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C. 판 신부(조지타운대학 신학부 석좌교수) |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한 신념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종교 간 대화에서 지켜야 할 미덕일까? 반대로, 종교의 핵심인 ‘신앙’을 접어두고 종교 간 대화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종교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베트남계 미국인 피터 C. 판 신부(조지타운대학 신학부 석좌교수)는 후자 쪽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종교적 신념 배제 않고도 종교간 대화 가능해”
판 신부의 이러한 견해는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이사장 호인수)에서 낸 '우리신학' 통권 8호(7월 말 발간)에 '종교간 대화에서 예수의 유일성과 보편성 주장'이라는 글로 발표됐다.
글에서 판 신부는 “종교간 대화에서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신념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신’ 또는 ‘종교설립자’에 대한 신앙은 견지하되, ‘종교적 제도’에 대한 유일성 주장은 종교간 대화에서 유보하는 것이 좋다며 종교간 대화가 가능한 지점을 찾아냈다.
“종교적 신념 배제한 종교간 대화는 공허”
판 신부는 “종교적 신념을 배제한 종교간 대화는 공허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라이문도 파니카의 견해를 빌어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는 것을 ‘판단중지’라는 말로 일컫고, ‘판단중지’는 “심리학적으로 실행 불가능하며, 철학적으로 불완전하며, 신학적으로 빈약하고” 결과적으로 “종교적으로 무익하다”고 말했다.
종교간 대화는 이성에만 의지할 수 없는 교의적 토론 그 이상이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실행 불가능하고,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진실을 위한 절대적이고 솔직한 탐구’를 요하므로 종교적 신념을 배제할 경우 철학의 그러한 요구는 처음부터 쓸 데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판단중지’ 상태에서 하는 종교간 대화는 “하찮은 것에 대한 공허한 수다보다도 더 의미 없다”고 덧붙였다.
“종교제도에 대한 유일성 주장은 위험”
이렇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은 채로 종교간 대화가 가능할까? 판 신부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믿는 ‘신’ 또는 ‘종교 설립자’에 대한 유일성 주장은 양보할 수 없어도, ‘종교 제도’에 있어서 만큼은 그 유일성 판단을 유보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예로 들어 ‘종교 설립자’와 ‘종교제도’의 구분을 설명했다.. 첫째, 예수(종교 설립자)와 교회(종교제도)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차이가 있다. 성서에서 예수와 교회는 ‘신랑과 신부’, ‘머리와 몸’, ‘포도나무와 가지’, ‘목자와 양떼’처럼 철저히 구분되어 있다며 “이 둘 은 결코 동일시되지 않았고 동일시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둘째, 사회학적으로 예수와 교회의 동일시가 불가능하다. 예수는 특정 장소와 시간에 존재했던 개인인 데 반해, 교회는 구조, 교리, 전례, 규율 등으로 이루어진 사회적·역사적 조직이다. 비록 예수가 부활했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구원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교회와는 존재론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학적 교류’로서의 종교간 대화를 제안했다. 각 종교가 현재의 제도와 교리를 갖추게 되기까지 어떠한 사회적, 역사적 과정을 거쳐왔는가에 대해 대화함으로 종교간 이해를 도모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
이러한 대화는 ‘신’ 또는 ‘종교설립자’에 대한 유일성 신념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판 신부는 밝혔다.
마지막으로 ‘종교제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리스도교’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도 “종교간 대화에서만큼은 완전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