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쌍용차 사태 이후’를 묻는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쌍용차의 노동쟁의가 끝났다. 국내 완성차 회사 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사업장인데다 오랫동안 쟁의가 없던 탓에 역전의 용사들이 포진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완성차 회사의 쟁의는 그 파장이 엄청났다. 쟁의 기간도 길었고,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액도 천문학적 수치였다. 또한 쌍용차가 부도처리 될 경우 수많은 하청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고 이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수십만 개에 달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이 실직한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는 더 말할 여지없다. 실직은 곧 빈곤층으로의 추락으로 이어지는 수순의 첫 번째 단계다. 특히 하청기업으로 내려갈수록 그러한 경로는 매우 높은 비율로 실현된다. 하여 이 파업농성은 전 사회적으로 초미의 관심거리였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노사간 대타협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쟁의 노동자들의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사측의 법정대리인은 은행으로부터 기업회생을 위한 자금을 얻어오기 위한 조건으로 고용조정의 칼날을 빼들었고, 결과적으로 이 안은 거의 그대로 실현되었다. 정리해고자를 최대한 줄이고 일자리 나누기와 무급휴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 노조의 타협안은 적어도 인건비 계산에 관한 한 정리해고와 큰 차이가 없는 현실성 있는 대안이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대립적인 노사관계의 반복 속에서 서로를 퇴행적으로 학습시킨 결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부재의 덫’(정건화. 한신대 경제학과)에 빠져버린 노사 양측은 스스로 대타협의 가능성을 잠식했고, 거의 자학이라고 할 만큼 극한 갈등 끝에 서로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힌 채 쟁의를 마무리했다.

아마도 노조를 믿을 수 없었던 사측의 법정대리인은 애초부터 타협이란 불가능하다는 선험적 자의식에 지배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노동쟁의 경험이 일천한 쌍용차 노조를, 자신이 근무했던 현대차 노조로, 경험도 많고 강성인 노조로 오버랩시키면서 사태에 임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대타협의 기억은 부재하고, 극한 대립 속에 노조 측에 적지 아니 끌려 다녀야 했던 현대자동차에서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단호하게 고용조정만이 대안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정리해고를 최소화하면서 창조적인 기업회생 대책을 마련할 경험도 경륜도 없는 한국의 경영자들은 대개 이렇게 기업 구조조정에 임한다. 민주화 이후 본격화된 노동쟁의들은 사회적 대타협의 선례를 거의 남기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어난 대규모 쟁의는, 아마도 정부가 비교적 적극적이고 중립적인 중개자 역할을 담당한 거의 첫 번째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 이전까지 권위주의 정부는 기업이나 노동자 측의 행위 자율성을 극도로 억제했기에, 한국의 민주화는 비로소 자율성을 획득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화와 타협을 위한 게임을 가능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초의 민주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의 정부가 노사대타협을 위한 첫 번째 중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1만여 명을 고용조정하고, 그중 8천여 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사측의 애초의 계획은 타협에 타협을 거듭한 끝에 277명만을 정리해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대신 8천여 명이 희망퇴직자 신청을 했고, 1천2백여 명이 무급휴직을 하게 됨으로써 사측이 계획한 1만여 명의 구조조정은 마무리될 수 있었다. 문제의 소지는 없지 않았지만, 정부가 자화자찬한대로 그런대로 노사간 대타협의 선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는 그것이 선례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밥 아줌마’들, 중년의 여성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함으로써 타협안이 마련된 이 ‘선례’는 노사 양측에 대단히 ‘부정적인 타협의 선례’로 작용한 것이다. 즉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정규직과의 차별을 심화하는 방식의 타협이 민주화 이후 일상화된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과 노조 간의 쟁의는 완력에 의존하는 게임으로 점철되었고,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공공적 가치는 타협의 조건으로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 가운데 힘이 약한 이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이러한 일부의 비정규직화는 노사간 협의의 결과였다.

결국 한국에서 민주화의 실험은,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성과도 많지만, 적어도 노동과 자본의 사회적 공공성을 현저히 후퇴하게 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자본이 천박성을 띤 것처럼 노동도 그러했다. 시민사회 전반이 시장의 가치에 과도하게 동화되었을 아니라, 타인을 동료로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현저히 확대되었다. 나는 이를 시민사회에서의 ‘타인의 몰락’으로 말한 바 있는데,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이중화는 기업과 정부의 공공적 성격을 상실한 이윤추구 행위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공공적 성격이 후퇴한 시민사회의 ‘타인의 몰락 현상’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편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적 열망이 식어 버린 시점에서 등장한 MB정부는 지난 민주정부들이 나름 노력했던 노사간 타협의 중재자로서의 역할,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지만 나름 기업에 대해 일정한 견제의 역할을 했던 중립적 중개자로서의 이상마저도 포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정부는 기업만큼이나 완고하게 노조를 위험시하는 시각을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이들에게 사회적 협상이란 경쟁능력의 효율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구성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쌍용차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노사간 극한 대립은 사회적 손실액을 천문학적으로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니 인적 고용조정이 효율성을 높인다는 기계적인 효율성 신화는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가 보인 완고한 반노동적 태도는 ‘고용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권리 행사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적 효율을 높인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사회 안전망은 대단히 빈약하다. 통계청이 지난 8월 12일에 발표한 7월 고용동향은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일자리가 무려 7만6천 개가 줄었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노동 상황이 심화되어, 이른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점점 폭넓게 형성되는 추세다. 하여 이중화된 노동시장에서 하위로 추락한 제2차 노동시장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비정규노동자 가운데, 더 불안정하고 더 열악한 이른바 빈곤노동시장이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빈곤노동시장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은 급속도로 노동의욕을 상실하고 있고, 나아가 정신까지도 무능력화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중간층은 점점 엷어지고, 빈곤층, 특히 무능력화된 빈곤층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현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MB정부의 사회적 효율에 대한 신념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빈곤 현상을 더욱 왜곡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담론은 빈곤층의 무능력화를 확대시킬 뿐 아니라, 사회적 무능력자들의 존재의 자리를 잠식할 우려가 있다. 무능력자들은 일터를 빼앗기고 삶터를 빼앗기며, 법적 행위자격과 능력을 빼앗긴다. 이른바 MB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 주의는 무능력자들의 사회적 죽음을 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교회를 주목한다. 특히 대형화된 교회들이 지향하는 계층 편향적 성공주의를 문제적으로 바라본다. 왜냐면 MB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주의가 내포한 무능력자에 대한 야만적 배타성이 대형교회에서 더욱 일상화된 가치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회는 성장 과정에서 세속적 성공과 신앙적 성공 간을 일체화하는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것이 이른바 교회성장신학이다. 특히 최근 교회들의 이러한 성장신학 속에는 실패자를 위한 신앙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거에는 기도원 같은, (세속적이든 신앙적이든) 실패한 자들이 후퇴할 공간이 신앙제도 속에 내재해 있었다. 그리하여 일정하게 실패자의 자기 치유의 공간이 존재했다. 한데 최근의 교회에는 신앙적, 세속적 주체로의 재활성화 자리가 없다. 오히려 기도원 담론은 실패자의 회생 공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용소처럼 존재한다. 요컨대 무능력자들, 일터를 빼앗기고 삶터를 빼앗기고 법적 능력을 빼앗긴 자들은 교회에서 영혼까지 유실당한다.

나는 우리시대에 그리스도인이란,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기업과 노조는 물론이고 정부까지도 잃어버린 그 협상의 영을 간직한 존재로서 규정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바울에 의하면,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일 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인 예수의 영을 자신의 몸에 부은 존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일으키는 중개자, 자기주장을 하기에 앞서 타인의 생각을 듣고 헤아리는 존재, 바로 이것이 중개자로서의 신앙적 자의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실패한 노사간 대타협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 또한 진정한 교회의 과제일 것이다.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