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개인구원과 사회구원

누가 12:49-53 묵상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인생살이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고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좀 더 선량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사회구조적 악에 대해 신자들로 하여금 눈감고 체념하는 숙명론적 태도를 갖도록 그릇 인도함으로써 불의한 현실을 은폐하고 합리화해주는 역할을 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그리스도교 역시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인식하여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은 결코 둘로 나뉠 수 없는 한 동전의 양면이라는 신념 아래 복음을 선포하고 교인을 양육하며 힘닿는 대로 사회 참여도 하는 일부 깨인 교회를 제외하고, 대다수 한국교회는 아직도 구시대의 망령인 흑백 도식적 이분법의 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전혀 별개이거나 심지어 상호 적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면서, 개인 구원, 그것도 개별적 신자들의 영혼 구원만이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물론 이런 평가에 대해 소위 보수 신앙을 가진 목회자와 교인들은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참된 그리스도적 구원은 개인 영혼의 구원이며 이 구원받은 개인들이 모여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교회와 신자들의 노골적인 정치 참여는 결코 그리스도교 신앙과 성서의 전통에 비추어 용납될 수 없다. 개인 구원이 먼저이고 사회 구원은 나중이다"라고 응수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보수와 진보,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복음의 비정치적 선포와 복음의 정치적 선포가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가?

30년 가까이 보수 교회와 진보 교회, 보수 신앙과 진보 신앙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신앙생활을 해온 내 경험에 비추어, 교리와 신학을 놓고 보수가 옳으냐 진보가 옳으냐를 왈가왈부하기보다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예수의 태도를 기준점으로 해서 과연 어느 쪽이 예수의 입장에 더욱 근접하고 있느냐를 겸허한 자세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복음서에서 무엇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예수의 활동 영역이 세상 한복판이라는 사실이다. 예수의 활동 공간은 폐쇄적이지 않다. 예수의 관심사는 세상, 세상 사람들, 인생살이의 온갖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있는 그대로의 삶의 현실에 집중된다. 예수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 아래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잘못된 현실을 정확히 직시한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힘 있고 가진 자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분노로 표출된다.

부자와 가난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종교와 정치, 하나님나라 복음의 선포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의 해방, 불의한 권력의 몰락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인권 회복, 예루살렘과 갈릴리, 정의와 사랑, 자유와 평등, 기도와 행동, 기적과 사회에서 병들고 소외된 이들의 주체적 자의식의 회복,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시각과 전망과 분석 가운데서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눅 12:49)고 단언하는 예수.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 아느냐?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눅 12:51)고 거짓 평화의 세상을 향해 폭탄선언을 하는 예수.

보수 신앙의 교인이든 진보 신앙의 교인이든 우리 모두는 예수의 이 신념에 찬 믿음 앞에 자신을 겸손히 세우고 '내가 이 세상에 질러야 하는 불은 무엇이며, 내가 분열을 일으켜야 할 이 땅의 거짓 평화는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정연복(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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