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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뛰어넘은 교회(Ⅰ)

에큐메니컬 운동 이해(9)- 안재웅 저

▲ 안재웅 박사 ⓒ베리타스 DB
에큐메니컬 운동은 한 세기에 걸쳐 줄기차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 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국제기구나 각 나라별 기구가 조직되어 에큐메니컬 운동을 확산시킨 것은 반세기를 조금 넘고 있다. 그 동안 에큐메니컬 운동은 많은 도전과 시련을 겪으면서 발전해 왔는데, 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아래와 같은 현상들을 겪으면서 역사의 한 축을 지켜왔다. 이를 요약해 본다면.

◆ 세계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가 크게 확산된 일
◆ 공산주의와 이념의 세계가 크게 퇴조한 일
◆ 정보와 통신의 기술이 크게 발달한 일
◆ 과학과 의학의 기술이 크게 향상한 일
◆ 경제적 세계화와 국제금융기구의 확대 및 빈부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일
◆ 제반 갈등의 본질과 양상이 크게 달라진 일
◆ 각 분야마다 변화가 크게 일어난 일
◆ 인종, 성(性), 신분 및 종교에 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진 일
◆ 시민사회의 역할이 크게 향상된 일
◆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등이 크게 발전한 일
◆ 원주민과 장애인 및 노약자들의 권익이 크게 향상된 일
◆ 인구가 크게 증가한 일 등이라 하겠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역사의 발전과정을 겪으면서 교회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나름대로 애써왔다. 에큐메니컬 운동이 그동안 줄기차게 강조했던 여러 분야의 이슈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요즈음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그대로 논의되는 것을 보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진취성과 가치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시대를 앞서 보고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 왔으며, 인류의 평등, 평화,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는데 앞으로도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될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현실

우리는 21세기를 맞이해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을 새롭게 다듬어야 하고, 과제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라이저 WCC 전 총무는 은퇴를 앞두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방향과 구조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시도를 했다. 그는, 흔히 에큐메니컬 비전을 말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인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ut omnes unum sint)(요17:21) 바라는 예수의 기도를 상기시켰고 “새 하늘과 새 땅”(계21:1)을 비유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이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과 과제라고 요약했다.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성격은 크리스천의 일치와 공동의 선교 및 정의와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봉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라스무센(Larry Rasmussen)은 생명 중심의 영성과 윤리를 신학의 명제로 삼아 생명신학을 다듬어 냄으로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자리잡고 있는 폭력과 살상의 성향을 극복하고 생명을 존중하면서 상생의 문화를 강조한 생명신학은 에큐메니컬 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와 같은 맥락을 잘 알고 있는 라이저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을 이렇게 간추렸다.

◆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의 생명이 풍성해지는 비전
◆ 지속 가능한 인간 공동체의 상호 올바른 관계가 이룩되는 샬롬의 비전
◆ 용서할 수 있는 해방의 힘에 신앙을 둔 화해의 비전
◆ 서로 나눔으로써 모두에게 필요한 일용할 물질을 가지고 살아가는 충족의 비전

하나님이 약속한 그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실현되었음을 만끽하는 삶의 축제를 즐기는 공교회적 비전을 제시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대목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은 지식적인 이슈들과 그럴듯한 슬로건을 나열하는 말의 성찬이라기보다는 영성을 깔끔하게 다듬어 내는 일에 있다 하겠다. 이것은 바로 생명 중심의 에큐메니컬 비전을 뜻하는 것으로 모두 함께 참여하고 서로가 책임지며 상호 신뢰와 협력을 가치의 준거로 삼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보편적인 비전을 말한다.

일부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 중심으로 치우쳐 버린 나머지 사회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생명 중심의 에큐메니컬 비전은 곧 민중 중심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뜻한다. 그러므로 민중 중심에서 크게 벗어난 유럽 중심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제 지구 남반구 민중 중심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축으로 21세기에 필요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비전을 함께 다듬어내야 한다고 본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는 물론 크리스천 간의 사호친교와 상호관계 및 상호제휴의 패턴을 바람직하게 바꾸는 일을 하여야 한다. 가령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게이와 레즈비언 안수 문제, 인종차별의 문제, 개종을 목적으로 하는 무작위 선교문제 등은 크리스천 상호관계에 불필요하게 손상을 주게 되므로 적절한 대안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여 이해를 도와야 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그리스도 중심, 성경 중심, 복음 중심, 생명 중심, 가치 중심, 평화 중심, 환경 중심, 그리고 민중 중심이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에큐메니컬 운동은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협력과 연대의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대안적 비전을 창출해 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이제 무기력한 현실에서 벗어나 앞서 제시한 여덞 가지 비전을 중심으로 활기찬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제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통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고, 흐트러진 크리스천의 신앙적 자세를 올바르게 가다듬도록 해야 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와 국가, 교회와 사회, 교회와 봉사, 교회와 인간, 교회와 화해 그리고 교회와 자연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명쾌하게 정리해서 제반갈등과 불화아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와 크리스천의 삶은 물론 인류의 복지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골고루 다루어야 한다. 즉, 일치와 갱신, 신학과 선교, 복음과 문화, 나눔과 봉사, 정의와 평화, 인권과 안보, 환경과 발전, 교육과 평등, 실업과 취업, 가난과 질병, 과학과 신앙, 세계화와 양극화, 종교와 구원, 자유와 화해 등을 말이다.

요즈음 WCC가 벌이고 있는 “폭력극복 10년” 캠페인이나 CCA의 “평화공동체 건설” 캠페인, 그리고 AACC의 “HIV/AIDS 퇴치” 캠페인은 매우 시의적절한 에큐메니컬 과제라 하겠다. 위에 열거한 에큐메니컬 운동의 과제는 상황에 따라 이슈를 부각시켜 삶에 도움을 주는 캠페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기 위하여 2004년 12월 제네바 협의회를 주선한 WCC의 호키는 “Mapping the Oikoumene”라는 논제로 다음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21세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공동의 비전을 개발할 수 있는가?

교회는 함께 일하기로 결심하였는가?

교회는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련한 여러 모임에 효율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곤소회원 교회들은 여러 중류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가자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여러 에큐메니컬 기구가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적절한 조정도 없이 겹치기로 마련되는 것을 개선할 수 있는가?

에큐메니컬 기구 간의 불필요한 경쟁은 극볼될 수 있는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보다 효과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방안은 없는가?

에큐메니컬 운동기구의 재편은 필요한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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