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창립기념주일을 기념하며 사랑방교회 성도들이 성찬을 나누고 있다. ⓒ사랑방교회 |
<1>편에 이어
사랑방공동체는 ‘한국교회에 공동체적 교회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비전으로 설립된 만큼 철저한 공동체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곧 폐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정태일 목사(사랑방공동체 대표)는 말했다. “사랑방공동체는 열려 있는 공동체입니다.”
사랑방공동체의 부속기관인 ‘한국교회지도자훈련원’은 1984년 4월 사랑방교회의 창립과 함께 시작하여 지금까지 1000여 명의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지도력 훈련을 실시했다. 최근에는 영남신학대학교 신대원생들이 훈련을 수료했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장신대와 서울장신대에서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태일 목사에게 있어 자신이 가진 지식을 남들과 나누는 일은 호흡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태일 목사는 성도들에게도 ‘나누며 살라’고 가르친다. 이에 성도들은 해마다 선교사 지원, 특수선교 지원, 시민운동 지원, 어려운 이웃 돌보기와 같은 봉사과제를 수행한다.
한편, 사랑방공동체에서 모든 활동은 ‘도서출판사랑방’, ‘사랑방코이노니아방송’을 통해 공동체 바깥의 불특정 다수에게 소개되고 있다. 공동체 내 15평 규모의 방송국은 전문적인 방송기기를 갖추고 있으며, 상근 인력도 2명이나 된다. 그만큼 외부와의 ‘소통’을 중시한다.
올해로 25년을 맞은 사랑방공동체는 바깥 세상으로 몇 개의 창을 내고도 공고한 응집력을 가진 듯 보였다. 수시로 출간되는 간증집에 ‘사랑방공동체가 최고다, 여기로 오라’는 성도들의 간증이 빼곡히 실려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태일 목사는 말한다. “지금처럼 되기가 쉽지 않았다”고.
▲추억으로 가득한 벽 ⓒ이지수 기자 |
"4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12년이 되어서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추억 가장 아름다워"
사랑방공동체는 응집력이 매우 강한 것 같다. 목사님과 성도들 간의 신뢰관계도 어느 교회보다 돈독하다.
쉽지 않았지. 설립 당시만 해도 ‘한 4년이면 이심전심으로 똘똘 뭉쳐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다’고 생각했는데, 4년 지나니까 그 때서야 목사가 가지고 있는 꿈을 대충 이해하더라. 그 때까지는 사람이 모이는 기간이었다. 4년 더 지나 8년이 되니까 이해를 하고, 12년이 되니까 그 꿈을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 우리가 13년째 되는 해 이리로(무림리)로 왔다. 초기에 성도들이 그러더라. ‘뜬구름 잡는 것 같다’고. 보이는 실체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 당연한 거였지.
물론 지금도 서로 완전히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처음부터 공동체를 지향했으니 공동생활 하는 그룹을 늘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자면 땅을 사고 주택을 지어야 하는데, 그걸 건의하니까 ‘우리가 언제 공동체 얘기했냐’는 성도도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야단도 했다가 어떨 때는 떼어 놓기도 했다가… 지금은 정리된 문제다. 그 때 반대를 했던 사람이 ‘목사님 그 때는 죄송했다’고 하기도 하고. 그런 것을 볼 때 우리는 아직 기초를 놓아가는 과정에 있다.
성도들과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984년 자연예배 ⓒ사랑방교회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셨다’고 고백하게 만드는 추억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답다. 종로 5가에 집 얻어 교회 시작할 때 우리 목표가 전원지역에 삶터를 마련하는 거였는데, 그 전까지는 매주 1회 자연 속에서 예배 드리기로 했다. 장소 문제가 여의치 않아 나중엔 월 1회 ‘실외에서’ 예배 드리는 것으로 변경되었는데 12-13년 동안 예배 드리면서 한 번도 날씨 때문에 예배 못 드린 적이 없었다. 토요일에 폭우가 내리고 주일 아침까지 그러는 거야. 그런데 비를 맞으면서 현장에 가니까 거짓말처럼 비가 딱 그친다. 어느 겨울 날은 예배 드리고 차에 타니까 눈이 펄펄 내린다. ‘하나님의 뜻이구나’ 생각했지.
성도들의 믿음이 더 커서 감동 받을 때도 있었다. 무림리로 오기 전, 막상 나가면 교인들이 잘 따라올까 걱정이 돼서 위원들을 모아놓고 ‘솔직히 목사인 내가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2, 30대 젊은 집사들이 ‘목사님 뭐 그런 걸 걱정하세요?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게 있잖아요’ 하더라. 그래서 그렇냐고 미안하다고 그러고 나왔다. (웃음)
"밖으로 나가는 선교보다 중요한 것,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
브루더호프(Bruderhof), 떼제(Taize), 베다니(Bethany) 등 유서 깊은 기독교공동체가 외국에는 많다. 모델로 삼은 공동체가 있는가?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모방은 있을 수 없다. 모방하는 순간 그것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다. 혼자서 성경보고 기도하며 연구했다.
브루더호프는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를 지향하며 100% 공동 재산제로 산다는 특징이 있고, 떼제는 ‘화해와 일치’라는 가치를 기치 삼아 성공회, 가톨릭, 그리스정교회 회원들까지 받아들이며 일치를 모색한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방공동체’만의 특징이라면 뭘 꼽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한국교회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생겨난 공동체로, 100년의 역사를 가졌으나 ‘공동체성’은 희박한 한국교회가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만들어졌다. 우리는 복음, 코이노니아(교제)와 디아코니아(섬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선교보다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
▲'창립 25주년 맞이 공동체 삶 나누기'에서 한 성도가 간증하고 있다. ⓒ사랑방교회 |
나가는 선교가 있고 ‘와 보라’는 선교가 있는데, 우리는 후자에 초점을 두는 편이다. 선교사 파송도 일부러 안 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있던 분들이 나가서 선교할 때는 지원을 한다. 우리는 외국 현지인들을 공동체로 초대해 교육시키는 데 적극적이다. 그들이 말하길, ‘나도 돌아가면 공동체 만들어야겠다’고. 그게 우리 선교정책이다. 한국교회는 선교도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삶 자체가 선교가 되어서 삶으로 남에게 감동을 주는 게 진짜 선교이지.
몇 가정이 떠났다. 선교단체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병 고치기도 했던 열심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든. ‘너의 삶이 어떠냐’가 중요하지. 그런데 그들 가정이 엉망이었다. 그건 안 된다는 거다.
말하자면 ‘공동체성’이 사랑방교회의 키워드라는 말씀이신데.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리나 규범이 있나?
‘신학’이라고까지 하기는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신학적 정리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 공동체가 어떻게 구성되는가 분명한 공식도 가지고 있고.
공식에 보면 우리가 강조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대화적 관계 ▲객관화 능력 ▲사회화 ▲커뮤니케이션 같은 거다. ‘대화적 관계’는 듣는 걸 먼저 하고 말하는 걸 나중에 함으로써 원만한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고, ‘객관화 능력’이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다. 신앙은 진리 앞에서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잖아.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자를 내세에 살게 하지 않으시고 교회에 두신 것은 이런 성화의 과정을 갖게 하시기 위함이다. 이런 일련의 것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하나되는 상태’, 즉 ‘코이노니아’를 만들어 간다.
‘공동체성’을 기르기 위한 프로그램(장치)가 있나?
5개 정도가 있다. 첫째, 사랑방성서모임. 우리 교회는 교회생활을 위한 조직이 사랑방성서모임이라는 소그룹으로 단순화, 단일화되어 있다. 조직을 단순화한 것은 주일에 여유 있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영과 육이 아울러 휴식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든 교인이 친교, 예배, 교육, 봉사, 선교 생활에 균형 있게 참여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전 성도가 성경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해석하기 위한 ‘성서일기’를 쓰는데 모임에서는 성서일기 쓴 것을 나누고, 교제하며, 이웃을 섬긴다. 일방적 강의 모임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모임인 셈이다.
둘째, 종합교육과정이다. 초신자부터 헌신자까지의 전 교육과정을 사랑방교회의 고유한 내용을 포함하여 체계화한 것으로 이 과정은 적응단계, 양육단계, 성장단계, 성숙단계, 헌신단계 등 5 단계로 되어 있다. 각 단계의 중요한 내용들은 세례준비, 성서일기 쓰기, 그리스도인의 생활, 교리공부, 공동체지도력훈련, 성지연구, 독서신앙, 교육전문봉사훈련 등이다.
▲2009 여름 공동생활 ⓒ사랑방교회 |
셋째, 공동생활이다. 상시 공동생활 하는 50여 명 외 교인들이 일년에 몇 차례 단기간 공동생활 하는 것인데 일종의 수련회다. 특별한 프로그램 없이 그냥 찬송 부르고, 성서일기 서로 읽어주고, 내면의 이야기 하면서 밤 새는 거지.
넷째, 공동체학교(유아·유치원, 초·중·고등학교)다. 공동체 사역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 학교는 일반학교에 대한 대안으로서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공동체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다섯째, 유대네트웤이다. 한국기독교공동체협의회에서 활동하며 다른 기독교공동체들과 유대 관계를 갖는다. 공동체를 하며 제일 염려되는 것이 ‘우리 교회가 제일 건강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 울타리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으니까.
"공동체는 계속돼야 한다"
공동체 존속을 위해서는 1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로부터 신뢰 받는 리더십을 배출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중요할 듯한데, 공동체 존속을 위해 갖고 있는 리더십 제도가 있는가?
기독교의 리더십은 기본적으로 ‘팀워크’다. 한 사람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가는 어느 시점에서 모든 것이 깨지게 마련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모세/아론/홀, 베드로/야고보/요한에서 보여지는 것은 ‘팀워크’다. 그래서 교역자 팀워크를 이루려 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가부장적 사고에 익숙하다 보니 그게 잘 안 됐다. 그러다가 새로운 체제를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에 지금 있다. 아마도 ‘협의회’ 개념의 리더십이 만들어질 듯 싶다. 이와 더불어 교육기관들도 공동체의 존속에 기여할 것이다.
향후 계획은?
내가 살아 있을 동안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지금 2개인데, 최소 12개는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동체의 확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 ‘지도자를 배출해내기 위한 학교’를 세우고자 한다. 그것은 대학일 수도 있고 대학원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거기에 공동체의 지도자와 대안교육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은 필수과정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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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경,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사랑방공동체를 나왔다. 흰 색 개량한복을 생활복으로 입고 기자를 마중하는 정태일 목사를 보며 ‘그는 필연코 이곳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는 그의 소망은 단 하나, 한국교회에 새로운 교회상을 제시한다는 거였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내려질 것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25년 전 세워진 공동체가 아직도 존속해 있으며, 처음 그대로가 아니라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정태일 목사가 있었다.
공동체사역이 열매 맺으려면 3대는 가야 한다고 했던가. 3시간 동안의 인터뷰 동안 그의 얼굴이 가장 밝았던 때는 7살 난 손녀가 그의 품에 안겼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