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회 서울기독교영화제' 개막작 '파이어프루프' |
마지막 여름비가 내린다. 벌써 입추도 지났으니, 내일부터는 바람이 선선해질 것이다. 눈을 감고 지난 여름을 떠올려 본다.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일들이 마음을 짓누르고,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 해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새로운 계절 앞에 아직도 과거로 뒷걸음질 하고 있는 이들이여,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열리는 ‘제 7회 기독교영화제’(SCFF)에 한 번 가보라. 가을 하늘처럼 눈부신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당신을 미래로 이끌어줄 것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어두운 영화관 의자에 콕 박혀 앉으면, 오래된 꿈들이 촘촘히 박힌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릴 것이다. 개막작 ‘파이어프루프’(Fireproof, 감독 알렉스 켄드릭, 미국). 기독교에서의 오스카상과 같은 미국 ‘Faith & Values Awards’에서 2008년 최고의 기독교영화로 선정되었고, 5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총 3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화제작이다.
소방대장 칼렙은 불타는 빌딩 속에서의 구조작업 동안은 뜨거운 동료애를 보이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부인 캐서린과의 서먹서먹한 관계가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둘이 이혼을 준비하자 칼렙의 아버지는 칼렙에게 ‘사랑의 도전’(The love dare)이라는 40일 간의 실험을 제안한다. 하라는 대로 해보지만 별다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칼렙은 ‘나를 꾸준히 거부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고 반문하고, 아버지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이라고 답한다. 남을 구하는 데만 열중했던 칼렙은 아내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잔잔한 파도가 당신의 가슴에 일었기를 바란다.
△영화 '캡틴 아부 라에드' |
‘캡틴 아부 라에드’(Captain Abu Raed, 감독 아민 마탈카, 요르단). 공항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라에드는 자신을 기장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꿈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어느 날 무라드는 라에드가 진짜 기장일 리가 없다면서 추적에 나서고, 라에드는 그런 무라드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아랍에서 만나는 희생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코 끝을 찡하게 만들었길.
2000년대 초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내전의 한 가운데서 크리스천, 무슬림 여성들이 연합하여 독재자 찰스 테일러를 축출하고 오랜 염원인 평화를 가져오는 이야기를 그린 ‘독재자를 지옥으로!’(Pray the devil back to hell, 감독 버지니아 레티커, 미국)는 통쾌함을 준다.
이번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단편경선’에 출품된 20여 편의 단편영화에서는 좀 더 '한국적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뒤틀린 가족관계, 친구관계, 가출, 낙태, 노인의 삶 등을 소재로 우리 주위의 약하고 소외된 자들이 겪는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영화제는 '기독교영화제'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보다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담아낸 작품으로 주로 구성되어, 비기독교인들도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미덕이 있다. 대다수 장편이 외화라는 점은 125년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의 문화적 토양 부실을 절감하게 해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가운데 기독교문화선교단체 '파이오니아21연구소'가 제작하고 영화배우 김유미가 주연한 단편영화 '창'(window)은 일반 기독교 문화와 대중문화가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증명해 낸다.
영화 외에도, 이번 영화제에는 관객들을 위한 소소하고도 알찬 행사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 18일 저녁 6시에 열리는 ‘여우(여배우)에 관해 알고 싶은 7가지 이야기’에는 유명 배우 추상미, 김효진, 김유미, 이유리 등이 출연해 화려한 여우들의 모습 이면에 숨겨진 아픔과 사랑, 꿈, 일상, 신앙에 대해 관객들과 대화 나누고 리셉션 한다.
또 일부 작품의 상영 후에는 ‘시네토크’가 열려 영화 평론가, 배우, 아나운서, 목회자 등 다양한 패널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영화제 개막식은 9월 17일 저녁 7시 서울극장 1관에서 열리며,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프로그램은 SCFF 초이스-6편, 달리다, 꿈-5편, SCFF 특별전-12편, 단편경선-20편, 애니메니션 8편이다.
어느 하나 ‘희망’을 말하지 않는 것 없는 50여 편의 영화가 당신의 마음에 가을 바람 한 점 들어올 정도의 여유는 허락하지 않을까 한다. 부디, 희망찬 가을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