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운동은 무엇인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그 범주도 문제이거니와 그 다양성도 문제일 것이다. 에큐메니컬이란 말은 본래 그리스어인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비롯됐다. 신약성경에만 15회에 걸쳐 쓰인 오이쿠메네는 세계, 우주, 땅이란 뜻으로 여러 차례 사용됐다. ‘하나님의 선교’(Missi Dei)란 새로운 선교관으로 기존 보수·복음주의 선교관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했던 에큐메니컬. 때문에 에큐메니컬은 정의, 평화, 인권, 평등 그리고 통일 등의 다양한 사회 현안에 큰 관심을 갖고, 실제적으로 접근했다. 이 에큐메니컬 운동은 한국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회의 분열엔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으로 민족의 분단엔 ‘평화 통일 운동’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

혹자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에반젤리컬과 함께)그리스도 몸의 한 지체”로 혹자는 “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집안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에큐메니컬에 대한 소개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이 때문에 에큐메니컬 운동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선도했던 과거 금빛 영광을 잃고, 위축됐다는 말에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본지는 7월 14일부터 매주 월요일 총 7회에 걸쳐 에큐메니컬 운동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에큐메니컬 운동 이해’(대한기독교서회, 2006)를 저자 안재웅 박사의 동의를 얻어 연재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권위자 안재웅 박사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했고, 홍콩에 주재하면서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 아시아 태평양지역 총무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를 역임하는 등 평생을 에큐메니컬 운동에 종사했다. 저자의 염원대로 위축된 에큐메니컬 운동이 이 연재를 통해 보다 널리 알려져 옛 활기를 되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편집자주.


 

▲ 안재웅 박사 ⓒ베리타스 DB

에큐메니컬 운동은 그 시대의 징조를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역사의 소용돌이를 과감하게 헤쳐 나가는 기독교 운동의 큰 축이라 하겠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침묵을 강요당할 때 과감하게 외치고, 사상과 이념의 틀로 묶일 때 이를 박차고 나서는 용기 있는 기독교 신앙 운동이다. 그래서 이 운동의 성격을 표현할 때는 흔히 진보적, 예언자적, 혹은 선구자적인 운동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니곤 한다. 어쨌거나 에큐메니컬 운동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을 꾸준히 해왔고, 누구도 나서지 않는 위험한 일도 서슴지 아니하고 용감하게 감당해왔다.

그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반도 평화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일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19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 치열하게 이루어 낸 민주화 운동이 한 축을 이룬다. 그 당시 남과 북의 당국자들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오히려 정권 유지를 위한 기회로 삼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한 어떤 시도도 허용치 않았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들은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에 이른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도잔소 협의회”를 주선한 일인데, 에큐메니컬 운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쾌거이다.

WCC 국제위원회(CCIA)는 한국 NCC 통일문제연구위원회와 더불어 여러 차례 준비 모임을 가졌고 마침내 1984년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도쿄 근교에 있는 일본 YMCA 동맹 국제훈련장인 도잔소에서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국제협의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모임에는 60여 명의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는데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대표와 소련과 동독 그리고 체코 등 동구권 대표와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대표 및 한국, 일본, 필리핀, 홍콩, 인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 당시 한국은 광주 민주항쟁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으며, 진보적인 학생 운동은 삼민투(三民鬪)를 내세우고 이념적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더욱이 외세의 간섭을 격렬하게 배격하는 시기였으므로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말하기에는 다소 힘든 상황인지라, 모임의 주제를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라고 내걸고 실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에 관해서 논의했다.

그 결과 도잔소 에큐메니컬 협의회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화해의 복음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평화 통일은 남측 교회만의 선교 과제가 아니라 남과 북 교회 공동의 과제임을 밝힌다. 셋째, 통일은 남과 북은 물론 세계 교회의 공동 책임이며, 지금까지 북조선을 고립시키는 정책에서 벗어나 세계 교회들이 북 조선의 교회를 방문함으로써 한반도의 통일을 함께 지원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도잔소 협의회는 남과 북의 교회는 물론 세계 교회가 모두 함께 다음과 같은 일들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첫째, 이산가족에 관하여 인도적인 관심을 갖는 일. 둘째, 통일에 관한 토론이 대중적으로 번져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하는 일. 셋째, 상호 적(敵)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는 일. 넷째, 청년과 여성들이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권장하는 일. 다섯째, 군비 경쟁을 막는 일 등이다.

물론 이 모임에 북조선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들은 평양으로부터 전문을 보내 왔는데, 도잔소 회의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내용과 함께 회의의 결정에 따라 남과 북의 교회가 성심 성의껏 협력하겠다는 결의도 천명함으로써 남과 북의 교회는 비록 전문을 통해서나마 공식적인 접촉이 이뤄진 셈이다.

도잔소 협의회는, KCF와의 협력에 관한 문제는 WCC 국제위원회를 통해서 적절한 조정을 거치자고 약속했는데 이를 통상 “도잔소 프로세스”라고 부른다. 도잔소 협의회가 있은 후 WCC 국제위원회의 코쉬 국장과 와인가트너 간사는 다음 해인 1985년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이들은 KCF 대표들에게 도잔소 협의회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1986년 제네바 근교의 글리온에서 개최될 회의에 KCF 대표가 꼭 참석하도록 주선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1986년, 남과 북의 교회 대표들이 글리온에서 만나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례전을 주관함으로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또 한 장의 위대한 역사를 펼치게 된다. 글리온 모임은 2년에 한 번씩 갖기로 했으며 매년 8.15 전 주일예배는 남과 북이 함께 만든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공동기도문으로 세계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하였는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글리온 모임은 1988년과 1990년까지 이어졌고, 1990년 글리온 회의 때 다음 모임을 평양이나 서울에서 갖기로 했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1995년 교토의 간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가진 바 있고, 그 후 간헐적으로 남과 복을 오가면서 남북의 교회 대표들은 상징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도잔소 협의회는 한반도에 깔려 있는 통일 논의의 터부(taboo)를 과감하게 깨뜨린 에큐메니컬 운동의 커다란 공헌이라 하겠다.

이렇게 뚫린 통일 논의의 물꼬와 그 내용을 되새겨 보기 위해서 2004년 10월 17일부터 21일까지 WCC와 CCA가 공동으로 주최한 “도잔소 협의회” 20주년을 기념하는 모임이 도잔소에서 열렸다. 우리의 주변 상황은 크게 변했지만 한반도의 평화 통일의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도잔소 협의회의 주제를 “한반도- 동북아시아의 발화점”으로 정하고 60여 명이 다시 모였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모임에는 북조선의 KCF 위원장 강영섭 목사와 네 분의 대표가 참석함으로써 20년이란 세월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는 NCC의 백도웅 총무를 비롯하여 교단 대표들과 에큐메니컬 지도자들이 참석했고, 유럽과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연방과 북미주 대표,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대표와 WCC 및 CCA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마침 도잔소에는 태풍이 몰아쳐서 회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으나 오히려 참석자 모두가 회의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날씨의 극적인 분위기가 도움을 준 셈이 되었다.

도잔소 20주년 협의회는, 부시 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외교의 한 축으로 내세움으로써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서 있는 현실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였다. 또한 6자회담이 진전을 보고 있는 때라서 에큐메니컬 운동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곧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평화에 공헌한다는 사실을 거듭 다짐했다.

도잔소 20주년 협의회는 결의문을 채택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정부에게-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의 정신에 따라 민간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고 상호 대결을 해소하는 일에 정부가 앞장서 줄 것과, 1992년 남북공동성명서에서 밝혔듯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룩하는 일, 6자회담이 북조선을 압박함으로써 한반도에 다른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할 일, 미국은 북조선과 국교 정상화를 체결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긴장을 완화해야 하며. 일본은 2002년 9월 17일 북조선과 체결한 평양 선언을 충실히 이행하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조선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진의를 정부에 하였다.

둘째, 교회와 파트너에게-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해 여성의 역하를 가오하였는데, 2003년 여름. 남과 북의 여성 대표들이 평화 통일을 위한 화해의 모임을 금강산에서 가진 일이다. 2001년 9월 토론토에서 모인 국제 기독교 여성 모임은 여성의 국제 연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꾸준히 이를 추진하고 지원키로 거듭 확인했다. 또한 기독 청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펼쳐 온 통일 운동에 참여하도록 교회는 지원해야 하며 언론의 악의적이고 부정적인 역할로 말미암아 평화 통일에 역행하고 있음을 지적하였고, 정보 통신의 새로운 기술을 동원해서 네트워킹을 해나가도록 교회와 파트너에게 건의했다.

셋째, 에큐메니컬 기구에게- WCC와 CCA는 한국 NCC와 북조선 KCF는 물론 일본 NCC와 그 밖의 세계 에큐메니컬 교회 기구들과 작업반(working group)을 만들어서 교회와 에큐메니컬 기구 및 관심있는 개인들이 한반도의 평화 통일과 화해를 이루는 일에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며,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온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의 힘을 결집하는 동시에 희년의 정신에 따라 분단으로 말미암아 아픔을 겪는 이산가족의 만남이 주선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이 한반도에 가득하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에큐메니컬 기구에 건의했다. 에큐메니컬 작업반은 2005년 여름에 마닐라에서 도잔소 20주년 협의회의 여러가지 결정 사항을 집행해 나가기 위한 실무 모임을 가진 바 있다.

이와 같은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노력은, 6.25 전쟁 때 세계의 여론을 환기시킨 일과, 군사 독재 때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협력을 얻어낸 일이나 평화 통일과 화해를 위한 세계 교회의 관심을 끌어들인 일 등으로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과연 에큐메니컬 운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쾌거라 하겠다. 도잔소 협의회의 결과로 고립되었던 북조선의 KCF 대표들이 세계 교회의 여러 종류의 에큐메니컬 모임과 중요 국가들의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에큐메니컬 운동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6년 2월,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9차 WCC 총회와 1998년 제8차 하라레 총회 때에도 KCF의 강영섭 위원장이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으며 1991년 제7차 캔버라 총회 때는 작고한 고기준 서기장이 KCF 대표들과 처음으로 WCC 총회에 참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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