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홍수 피해 현장
기후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을 돕는 일은 어디까지 이어져야 할까. 긴급구호를 넘어 재난을 키운 구조적 원인을 살피고, 피해를 입은 이들의 회복이 가능하도록 장기적인 연대와 책임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교회 기후재난 대응 세미나가 23일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네팔 대홍수, 기후재난과 한국교회의 선교적 대응」을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네팔의 기후재난 피해와 현장 구호 활동을 살펴보고, 기후위기 시대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신학적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발표 자료에는 홍수와 산사태로 무너진 건물, 토사에 뒤덮인 도로와 마을, 파괴된 생활 터전의 모습이 담겼다. 재난은 한순간에 발생하지만 그 피해는 재난 이전의 삶과 관계, 생계 기반을 무너뜨리며 오랜 시간 이어진다. 현장 사진은 기후재난이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주민들의 일상과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위기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첫 번째 발표에서는 김경수 선교사(TREE)가 2026년 네팔 홍수 피해 상황과 현장 대응을 보고했다. 자료집에는 피해 지역의 참상과 함께 구호물품 전달, 긴급지원 활동 등의 모습이 담겼다.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피해 상황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무너진 생활 기반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하는 일이다.
특히 긴급구호는 재난 직후의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게 김경수 선교사의 주장이다. 주거와 생계, 지역공동체의 회복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현지 교회 및 구호단체와 협력하고, 피해 주민들의 실제 필요를 살피는 장기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팔 홍수 피해 현장
이번 세미나는 이러한 현장 보고를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과 국제사회의 책임이라는 문제로 확장했다. 기후재난의 피해는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와 공동체가 오히려 큰 피해를 감당하고, 재난에 대응할 재정과 기술마저 부족한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팔의 기후위기를 이러한 불평등의 관점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자료에 따르면 네팔의 1850~2024년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27억8000만 톤으로, 같은 기간 전 세계 누적 배출량의 약 0.19%에 해당한다. 또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12.43톤으로 네팔의 1.45톤보다 약 8.6배 많았다.
이 같은 수치는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 현실을 드러낸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재난 발생 이후의 구호뿐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 피해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발표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를 지원하는 국제적 재정체계의 한계도 다뤄졌다. 기후재난으로 발생한 손실과 피해는 단순히 복구 비용을 마련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재난으로 사라진 생계와 공동체, 회복하기 어려운 자연환경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국의 필요와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줄이고, 책임과 역량에 걸맞은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됐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법과 기업의 책임 문제로도 이어진다. 세미나 자료에는 2025년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기후변화 관련 권고적 의견과 기후소송 사례가 소개됐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이 각국의 자발적인 정책에만 맡겨진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상 의무와 책임의 관점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배출 기업의 책임을 묻는 소송과 피해 예방을 위한 법적 대응 역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주요 과제로 다뤄졌다.
▲네팔 홍수 피해 현장
기후재난을 바라보는 신학적 성찰도 이어졌다. 장윤재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장은 「네팔 기후재난의 신학적 조망」을 통해 재난 앞에서 교회가 던져야 할 질문을 제시했다. 발표 자료는 재난 피해를 개인이나 공동체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며 책임 있는 응답을 모색해야 한다는 관점을 담았다.
그에 따르면 재난의 크기가 피해자의 잘못이나 책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후재난은 온실가스 배출과 경제적 풍요, 위험에 대한 노출과 대응 능력이 서로 다르게 분배된 사회의 구조를 돌아보게 한다.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누군가의 삶에 피해를 초래하는 구조가 존재한다면,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책임 역시 함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를 '구조적 죄'와 '느린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홍수와 산사태는 짧은 시간에 발생하지만, 그 위험을 키운 사회·경제적 조건과 환경의 변화는 오랜 시간 축적될 수 있다. 따라서 재난 대응은 눈앞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원인을 살피고 예방하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부채'라는 개념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역사적으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경제적 이익을 누린 사회가 기후변화에 취약한 지역의 피해와 적응 비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시혜적 원조의 차원에만 가두지 않고, 책임과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교회 기후재난 대응 세미나가 23일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신학적 논의는 인간 사회를 넘어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됐다. 재난으로 피해를 입는 존재는 사람만이 아니다. 가축과 야생동물, 숲과 강, 삶의 터전인 생태계 역시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 장 교수는 피조물의 가치가 인간에게 유용한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창조세계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신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이는 기후위기를 인간의 생존과 경제적 손실만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전환시켰다. 창조세계를 돌보는 일은 선택적인 환경운동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생명과 세계를 책임 있게 대하는 신앙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회복에 대한 이해 역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재난이 지나갔다고 해서 피해자의 삶이 곧바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집과 생계수단을 잃은 주민에게는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상실을 애도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세울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교회의 지원은 빠른 복구 실적만을 앞세우기보다 피해 주민의 속도와 필요에 맞춰 지속되는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장 교수는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