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예수 나를 위하여"

2026년 3월 29일 주일예배 설교

jangyoonjae
(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이사야 42:1-4, 고린도전서 11:23-26, 요한복음 13:3-8

설교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의 일입니다. 유월절 밤, 예루살렘의 공기는 차가웠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곧 체포되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밤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예수님은 식사 도중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릅니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당시 문화에서 매우 충격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발은 먼지투성이였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길은 흙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발을 씻기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체가 가장 낮은 종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방 안에는 대야도 있었고 물도 있었고 수건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도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발을 씻기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대야는 그대로 있고, 물은 그대로 있고, 수건도 그대로 있고, 발은 여전히 더러운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장면을 아주 천천히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먼저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으셨습니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장면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앞에 무릎을 꿇으셨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경배해야 하고, 섬겨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말 알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3장에서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대야 앞에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씻기신 것은 단순히 발이 아닙니다. 더러운 발입니다. 그 발은 먼지투성이입니다. 냄새도 납니다. 그 발은 조금 전까지도 누가 크냐고 다투던 발입니다. 그 발 중에는 곧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발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발은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할 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가룟 유다의 발도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는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발을 씻기신 장면입니다. 요한은 이 장면을 의미심장하게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은 처음부터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한 13:2) 세족(洗足)이 끝난 후에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이 아니니라."(요한 13:10-11) 요한복음은 바로 이어 설명합니다.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예수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유다의 발을 씻기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자신을 팔지, 무슨 일이 곧 일어날지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한 13:1)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의 끝을 뜻하지 않습니다. 헬라어 "에이스 텔로스"(εἰς τέλος)는 "완전히", "극한까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배신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랑이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완전한 사랑입니다.

유다의 발을 씻긴 사건은 곧 일어날 십자가 사건의 축소판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십니까? 의로운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도 아닙니다. 죄인을 위해 죽으십니다. 배신자를 위해 죽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도 씻기셨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하게 저항했습니다. "주님, 절대로 제 발은 씻기실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경건한 말처럼 들립니다. 겸손한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발을 씻기는 것과 주님과의 관계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베드로는 섬김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섬기신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알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섬기신다는 은혜의 언약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였지, "하나님께 섬김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높아질수록 더 많은 섬김을 받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높아질수록 더 많이 섬깁니다. 예수님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께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수건은 종의 상징입니다. 예수께서는 겉옷을 벗으시고, 종의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그것은 발을 씻기기 위한 단순한 준비 절차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 종의 형체를 취하신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빌립보서 2장의 고백처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이 그려내는 하나님은 권력을 휘두르는 신이 아니라, 자기 비움과 섬김으로 완전한 사랑과 주권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안에는 흔히 잘못된 신앙이 흐릅니다. 우리는 섬김을 윤리로만 이해합니다. 의무로만 이해합니다.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도덕적으로 더 낫게 살아보기 위해 섬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이 말들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올바른 신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섬김은 도덕적 과제로만 남을 뿐입니다.

요한복음은 더 깊은 진리를 말합니다. 섬김은 우리가 시작한 일이 아닙니다. 섬김은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인간을 섬기신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이며, 성육신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격이 있어야지", "내가 잘해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도 베드로처럼 손사래를 칩니다. "주님, 절대로 제 발을 씻기시면 안 됩니다." 이 말은 겸손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마가 10;45) 오신, 인간의 종교적 상식을 벗어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와 상관하지 않겠다는 거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종교의 구조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보통 종교는 사람이 신을 섬기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섬기시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섬김을 받은 사람이 마침내 다른 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우리가 서로 섬기는 이유는 섬김을 명령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섬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충분히 헌신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요한복음 13장은 오늘 우리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의 가장 큰 장애물은 죄가 아니라 자존심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도움받는 사람이 되기 싫고, 내가 은혜에 빚진 사람이 되기 싫고, 내가 씻김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무릎 꿇으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섬김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곧 양육강식의 폭력이 끝나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신앙의 시작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위해 하시는 일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그 은혜와 섭리를 수용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섬김과 책임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고난주일인 오늘, 우리는 한 찬송을 떠올립니다.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입니다. 이 찬송의 원래 가사는 미군의 시각장애인 시인 패니 크로스비가 지은 "십자가로 가까이"(Near the Cross)입니다. 그 시는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거기 흘린 보혈로 정케 하옵소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찬송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찬송가 작곡가 김인식은 그 말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의 수난과 억압의 현실에 맞게 새로운 가사로 빚어냈습니다.

1900년대 초, 나라의 주권이 무너져 백성이 고난받던 그 시대에,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이 노래는 단순히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 노래는 민족의 주권이 사라져 가던 1900년대 초반, 고난받는 백성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전하는 노래였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라는 고백은 사람의 존엄성이 짓밟히던 시대에 "내가 주님의 피 값으로 구원받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해방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나를 위하여"라는 이 가사는 지금도 삶의 무게에 눌린 이들에게 주님이 바로 당신을 위해 피 흘리셨고 여전히 함께하시다는 사실을 속삭여 주는 가장 따뜻한 위로요, 가장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대야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자기의 살과 피를 다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이 하나님의 섬김과 사랑과 희생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합니다. 마침내 우리 위해 골고다 언덕길로 오르신 이 놀라운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고난주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낮추시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가 서로의 발을 씻기며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게 하소서. 그리고 이 사랑을 이 예배당 안에만 두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먼지투성이 길 위에서도 서로를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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