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 강원용 목사 설교] 열린 마음

2003년 08월 24일 경동설교

구약의 말씀: 이시야서 32:5 ~ 8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거기에는 큰길이 생길 것이니, 그것을 '거룩한 길'이라고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요한계시록서 3:7 ~ 8

   "빌라델비아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분,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문을 하나 열어 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복음서의 말씀: 마가복음서 7:32 ~ 37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기를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하였다.

 

제가 이렇게 다시 이 강단에 설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알고, 또 여러분이 기도해주신 덕택으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제 평생의 소원 하나는 제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까지 이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혹 오늘 이야기 하는데 어색한 점이 있더라도, 그 동안 중병을 앓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목회하던 때는 ‘건달 교인’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오늘처럼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자리가 텅텅 비었는데, 지금은 그런 건달들은 많이 떠나고 아주 진실하고 성실한 신도들이 많아서 이렇게 비 오는 날에도 많이 모였습니다. 이런 것을 퍽 좋게 생각하면서도, 저는 이렇게 건달들이 아닌 성실한 신도들이 걸리기 쉬운 병을 고치는 얘기를, 이 강단에 서는 때마다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물론 여기 앉은 분들이 다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해 주신다면 “내가 믿는 그리스도”라는 책을 한번 쓰려고 합니다. 내가 오래 목사로 있으면서, 열심히 믿는 사람들인데 좀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기회 있을 때마다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이야기하려고 생각합니다.

저 지중해 연안의 팔레스타인이라는 곳에서 세 개의 큰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기독교와 마호메트교(이슬람), 유대교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에서 믿는 경전인 구약성서를 마호메트교도 그대로 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약성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호메트라는 사람의 코란을 통해서 이해합니다. 이것이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다른 점입니다. 우리 기독교도 이 구약성서를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되,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약속으로 읽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약성서를 읽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다른 점입니다.

제가 지적하는 것은, 이것이 구약성서를 보는 데 얼마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가를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그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있는데, 그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절대적인 신으로 믿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처형당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잊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이 구약성서를 어떻게 보았느냐는 여러분들도 잘 알겠습니다만, 마태복음 5장 17절에 “내가 (구약성서에서 말한) 예언이나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시키러 왔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완성이 뭐냐는 것은 5장 33절에 드러납니다. 옛사람들은, 이 말은 ‘구약에서는’이라는 말입니다만,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네 원수는 미워하라’ 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구별 없이 똑같이 햇빛을 내려주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입니다. 이것으로 예수님의 죽음은 예고된 것입니다.

이런 것은 성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마가복음 7장 32절 이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본문은 구약성서 이사야서 35장 5절에 나오는 바로 그 본문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그 증거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말 못하는 벙어리가 입을 열어 말하게 되고, 귀머거리의 닫힌 귀가 열려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런 것이 메시아가 온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언을 한 겁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귀머거리이고 벙어리인 사람을 손으로 만지면서 “에바다”라고 하시자, 닫힌 귀가 열리고 굳은 혀가 풀려서 듣게 되고 말하게 됩니다. 구약의 예언이 바로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사야서 35장 4절에서는 “너희 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올 때에는 먼저 너희 원수를 다 갚아주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와서 원수에 대한 보복을 하고 난 후에 너희에게 구원이 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구원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은,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원수를 갚고 난 후에 오는 구원이 아닙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은 복수를 한 뒤에 구원을 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에게서는 그런 보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은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80년대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위 기독교 운동권, 해방신학, 민중신학을 한 사람들이 성서 가운데서 가장 핵심으로 보는 단락이 누가복음 4장 16절부터 21절까지입니다. 누가복음에 있는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 61장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서 그 이사야 본문을 읽으면서 구약성서에 있는 것을 하나 빼고 읽으셨습니다. 뭐냐면, ‘우리 하나님께서 원수 갚으실 날이 이르렀고, 그 원수 갚는 것을 선포하리라’는 구절을 빼버린 것입니다. 성서에 있는데 예수께서 읽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예언하고 기다린 메시아 역할은 그대로 수행하지만, 원수를 갚고 보복하는 그런 분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들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그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유대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둘 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라고 믿고, 그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결코 섬길 수 없다고 하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유일신입니다. 그럴 경우 그 유일신인 하나님이 아닌 것은 모조리 우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이고, 그것은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을 그대로 다 지켜야 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것을 뒤집어엎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유대인이 부르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 야웨 하나님 그렇게 부른 일이 절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아빠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야웨”하면 겁이 나서 그 이름을 부르기에도 절절매던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크게 다른 것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절대자로 믿는다는 것, 하나님 한 분만이 신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은 다 원수로 몰아치는, 그렇게 폐쇄되고 닫힌 독선적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고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율법대로 안하면 심판받고 복수당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예수에게는 아예 없었습니다.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준 사건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닫힌 것을 열어버린 사건들이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던 때 목자들 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서 기쁜 소식을 전해 줍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그 위에 나타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이 찢어져 버립니다. 닫혀 있던 모든 것이 열린 사건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유대교의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유대교와는 정반대로 그것은 배타적이 아니고, 폐쇄적이 아니고 활짝 열린 것입니다.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서신서 본문인 요한계시록은 이런 신도들이 모인 교회를 향하여 권면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필라델피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앞에 닫을 수 없는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그 증거가 뭐냐? 내 닫혀 있던 눈이 열리고, 내 닫혀있던 입이 열리고, 닫혀버린 내 귀가 열리는 것, 그것이 구원의 징조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이제 하나님이 창조한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만물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의 탐욕과 자기주장으로 자신이 닫혀버릴 때 인간으로서의 휴머니티, 인간성은 말라버리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전혀 상종을 할 수 없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병에 걸리게 되는데, 바로 그게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개신교는 병이 들었습니다. 목사는 혼자 떠들고 성도들은 잘 듣지 않는 귀머거리라는 것, 교인들은 나와서 열심히 목사의 설교는 듣지만 입으로는 말하지 않는 벙어리들이라는 것, 그것은 병든 징조입니다.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모인 교회, 그건 격리된 교회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재자는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떠들고, 또 국민들은 겁이 나서 입을 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을 했고, 민주화가 되고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옛날처럼 벙어리로 사는 사람은 없게 되었습니다만, 통치자는 여전히 귀머거리입니다.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국민들도 막 떠듭니다. 모두 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떠듭니다. 정당은 정당, 노조는 노조, 자기들만 옳다고, 자기들만 잘한다고 떠듭니다. 결국 말은 하는데, 소음입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깨뜨려 버리는 그런 파괴적인 일들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매일 텔레비전, 위성방송, 케이블, 디지털 방송, 많은 것이 있지만 뭘 듣고 있습니까? 시청률을 높이려고 장사꾼들이 선전하는 그런 소음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깊은 병이 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보기 때문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이 먼저 닫혀버린 나를 열린 나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내 신앙이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는가 하는 것은,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나와 같지 않은 자는 다 틀렸다고 하는 그런 닫혀버린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나 자신의 믿음은 확실하게 하되 나와 다른 사람들도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들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열려 있는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온다고 하는데, 성령은 뭡니까? 막혀버린 것을 전부 열어버리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강림의 징조인 것입니다. 오늘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활짝 열린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늘에 뜬 태양이나, 흘러가는 구름이나, 날아다니는 새들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이나,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들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이 세상 전체를 병들지 않고 열린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중학교 때부터 오늘까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성 프랜시스입니다. 이제 제 설교가 끝나면 프랜시스의 태양의 노래 23절 가운데서 우리 찬송가에 실려 있는 6절을 함께 부를 겁니다. 그는 태양을 볼 때에도, 구름을 볼 때에도, 흘러가는 물을 볼 때에도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내 사랑하는 형제, 자매”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와서 말씀하십니다. 에바다, 닫힌 너를 열어라, 네 귀를 열어라, 네 입을 열어라, 네 마음을 열어라. 그리하여 네 눈을 열어서 우주만상을 보아라.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고 하나님나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이것이 네가 가질 열린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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