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화대학교회 장윤재 담임목사]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

2026년 5월 3일 어린이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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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장윤재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대학 기독교학과, 이화여대 대학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마태복음 18:1-5

설교문

고대 종교 전통에서 어린이는 주로 '미성숙한 존재'였습니다. 교육받아야 할 대상이고, 아직 덕을 갖추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어린이 자체가 어떤 영적 모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동양의 유교 전통에서도 어린이는 도덕 교육의 대상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교육을 통해 도덕적 인간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불교 전통에서도 어린이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수행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동양 종교에서도 어린이 자체가 어떤 영적 깨달음의 모델이 되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서에도 어린이를 '미성숙의 상징'으로 말하는 구절이 없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11에서 바울은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고 생각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서에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어린이에 대한 놀라운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서에서 어린이는 하나님의 권능과 통치를 상징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먼저 시편 127편은 "자녀는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며 상급으로 주신 그의 축복이다"(3절, 현대인의성경)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자녀는 노동력이었고 가문의 지속이었지만, 성서는 자녀가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어린이 이해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1절)라고 노래한 시편 8편 기자는 이어서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2절, 새번역)라고 말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은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존재를 통해 자신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약한 존재를 통해 일하십니다. 약함이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됩니다.

사무엘상 3장에서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10절) 이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이 어린아이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나이나 지위와 무관합니다. 이후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사무엘은 새 왕을 찾으러 갑니다. 이새의 집안을 찾아갔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 그리고 그 집에서 가장 어린 막내 소년 다윗이 선택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선택하십니다. 이런 일은 성서에서 반복됩니다.

이사야 11장에는 메시아 시대를 상징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1절)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텐데, "그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6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힘과 폭력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로 운영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메시아의 탄생도 어린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실 때 그분은 왕이 아니라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2장에서 주의 천사의 말을 기억합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누가 2:11-12) 아기 예수는 하나님의 자기 낮추심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핵심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어린이를 안고, 축복하시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14절) 이것은 당시 세계에서 충격적인 말입니다. 어린이와 여성과 노예는 약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약자 중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인 어린이를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가장 낮은 위치의 존재를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바꿔 놓습니다. '지위 전복'(status reversal)입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랍비가 어린아이를 품에 안는 행동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안고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은 '문화 전복'(culture reversal)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어린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든 복음서가 이 기적을 기록하지만, 누가 그 음식을 가지고 예수님께 드렸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요한 6:9) 여기서 '아이'라는 말은 헬라어 '파이다리온'(παιδάριον)인데, 보통 하인에 가까운 낮은 신분의 아이를 가리킵니다. 그 아이는 군중 속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의 출발점은 바로 그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혼자 먹고도 부족한 작은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주님은 풍성한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강도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청소하신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성전 뜰에서 아이들이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하고 외칩니다.(마태 21:15)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표현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칭호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외친 말은 "예수가 메시아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마태 18:16a)라고 예수님을 다그칩니다. "저들을 좀 조용히 시키시오"라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시편 8:2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마태 18:16b) 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당신의 권능과 섭리를 선포하십니다.

그랬습니다.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어른들은 계산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그냥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작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힘이 있고 높은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성서를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 있는 자가 아니라 작은 자를 통해 드러납니다.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린 다윗이 왕으로 선택되고, 이사야는 어린아이가 평화의 세계를 이끈다고 말하며, 성전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메시아를 외칩니다. 성서에서 어린이는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과 권능을 나타내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가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공동체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고아 돌봄, 과부 돌봄, 병자 돌봄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대 로마에서 기독교 공동체는 '약자를 돌보는 집단'이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고대사회만이 아니었습니다. 고아원 제도는 중세교회에서 크게 발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아는 고아원 제도는 고대 로마에 없었습니다. 고아는 친척이 키우거나, 노예가 되거나, 길거리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버려진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돌보는 제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파운들링 호스피탈'(foundling hospital)입니다. 여기서 "foundling"은 버려진 아이, 혹은 버려졌다가 다른 사람에게 발견된 영유아를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마 부모가 없는 아이일 겁니다. 아니, 부모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일 겁니다.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부모가 자식을 다 버렸겠습니까. 하지만 이 아이들을 교회가 돌보았습니다.

교회는 이런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돌보는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유럽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예는 15세기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설립된 '오스페달레 데이 이노첸티'(Ospedale degli Innocenti)입니다. '무고(無辜) 사람들의 병원'이라는 뜻입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병원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파운들링 휠'(foundling wheel)이라는 장치인데, 벽에 회전식 상자가 있어서 부모가 아이를 넣고 돌리면 수도원에서 그 아이를 받아 돌보는 장치였습니다. 부모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를 버리는 대신에 교회에 맡길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베이비박스'(Baby Box) 혹은 '드롭박스'(Drop Box)로 알려진 것이 여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키운 건 어린이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올해로 창립 140주년을 맞이하는 이화의 시작도 바로 버려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먹일 것이 없었던 어머니가 데려다 맡긴 '꽃님이'와, 전염병에 걸려 집에서 쫓겨나 서대문 성벽 아래 버려진 어느 여인의 딸 '별단이'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버려진 아이들'(waif)을 영접하고 품에 안아 세상의 한가운데 우뚝 세운 역사가 바로 이화의 역사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새번역) 예수님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린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서,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마태 18:2, 새번역)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가운데'입니다. 고대사회에서 '가운데'는 중심의 자리이고 명예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지금 누가 서 있습니까?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세우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존재를 세상의 한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세상의 가치 질서를 뒤집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지위 전복'입니다. '문화 전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18:3, 새번역)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그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라' 혹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라' 정도의 교훈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새번역) 하셨습니다. 핵심은 순수함이 아니라 낮아짐입니다. 작아지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사람입니다.

세상의 나라에서는 강한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부자가 중심이 됩니다. 권력이 중심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작은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약한 사람이 중심이 됩니다. 어린아이가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스스로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세상의 질서를 따라 큰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처럼 작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큰 사람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작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세상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합니다. 어린아이의 도시락에서, 어린아이의 찬양에서, 그리고 어린아이가 송아지와 새끼 사자를 이끄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시작합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1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는지를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새한글성경)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children of God)입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한가운데 세우셨을 때,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 우리가 발견해야 할 자리,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오래 '큰 사람'이 되려고 애써 왔는지 모릅니다. 더 강해지려고, 더 인정받으려고, 더 중심에 서려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어라!" 작아지라는 말씀입니다. 낮아지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믿고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랬고, 성전에서 울려 퍼진 어린아이들의 찬양이 그랬으며, 이사야가 본 평화의 환상이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작고, 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십니다. 나는 작습니다. 나는 약합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가운데 세우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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