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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태 목사(세움교회 담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지수 기자 |
오늘날 한국교회의 절대 다수는 보수신학을 정통신학으로 견지하고 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로부터 처음 유래된 이 ‘한국의 보수신학’은, 한국교회를 지나친 근본주의로 흐르게 한 제 1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초기 한국교회에서 생겨난 ‘교회 분열’, ‘교회와 사회의 괴리’와 같은 부작용은 한국교회를 여전히 위기로 내몰고 있으며, 세계 제 2위의 선교대국이라는 한국에서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피선교국에서 제2, 제3의 부작용을 태동시킬까 우려되고 있다.
10일 (사)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는 ‘장공 김재준 목사의 선교사관’(宣敎師觀)이라는 주제로 제 20회 목요강좌를 열고, 장공이 선교사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가를 살폈다. 발표를 맡은 김승태 목사(세움교회 담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장공과 선교사들 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어떻게 해서 장공이 선교사들에 대해 ‘회의’(懷疑)를 갖게 되었는가를 분석했다.
1928년경 프린스턴에서 열린 ‘한국사진전’에 항의
김 목사가 처음으로 소개한 에피소드는 장공이 1928년경 프린스턴에서 유학할 당시 미국선교사들이 연 한국사진전에 항의한 일이다. 사진 속 한국인들은 길바닥에서 소변을 보거나 누더기도 없이 알몸으로 거리를 다녔다. 이에 장공과 한경직, 김성락 등은 ‘전시된 자료가 모두 사실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것이 한국 문화의 전부인 것 같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유감’이라고 항의하는 연설문을 발표했다. 또 사진전의 의도가 순수하지 못하다며, ‘선교지의 미개성을 과시함으로 선교비 헌금액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932년 한 선교사로부터 받은 ‘검열’ 편지
또 다른 에피소드는 1932년 장공이 웨스턴신학교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을 앞뒀던 당시 한 선교사로부터 받았던 편지에 대한 것이다. 편지는 장공의 신학 노선을 ‘검열’하는 내용이었다. 선교사는 묻기를, ‘네가 근본주의냐 자유주의냐? 근본주의라야 취직이 될 것이니 그렇기를 바란다’고 하고, 장공은 대답하기를, ‘기어코 무슨 ‘주의’냐고 한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나 할까?’라며 선교사의 '보수신학 강요’에 맞선다.
1934년 ‘아빙돈성경주석사건
선교사들과의 신학적 마찰은 1934년 이른바 ‘아빙돈성경주석사건’에서 한층 거세어지는데, 당시 미국과 유럽의 유수한 성서신학자들이 공동집필하고 미국 아빙돈출판사에서 펴낸 성경주석을 장공 등 해외유학파 출신 신학자들이 번역 출간한 데 대해 선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클라크 선교사(C. A. Clark)는 책의 내용과 번역 참여자를 문제 삼으며 ‘그 책에 집필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소? 그 책이 어떤 성격의 책이란 것을 알텐데…’라고 장공에 따졌으나, 장공은 ‘그렇게 생각지 않소. 나는 내 글에만 책임을 질 터인데 내 글에는 <이단>이랄 게 없소’라고 답하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승태 목사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장공이 한국인에 의한 주체적 신학교육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보았다. 또 이는 장공이 ‘조선신학교’ 설립을 추진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신학교는 신학교 인가를 못 받아 강습소 형태의 ‘조선신학원’으로 개교할 수 밖에 없었으며, 강습소 인가라도 받기 위해서는 일제의 국책과목도 교과에 포함시켜야 했다. 김 목사는 “장공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설립하려 했을까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답으로 한석진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한석진 목사는 “우리 손과 우리 머리로 신학교를 설립하여 보자는 말인가. 조선에 벌써 있어야 할 것인데 아직까지 이런 운동도 없었다는 것은 너무 늦었지. 그 사람네(선교사들)야 이러든지 저러든지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해방 후 선교사에 대한 장공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1958년 2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장공은 “우리 한국교회가 자주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기구적으로 보나 사상적으로 보나 선교사의 발언에 좌우되는 교회는 아니며, 선교사들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교회에서 선교사의 역할은 ‘세계교회운동’(에큐메니컬 운동) 차원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속적 관계’에서 ‘친구의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공은 대한기독교장로회와 캐나다연합교회간 ‘자주적’ 선교 동역 관계를 정립하는 일에 힘썼으며, 그 때의 일에 대해 “선교사 시대는 완전히 지나갔으며, 다만 동역자 또는 친구로 의의를 서로 나누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에 대해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는 “현 한국교회가 지나치게 친미적, 종속적, 우파적인 성격을 띠는 이유의 뿌리는 선교사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들에게 완전히 종속된 신앙적 행태의 결과다”고 코멘트 하며, 이러한 종속적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