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 그리고 기독교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사상을 모색했던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摸) 선생. 이번엔 그의 철학과 한국사상과의 관계를 짚어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14일 씨알재단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선 박재순 소장(씨알재단연구소)이 나서 ‘유영모의 철학과 한국사상’이란 주제로 발제했다. 박 소장은 특히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유영모의 철학을 비교·분석해 이목을 끌었다.
박 소장은 “정약용은 훌륭한 학자이나 시대의 제약 속에 살았다”며 “여러 차례 천주신앙을 번복한 것은 그의 시대제약성을 나타낸다”고 평했다. 이와 관련, 그는 정약용과 유영모의 사상을 비교·분석한 내용을 열거했는데 이는 다음 세가지로 요약된다.
▲ 정약용은 민중, 민주의 시대를 예감했으나 민중 주체의 새 시대를 선언하지 못하고, 새 시대의 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 동서정신문화의 회통에 이르지 못했다. 선진유교의 토마스주의으 중세 카톨릭 철학(아리스토텔레스철학)을 통합하려고 했을 뿐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 비판을 심하게 했다 ▲ 하나님 아버지 신앙을 끌어들였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라고 했을 뿐. 다석 유영모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유롭고, 활달하게 하나님과 사귀며 놀이를 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등이다.
이밖에 대종교와 동학 등의 사상과 빗대어 유영모의 사상적 가치를 살펴보기도 했다.
특히 박 소장은 동학 사상과 관련, 동학이 갖고 있는 사상적 한계를 분석하며 그 한계를 일찌감치 넘어선 유영모 사상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박 소장은 “(동학의 시작은) 최제우의 하나님의 체험, 사천주(侍天主) 체험이 개벽 원년이 되었다. 하늘의 님을 모심이 새 시대의 출발이었다”며 “그러나 (동학 사상의) 이성작 사유화가 약화되었고, 죄와 죽음의 문제가 철저히 성찰되지 못했으며 철저한 자기부정, 죽음을 넘어 사는 신앙이 약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철학과 유영모의 사상을 분석해 보는 시간도 있었다.
박 소장은 “서구 근대철학은 인식과 사유의 주체의 인간이성의 철학, 주체와 실존의 철학을 탐구했다”며 “(하지만)유영모는 사물의 실체만을 탐구하지도 인간의 주체만을 탐구하지도 않았다. 인간 주체를 해체하고 해방해 주체와 전체, 나와 타자의 합일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성과 영성을 통합해 뜻, 사랑, 하나님을 탐구했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유영모 선생에게 하늘은 없음과 빔을 나타내기도 하고 우주 생명세계의 주체와 전체인 하나님을 나타내기도 한다. 즉, 유영모는 그의 하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체와 전체의 일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는 이어 “유영모는 땅에 발을 딛고서 살았으나 정신과 영은 하늘에서 살았고,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의 사람으로 살았던 것”이라고 평했다.
박 소장은 끝으로 이성과 영성의 종합을 이룬 유영모에 대해 “하늘처럼 확 뚫리고 터졌기 때문에 이성도 영성도 확 뚫리고 통했다”며 “이성을 한껏 인정하고 높였으며, 그 위에 영성을 맘껏 깊고 높고 넓게 펼쳐 이성과 영성을 종합했다”고 덧붙였다.
‘유영모·함석헌 사상과 영성’ 3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씨알재단측은 앞으로 △ 곧게 섬과 두루 뚫림(10/21) △ 생각하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10/28) △ 하나님을 탐구하면 만물의 변화를 알 수 있다(11/4) △ 하나로 돌아감(11/11) 등을 주제로 한 강의를 남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