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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숙]노영상의 글 “신인문학이 오늘의 한국신학에 주는 의미와 문화적 실천신학의 제기” 에 대한 논찬

 노영상의 글 “신인문학이 오늘의 한국신학에 주는 의미와  문화적 실천신학의 제기” 에 대한 논찬 (2009.10.16-17 한국기독교학회 제 38차 정기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에 대한 논찬)


-임 희 숙 (한신대)-


  먼저 한국기독교학회 제38차 공동학술대회에서 주제 강연에 대한 논찬을 맡게 되어 기쁘고, 이 귀한 기회를 저에게 허락하신 학회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21세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상황에서 신학과 인문학의 학제적 소통과 연계를 주제로 한 강연문을 통하여 배움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귀한 옥고를 마련해 주신 노영상 교수께 감사를 드립니다.
  논찬은 제한된 시간 관계상 강연에 대한 요약을 생략하고, 강연 내용에 대한 저의 견해를 밝히고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Ⅰ. 인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인문학의 위기는 요즈음 많이 거론되는 주제입니다. 주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과 해결책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논의를 살피면서 저는 인문학이 어떤 지점에서 위기에 처했고, 인문학의 위기를 가장 크게 경험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주목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인문학의 위기를 심각하게 경험하는 곳은 대학이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인문학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학 바깥의 인문학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인문학은 이른바 ‘찾아가는 인문학’으로 불릴 수 있는데, 우선적으로 노숙자, 재소자, 새터민, 다문화가정,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름의 학습을 제공합니다. 시민인문학, 실천인문학, 평화인문학, 자활인문학 등이 그 이름입니다. 그밖에 ‘인터넷 인문학’도 주목됩니다. 그것은 현장성과 순발력을 특징으로 내세우며 집단지성의 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온라인 인문학강좌 사이트들이 개설되고 있고, 어떤 사이트에는 수만 여 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학 바깥에서 인문학이 활성화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경쟁사회에서 정의와 가치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상실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새로운 관점에서 되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열망이 그런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는지요? 취업경쟁력을 기준으로 학문적 가치를 가름하는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지만, 기존의 삶과는 다른 가능성과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대학 바깥에서 ‘인문학’은 다양한 실험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업과 광고업계도 이윤을 창출하려는 목적으로 인문학의 도움을 필요로 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오늘날 인문학의 과제는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전통적 인문학의 지평을 확대하여 ‘인문학의 소통부재’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Ⅱ. 대안 인문학의 의미에 대하여

  인문학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다양한 대안 인문학은 무엇보다 인문학의 실천성과 학제간 방법론을 강조합니다. 희망의 인문학으로 불리는 클레멘트 코스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가 2005년부터 성 프란시스 대학에 인문학 과정을 개설하여 노숙자들이 인문학을 배우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인문학 강좌의 목적은 “노숙인들이 인문학 공부를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계기를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안 인문학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발적으로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인간다움과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대안 인문학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를 위한 인문학인가? 무엇을 향한 인문학인가? 전통적으로 인문학에서 중시되는 언어와 문화의 생산은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교양교육의 형식을 통하여 대다수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은 소통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대안 인문학에서는 현재의 삶을 넘어서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적 상상력을 갖고 언어와 문화의 생산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인문학은 새로운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노숙자들에게 인문학이 도움이 되는 것은 그들이 인문학의 수동적 학습자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갖고 나름대로 인문학적 언어와 문화의 생산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공부는 노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인문학자들에게 자극과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인문학의 활성화와 대중화는 인문학의 위기를 절감하는 대학과 인문학 관련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인문학을 통하여 “희망을 발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존 인문학은 대학과 전문인이 설정한 경계에 갇혀서 인문학 본연의 힘을 잃고 말았다면, 대안 인문학은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과 개방성을 갖고서 소통과 연계의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엔 미래보고서가 언급했듯이, 고학력 1인 블로거들이 급증하는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인문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Ⅲ. 인문학적 신학하기에 대하여

  강연에서 언급된 문화적 실천신학은 인문학적 방법론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로서 학문의 “실천성과 문화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강연자가 제안한 일곱 가지 과제들은 각기 다른 전공 영역에서 연구하는 신학자들이 고려하여야 할 점들을 적절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일곱 가지 과제들에 대한 제 생각을 일일이 밝힐 겨를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특별히 노영상 교수께서 제시한 해석학적 과제에 대한 제 견해만을 간략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해석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해석학은 무엇보다도 인문학적 신학하기의 방법이기 때문이요, 한국신학의 “실천성과 문화성”을 염두에 둘 때 성서 텍스트의 해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성서 문자주의가 지배적임을 감안한다면, 해석학적 방법을 갖고 신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서 문자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서 문자주의에 따라 성서를 읽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바람, 욕구와 관심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생활세계로부터도 소외됩니다.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성서 문자주의는 삶과 생활세계로부터 성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빚어냅니다.
  성서 문자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문화적 실천신학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고, 이러한 신학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성찰과 해석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찰과 해석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현대 해석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리꾀르의 “의심의 해석학”과 피오렌자의 “비판적 페미니스트 해석학”을 주목합니다.
  리꾀르는 “실존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주목하고, 이 진리는 오직 자아의 외화(Entauesserung)와 재획득(Wiederaneignung)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성찰을 통해서만 얻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의심의 해석학”은 한편으로는 “자기인식의 나르시스적 외람됨”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인식의 객관화와 절대화로 나타나는 “거짓 의식”과의 대결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리꾀르는 종교 현상이 망상, 곧 억압된 바람의 현상 형태임을 밝히고, 종교 현상은 억압된 것을 다시 불러낸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실존의 진리는 망상들의 가면을 벗겨내고 거룩한 것을 똑바로 바라볼 때에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석은 자기성찰로 가는 하나의 길이며 “실존의 진리”는 오직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실존의 진리”를 향한 길에서 일단 억압된 것에 관한 망상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것이 계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기성찰이 없을 때 거룩한 것의 계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성찰을 위해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해석학에 대한 또 다른 도움은 성찰된 경험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경험 개념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여성신학의 공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피오렌자는 성서 읽기에서 “경험”의 해석학적 의미를 강조하며, “비판적 페미니스트 해석학”을 옹호합니다. 이 해석학은 “정치적, 개인적으로 성찰된 해방 경험들과 억압 경험들”로부터 출발하는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 설정과 현재의 세계관에 의해 규정되며, 현재의 정치적 관심들과 지배구조들에 의하여 그 조건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대한 접근은 자신의 이론적 전제들과 정치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의 것(가부장제)을 정당화하는 규범적 해석 장치들로 인해 이제까지 감추어져 온 것, 곧 억압의 경험들과 해방의 경험들을 재발견하고 이 경험들을 정치적, 개인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안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찰로부터 전적으로 다른 해석이 시작됩니다. 피오렌자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찰된 해방 경험들과 억압 경험들”을 “성서 해석의 적절성과 성서의 권위 요구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규정함으로써 성서를 “그 자체의 변화를 향하여 비판적으로 열려 있”는 텍스트로 이해합니다. 성서는 새로운 현실을 지향하면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비판적이고 성찰적인 대화를 나눌 때 오늘 여기서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비판적 해석학은 이제까지 망각되어 왔고 때때로 은폐되어 왔던 성서의 해방 전통을 재구성하고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동시에 역사 속에서 구체적 인간들의 경험들과 거기서 비롯된 요구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리꾀르와 피오렌자의 해석학 이론이 인문학적 성서 읽기에 시사하는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하면서 이러한 내용이 문화적 실천신학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성서읽기에서 해석과 자기성찰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실존의 진리”를 향해 가는 “나”는 나르시스적 자기주장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해석 과정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서 공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해석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전달되고 있으며, 그것이 그들의 삶의 맥락에서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스스로 진리를 묻지 않을 때, 성서 읽기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낯선 것으로 머물 뿐입니다.

- 성서 읽기에서 참여자들은 의심, 불안, 절망, 희망, 강박, 억압 등 자신들의 경험들을 성찰 과정에 끌어들여 이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경험들이 성찰될 때 비로소 성서 공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서를 접하고 성서의 메시지를 비판적, 성찰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성찰된 경험들을 통해 매개되지 않을 경우 성서의 메시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 성찰된 경험들과 거기서 비롯된 관점을 형성을 함으로써 성서 읽기의 참여자들은 이제까지 불투명하게 남아 있었던 경험들과 생활세계의 연관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권위 구조들에 주목하고 강박의 메커니즘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 성서 읽기는 참여자들이 해방의 경험들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합니다.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대화 상황에서는 참여자들이 복음의 해방 잠재력을 받아들이고, 인지적-신학적 차원, 생활세계적 차원, 교회적 차원에서 변혁을 위해 노력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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