기후위기, 그리고 국제 질서의 뒤엉킴 속에서 '진짜 인간다움'이 흔들리고 있는 시대에 이럴 때일수록 기계적 분석을 넘어서는 통찰, 그리고 생명을 품은 영적 지혜가 절실한데, 『폰티스 코드』는 과학과 신앙, 이성과 영성을 잇는 '근원의 다리(Fontis)'를 놓고 있다."고 평해주셨습니다.

결국 근원적 현재를 실현하는 이 네 힘은 삼라만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체계일 뿐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구원의 차원 구조, 즉 "어떻게 새로운 인간과 공동체가 '유'의 갇힌 한계를 넘어 다시 태어나는가"를 해석하는 틀입니다. 이것이 제가 제시하고 싶은 영성신학의 방향입니다. 영성은 반드시 개인적 위로나 수련을 넘어, 신-인-세계의 관계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메타 영성신학'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유-무-용-영의 구조는 단순한 철학적 모형이 아닙니다. 이 구조는 철저히 삼위일체론적인 기독교 영성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확장하는 신학적 구조와 맥을 함께 합니다. 저는 영성신학이 성부-성자-성령의 상호내주(perichoresis)와 케노시스(자기비움)의 신비를 떠나 독자적 체계를 세우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을, '유일신 하나님과 무의 관계성' 속에서 일어나는 연합의 비밀을 통해 알려줍니다. 결국 유-무-용-영은 우주의 원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며, 성서가 증언하는 구원 사건의 차원적 구조,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새로운 인간과 공동체의 탄생을 해석하는 틀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영성신학이 신비주의나 심리학적 위로를 넘어, 신-인-세계의 관계 질서를 새롭게 정립하는 메타 영성신학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영성신학은 종종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선입견이나, 신비주의로 흘러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박사님의 영성신학은 이러한 기존 영성신학과 어떻게 다릅니까?

영성신학이 추상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은 오래된 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진정한 영성이라면 결코 현실 도피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깊은 내면에 임재하신 영이신 하나님의 창조적 구원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진정한 사회변혁을 일으킨다고 믿습니다. 이는 제가 이 책에서 영을 단순히 'spirit'으로 표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가르는 핵심은 사실 "신비 체험"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신비를 자아의 고양이나 형이상학적 체험의 성취로 이해하는 태도가 영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위험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영성은 "충만한 자기를 비워 일치하신" 하나님의 본성-곧 자존하여 스스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끓어오르는 사랑의 넘침과 자유의 허용, 자기비허를 통한 일치로 인해 창조되는 빛, 영원한 생명의 시간과 공간에 기초합니다. 예를 들어서 신비주의 영성의 대가인 에크하르트의 '끓어오름(emanatio)'과 '비등(diffusio)'은 종종 존재의 정점으로 상승하는 영적 자기완성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원을 하나님의 존재 방식, 곧 '넘치는 사랑과 자기내어줌의 일체적 운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서가 계시하는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Zoe) 자체"이시며, 생명은 언제나 사랑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따라서 '끓어오름'은 정신이 고양되는 내적 경험이 아니라, 근원적 사랑이 자신 안에서 충만하여 자기 부정을 통해 흘러넘치는 신적 운동입니다. '비등'은 그 사랑이 고통받는 타자를 향해 내어지는 케노시스적 확산입니다.

상승적 신비는 인간의 영적 능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나, 복음적 신비는 항상 "악의 현실에 대한 긍휼과 탄식", "위로부터 오는 은총의 선물에 대한 믿음과 응답"을 강조합니다. "은총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넘침을 경험한다"는 고백은, 그 경험의 주체가 나의 개인적인 영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제적이고 낮아진 사랑임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에크하르트의 개념은 자기 고양적 초월이 아니라, 유일하신 신성의 사랑의 발화-자유의 허용과 삼위일체적 자기부정을 통한 일치-악의 다스림-창조의 확산이라는 근원적 구조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해석 안에서 그의 신비주의적 영성이 참된 깊이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신비가 개인적 환상이나 황홀로 환원되지 않으려면 '악의 권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악은 개인적이거나 율법적인 실수의 수준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영적 권세들이 작동하는 구조적 악의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신론이 기독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자기내어줌-일치-창조라는 '관계구조적 선(善)'을 본질로 하기 때문입니다. 유일신의 수직적인 전능 모델은 쉽게 억압적인 종교와 결탁합니다. 반대로 삼신적인 다양성 모델만 있다면 이는 진리를 상실한 상대주의를 낳습니다. 그러나 삼위가 일체를 이룬다는 진리는 사랑의 전능과 넘침의 은총과 자기비움으로 일치에 이르게 하고, 그 일치는 새 생명과 새 질서를 낳습니다. 이 구조가 악과 고통의 순환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신학적 해법입니다. 이 사랑의 은총과 십자가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환원하는 모든 것은 악합니다.

그래서 참된 신비는 폐쇄적 도피가 아니라, 넘치는 사랑의 은총과 자유로 자기를 내어주는 자기초월이며, 삼위일체적 일치를 통하여 다시 세상을 향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사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변혁으로 나아가는 신적 운동성입니다. 내면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은 하나님 생명의 근원에 닿을 때 반드시 서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근원에 접속한 영성은 필연적으로 역사와 인류애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유-무-용-영의 구조는 기존 영성신학과 분명히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저는 무(Mu)를 부재나 없음, 금욕주의나 자기고양의 황홀경으로 축소하지 않고 차원 전환의 관문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무는 존재의 해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만 있다면 부활과 창조의 문턱이 됩니다. 또한 용의 자기조직화는 자기 수양이나 자기계발, 도덕적 결심과는 차별화됩니다. 이는 온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차원들의 전체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부여하신 소명을 따라 현실과 역사 속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힘입니다.

이 책의 핵심인 "폰티스(Fontis)"라는 이름에도 제가 생각하는 영성신학의 방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근원으로부터 흘러넘치는 영원한 현재'라는 폰티스는, 가장 근원적인 것은 가장 구체적인 삶과 역사 속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뜻을 이미 담고 있습니다. 영성은 궁극적으로 성육신적(incarnational)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근원의 사랑을 품고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것처럼, 근원을 경험한 영성은 다시 "세상 속으로" 흐르게 됩니다. 저는 이를 폰티스(Fontis), 즉 근원을 품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기존의 신비주의와 제가 제시하는 영성신학의 본질적 차이입니다. 이에 대하여, 추구하는 방향성은 다를지라도 저의 사역을 지지해 주시는 문화인류학자이자 현장실천가인 임진철 박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폰티스 코드'에 대해 논평하셨습니다. "『폰티스 코드』는 영적 실천과 함께 다학제적이며 동서양을 넘나드는 사상입니다. 또한 '근원을 품고 세상 속으로!'라는 사회선교의 방향성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새로운 선교 모델을 제시할 것입니다."

결국 저의 영성신학은 영적 고양이나 내면적 위안을 넘어, 신-인-세계의 관계 질서를 새롭게 세우는 변혁적 창조의 영성, 그리고 삼위일체적 사랑과 생명력이 역사 속에서 구체화되는 영성을 추구합니다. 이것이 제가 기존 영성신학의 한계를 넘어 제안하고자 하는 새로운 길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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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한 편집인 jhkim@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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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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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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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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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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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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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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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