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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완상 박사 ⓒ베리타스 DB |
1970년대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에서 활동하며 민중신학과 역사적 예수 연구에 천착했던 한완상 박사가 "역사적 예수 연구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 따르미'가 되는 것"이라는 요지의 강의를 14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신학아카데미에서 전했다.
한완상 박사는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 초대 교육부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낸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중 한 명.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기도 했던 그는 "그것을 정치운동으로 여기지 않았고 예수 따르미로서 예수 운동에 동참한다고 여겼다"고 신념을 밝혔다.
그러한 신념은 '역사적 예수'에 영향 받은 것이었다. 슈바이처의 초기 '역사적 예수' 연구, 브랜든의 '젤롯당' 연구 등에 심취했으며, "정치적 해방자로서의 예수상이 몸과 마음에 와 닿았다"고 고백했다. 특히 7~80년대 군부독재 하에서 더욱 와 닿았다고 밝혔다.
역사적 예수에 천착한 이유는 그것이 '교리적 그리스도'(케리그마적 그리스도)보다 강력한 역사 변혁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 한 박사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지식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신학자 중 한 명인 불트만을 비판하며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성서해석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역사 속에 실존했던 예수가 오용될 위험이 있다. 예수를 추상적 신앙의 대상이나 실존의 자원으로 보는 한, 이 세상에 전체주의적 악마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막는 일에 신학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박사는 그러나, 역사적 예수의 한계도 강조했다. 역사적 예수에 심취한 사람들 중에는 온갖 비평적 방법을 동원해 예수가 '실제로 한 말과 행동'만 찾으려 하고 예수가 직접 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시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부류가 있다며, 그럴 경우 역사적 예수를 지나치게 한정시켜버리는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또 예수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는 '역사적 사실'보다 예수에 관해 대중들이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기억'이 어떤 면에서는 예수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예수의 경우라면 "사회적 기억이 어떻든 간에 사회적 기억보다 역사적 사실이 훨씬 위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박사는 바울이 '케리그마적 그리스도'를 뒤쫓은 대표적 인물이라며, 비록 그가 예수의 제자들처럼 '역사적 예수'를 직접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들 못지 않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또 '역사적 예수' 못지 않게 '부활 신앙'도 역사 변혁의 힘이 크다며,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신자들이 예수의 부활사건 이후 성숙해져셔 큰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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