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가 설립자 메리 F. 스크랜튼 선교사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스크랜튼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8일 개최했다. 심포지엄에는 300명이 넘게 참석해 스크랜튼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방증했다. ⓒ이지수 기자 |
“서거 1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연구가 거의 안 돼 있다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연구에 박차를 가할 때입니다.”
이화여대(총장 이배용)가 설립자 메리 F. 스크랜튼 선교사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스크랜튼의 삶과 정신을 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을 8일 교내에서 ‘메리 F. 스크랜튼 선생님의 여정과 여성교육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열었다.
졸업생 17만 명을 배출하며 한국에 ‘여성시대’를 열고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으로 자리매김한 이화여대는 1885년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부에서 파송 받아 내한한 스크랜튼 선교사가 1886년 서울 정동의 자택에서 학생 한 명을 두고 수업을 시작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123년이 지난 오늘, 그러나 설립자에 대한 연구는 ‘거의 된 것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이날 심포지엄에서 나왔다.
스크랜튼의 전기가 최초 발간된 게 고작 1년 전으로 이배용 총장이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등불을 밝히다 : 스크랜튼’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냈으나, 이 역시 미미한 자료 편집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는 “전 생애적인 역사를 고증하기에는 남아 있는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일대기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1차 사료가 부족해 주변 인물들의 회고나 전기류 등의 2차 사료를 활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스크랜튼이 직접 말하고 가르친 내용이나 사역 동기, 정신은 거의 발굴되지 않았다는 것.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연구가 좀 더 진전됐다. 이덕주 교수(감신대, 한국교회사)는 스크랜튼 당시의 풍부한 사료를 활용해 출생과 가족사 개요, 한국 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 한국에서의 사역 내용을 파헤쳤다. 특히 사역 내용에 있어 이화학당을 통한 교육 분야 사역과 함께, 동대문과 인천에서의 선교, 상동교회 설립, 부인성경학원 설립 등 선교 분야의 사역까지도 상세히 기술해 스크랜튼을 ‘재발견’ 했다.
▲심포지엄에는 스크랜튼 선교사의 4~5대 후손 10여 명이 참석해 그 의의를 더했다. 후손 발굴은 미국의 스크랜튼 연구가 엘렌 스완슨씨에 의해 이뤄졌다. ⓒ이지수 기자 |
또 2년 전부터 미국에서 스크랜튼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재야연구가 엘렌 스완슨씨가 스크랜튼의 가계를 1600년대부터 파악해 이번에 발표했다. 그는 스크랜튼 별세 이후 연락 두절되었던 스크랜튼의 후손들을 찾아내 이화여대에 알렸으며, 4~5대 후손 10여 명은 이번 심포지엄에 참가해 그 의의를 더하기도 했다.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이배용 총장은 “이화여대 정신의 기반을 닦은 스크랜튼 선교사를 심층적으로 발굴하는 작업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스크랜튼 연구를 학문적, 신앙적, 실천적인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진행할 것이고, 이후에는 스크랜튼 전집 발간도 해야 할 것”이라고 연구 의지를 드러냈다. 스크랜튼 연구는 이화여대 총장, 부총장, 이사장, 대학원장, 교목실장, 서기종 목사(동대문교회), 서철 목사(상동교회) 등으로 구성된 스크랜튼 서거 100주기 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는 300명이 넘게 참석해 스크랜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방증했다. 이화여대 전현직 교수들, 동창회원들, 감리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정동제일교회 신도들 등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