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말씀: 신명기 34:1 ~ 4, 9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
서신서의 말씀: 히브리서 6:1 ~ 3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 놓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세례의 교리와 안수와 죽은 사람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관련해서, 또다시 기초학습을 닦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마가복음서 9:38 ~ 41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이름으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제 설교 준비를 하는 중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나무를 뿌리 채 뽑아내고 전봇대를 넘어뜨리는 강풍과 폭우가 오늘 오후 3시나 되어야 한반도를 빠져나간다고 해서, 오늘 내 설교 들으러 나올 사람이 한 열 사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가대는 안 나올 것 같았고, 목사 두 사람, 전도사, 장로 몇 사람은 나오겠지 싶었습니다. 그랬는데 비도 별로 안 오고 예배당은 가득 찼습니다. 저는 기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교회의 전통이 하나 있는데, 주중에 큰 수재가 나든지 하면 광고를 안 해도 그 주일에 특별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수재가 났는데 왜 헌금 안 하나 생각했는데, 오늘 마침 태풍이 올 것을 알았는지 오늘 주일에 수재헌금을 드리게 되어 있어서 즐겁게 생각합니다. 성찬식이 있는 날에는 설교를 아무리 짧게 해도 역시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를 하고, 저도 최대한 짧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6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는 초보적 교리를 넘어서서 성숙한 경지로 나갑시다.” 공동번역입니다. 이 말을 저는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글을 쓰던 시대는 교회가 생긴 지 불과 3~40년밖에 안 되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어린 교회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의 눈에 비친 그 어린 교회에 깊은 병이 들어 있었어요. 그것을 사도 바울은 깊이 생각하고 그에 관해 비슷한 얘기를 여러 군데에서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 14절에는 “너희가 이제는 3~4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갓난아기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 굳은 음식, 예를 들어 말하면, 신학적, 학문적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하고, 어린 아기가 젖 먹는 것처럼 말랑말랑한 얘기만 듣기 좋아해서야 되겠느냐?”라고 합니다. 로마서 10장 1절에 보면 “너희들의 열성은 잘 아나 뜨거운 열기 같은 것이다. 그런 열기는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바울에게는 고린도전서 13장이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만, 거기 11절에 “너희는 어른 구실 좀 해라. 어린애 짓 좀 그만 해라”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으로,” “믿음으로 산다”는 바울의 말은, 성서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토대로 해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 로고스에 뒷받침된 파토스, 이것이 없이는 올바른 신앙이 되지 못한다 하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뿐 아닙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라는 카리스마적 존재를 시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부터 끌어내서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제 들어가고자 하는 가나안이 눈앞에 보이는데 모세는 거기서 죽읍니다. 그때 모세가 죽으면서 후계자로 세운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이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새 역사를 만든 사람인데, 그 여호수아를 어떤 사람이라고 했느냐 하면, 아까 읽은 성서는 표준새번역입니다만, 공동번역은 “그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으로서 지식이 넘치는 사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로서 지식이 넘치는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맡기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물론 한국교회는 다양합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숫자가 많이 늘어나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고 그런 교회로 바깥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국 교회의 신앙적 정열과 열성이 사도 바울이 말한 것 같이 올바른 지식을 기반 삼은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저는 이것을 특별히 텔레비전 채널 42번, 기독교 TV 방송을 보면서 느낍니다. 여러분도 보실 겁니다. 거기 보면 목사님들이 가운을 입고 나와 설교를 하는데, 들어보면 신구약 성서를 완전히 동화처럼 만들어서, 거기에 갖은 악센트를 붙여서, 교인들에게 “믿습니까?” 하고 물어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교인들은 그럴수록 열이 올라 가지고 “아멘, 할렐루야!” 하고 징징 울고 그럽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저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보채는 어린아이처럼 젖만 먹기 좋아하고, 동화 같고 환상적인 얘기나 듣고, 그래가지고 흥분하고,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서공부도 하고 설교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서가 언제 쓰여진 책입니까? 제일 마지막으로 쓰여진 책이 1900년 전 것이고, 제일 처음 쓰여진 책은 2700년 전 것입니다. 그 책들에 쓰여진 이야기는 예외 없이 중동지역 역사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중동지역에서 2천 몇 백년 전에 말씀하시고 입을 다무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2002년 9월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주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의 세상이 아닙니다. 정보화 시대가 되었고 유전공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등 새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의 말씀은 뭐라고 하시는가? 그래서 설교가 있고 성서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때의 그 말씀을 통해서 오늘 여기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탕이 되지 않는 설교, 그런 성서공부, 그런 지식을 가지지 못한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최근에 미국의 최면술 전공자가 최면술을 통해, 최면술에 걸린 사람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의 얘기를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전부 케이스별로 연구하여 세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물론 신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대학교수인 마이클 뉴턴 박사인데, 이분이 쓴 책 속에 기막힌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 되었느냐? 맨 처음에 난자와 정자가 합하여서 생명체가 되고, 그래서 육체가 생겨집니다. 임신한 이후에 3~4개월이 지나면 뇌세포가 생기는데, 그때부터 지식의 세계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영혼이 육체 속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영혼과 뇌와 육체가 인간을 이루는데, 죽으면 육체도 끝나고 뇌도 해체되지만 영혼은 자기가 왔던 본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와서 그 영혼이 얼마나 상했느냐에 따라 저 세상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영혼이란 것이 어디서 나온다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그 책에서 “임재하신 존재”라는 말을 썼는데, 임재하신 존재란 바로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임재하신 존재가 우주만물을 만든 창조의 근원이고, 거기에서 하나의 에너지가 나와서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창조의 원천인 에너지가 나와서 만물이 생기고 인간이 생기고 영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맨 처음에 몸이 생기고, 두뇌에서 지식이 생기고, 그 다음에 영혼을 받게 됩니다. 영혼이란 말, 또 영을 받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영에 뒷받침된 하나님의 말씀, 반대로 그런 말씀에 뒷받침된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결국 성숙한 인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걱정한 이 사람들은 올바른 지식이 없습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성령을 받는다, 영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말씀이 없기에 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중동지역에서 그때 상황 속에서, 오늘 신명기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서 저 가나안, 요르단이 눈앞에 보이는 그 지역에 왔는데, 이제 모세는 죽어야 하는 그 상황 속에서 한 그 얘기가 그때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죽은 얘기가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냐? 우리에게 주는 말씀을 요약하면 이겁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계명은 꼭 한 가지이다. 그것은 모세에게 준 616개의 계명이 아니다.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구약성서를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읽지 않으면 그건 율법이 되어버립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언어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을 우리가 바르게 받아들이는 때에 성숙한 경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제일 처음 생겨난 몸과, 두뇌에 있는 지식 곧 로고스와, 영정인 파토스 이 셋이 조화되고 균형 되지 않으면 반신 불수입니다. 올바른 지식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들이면서도 실천을 못한다면 그건 병든 신앙입니다. 이것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서 내 생활로 나타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얘기할 것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바, 예수님이 택하신 제자 공동체에 관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길을 가다 보니까, 자기 멤버가 아닌 사람이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의 이름을 빌어서 고친단 말입니다. 저럴 수가 있는가 하면서, 못하게 말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서 절대로 그들을 나무라거나 말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독교여야 하고, 기독교가 하는 일이어야만 하고, 그런 것은 예수님이 말하는 성숙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은 창조절 첫 번 째 주일이고, 우리는 75장 찬송을 불렀습니다. “저 푸른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사실입니까? 서울에서 그런 별 보입니까? 그런 푸른 하늘이 보여요?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이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수백 만 명이 죽읍니다. 전쟁이 못 일어나게 하고 평화를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하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당연히 그런 말을 하고, 당연히 그런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기독교인만 해야 돼요? 기독교인이 하는 것은 다 올바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다 틀린 겁니까? 불교도들은 성서가 아니라 부처의 자비를 받아서 하고,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의 살신성인,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합니다. 천도교 교도들은 천주를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서 합니다. 그 사람들이 이 죽어 가는 지구를 살리는 일을, 저 굶어 죽어 가는 북한 동포를 살리는 일을, 태풍에 시달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자기의 종교를 가지고 나가서 열심히 합니다. 저건 기독교가 아니니까 못 쓴다 그러면 됩니까? 이건 성숙되지 못한 기독교입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 텔레비전을 보니까 어느 목사가 나와서 얘기하는데, 우리 기독교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 사람들이 기독교를 불교, 천도교,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들은 다 우상숭배고,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데!” 이것은 저 구약시대 유대민족이 망해갈 때 횡행하던 그 율법주의의 망령이, 선민사상의 망령이 지금도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 2002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성숙한 경지로 가려면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벌써 오래 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 히틀러가 나타나 군림할 때, 체코 사람들이 일어나 싸웠습니다. 그때 당시의 대표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가 “저 사람을 죽이는 히틀러와 싸우는 체코의 군대는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군대다”라고 썼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의 일을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말 성숙한 경지로 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이제 설교하기도 힘든 늙은 몸이 되었습니다만, 내게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성령을 모신 이 늙은 몸이, 상처를 받고 죽어 가는 내 동포, 우리의 지구를 위해서 쓰여지다가, 이 육체의 생명이 끝나고 두뇌기능이 다 정지되는 그때에, 주님의 손에 이끌려 무덤을 넘어서 열린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런 경지로 들어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