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믿음이란? 교리에 대한 지적 수용 뛰어넘는 것”

길희성 박사 새길이야기 가을호에 기고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

국내 종교학의 권위자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교리에 대한 지적 수용을 뛰어 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신학계간지 <새길이야기>(도서출판 새길 펴냄)에 기고한 ‘현대 기독교 사상이 당면한 과제’라는 글에서 이 같이 밝혔다.

길 교수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 신학적 입장’이라고 보았다.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인데, 여기서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에 대한 견해 차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믿음에는 2가지 믿음이 있다며 ‘Believe that’의 믿음과 ‘Believe in’의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전자 ‘Believe that’은 어떠어떠한 것을 사실로 믿는 행위, 즉 사실에 대한 ‘지적 수용’을 의미한다. 후자 ‘Believe in’은 ‘나는 너를 믿는다’에서와 같이 인격적 신뢰 또는 내어 맡김의 의미가 강하다.

길 교수는 이 2가지의 믿음 중 후자가 ‘진정한 기독교 신앙’에 가깝다고 역설했다. 길 교수에 의하면 그러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께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을 의지하고 내어 맡기는 마음”이고, 더 나아가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마음과 행위 전체”다.

또 이러한 믿음은 어린아이가 부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처럼 ‘아빠’(abba)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길 교수는 “예수께서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혹은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말씀하셨을 때의 믿음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신뢰’로서의 믿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의 많은 크리스천들에게서 이러한 ‘인격적 신뢰로서의 믿음’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 길 교수는 대부분 크리스천이 믿음에 대해 “어떠어떠한 사실을 믿는 행위, 성서에 기록된 이야기를 사실로서 수용하는 행위, 교리에 대해 지적으로 동의하는 행위”로 이해한다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교회 개혁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인격적 신뢰로서의 믿음’은 ‘실천’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그 미덕이 있다. 가령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명예나 재산을 포기해야 할 경우 믿음의 결단이 요구되는데, 이 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가가 결단의 여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길희성 교수는 자신이 교리(doctrine)나 신조(creed)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리나 신조에도 그 배후에는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증언이 있으며, 이스라엘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처했던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나온 고백과 외침이 내포돼 있다고 말했다.

또 ‘지적 동의로서의 믿음’이 깊을수록 ‘인격적 신뢰로서의 믿음’고 깊어지게 된다며, 가령 예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돌아가셨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진술을 지적으로 수용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뢰와 사랑도 그만큼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길 교수는 현대 기독교가 ‘인격적 신뢰로서의 믿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영적 수련과 실천, 헌신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건주의적 전통’, ‘개인의 영적 경험과 영성을 강조하는 신학 전통’, ‘조용한 묵상과 내적 성찰을 중시하는 영성 훈련’을 재발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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