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누가복음 1:67~80
설교문
요즘 경제가 널뛰기를 하듯 불안합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환율이 1불에 930,940원이었는데, 지금 1400원대까지 올랐습니다. 그리고 너나할 것 없이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기다림은 하루 속히 경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경제가 회복되고 안정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기다림은 끝이 나는 것일까요? 미국에는 마치 에덴동산처럼 꾸며진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자살률이 훨씬 더 높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기다림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본문에는 제사장 사가랴가 나옵니다. 사가랴의 부인은 엘리자벳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자벳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식이 없던 그들의 기다림은 자식을 낳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식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나 “네 아내 엘리자벳이 아기를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었고, 아기를 낳자 사가랴와 엘리자벳 뿐만 아니라, 친척과 마을 사람들까지 한마음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며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하던 사가랴는 요람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자 다음과 같이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의 뿔을 이 백성에게 나타내셨도다.” 그리고 이어 70절에 하나님께서 예언자,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그 말씀, 즉 이 백성들을 죄악과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내신다고 약속한 그 약속이 이루어짐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찬양을 보면 아들에 대한 찬양이라기보다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찬양입니다. 태어난 아들을 앞에 두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어머니 마리아의 뱃속에 있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가랴의 찬양은 이미 메시아가 태어난 것으로 결정짓고 과거 시제를 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이런 찬양이 가능할까요? 사가랴의 부부는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사가랴는 이 일을 통해서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악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고 살리시는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아기 예수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지금 바로 그의 삶의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그는 직접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 속에 들어있는 ‘이미’ 즉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다림은 동물에게는 없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아이일 때는 장성하기를 기다립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남성은 여성을 기다리고, 여성은 남성을 기다립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졸업을 기다리고, 졸업을 하면 좋은 직장을 기다리고, 직장을 구하면 첫 월급을 기다리고, 그리고 일생의 반려자가 될 남성와 여성을, 결혼 후에는 자녀를, 자녀가 장성하면 자녀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기다립니다. 사가랴가 그토록 기다린 것은 아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보다 더욱 기다린 것은 죽음의 그늘에 있는 인간을 영원한 삶으로, 새 생명으로 인도하실 메시아였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물질, 둘째는 사람, 셋째는 자기 자신입니다. 이 세 가지 고민 중에 물질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세 번째의 고민에서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남들보다 키가 작았습니다. 그의 작은 키는 늘 고민이 되었고, 작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버는데 열정을 다했고, 그 결과 세리장이라는 지위와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던 그는 사람을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공허했고, 그의 삶에는 만족이 없었습니다.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고 말할 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삭개오는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메시아로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가 살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걸어오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삭개오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는 달라졌습니다. “예수님,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고, 내가 누구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습니다.” 그런 삭개오를 향해 예수님은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삭개오는 생명을 얻은 인생, 아브라함처럼 축복받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로운 인생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생명을 얻어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으로 살아간 것처럼 이와 같은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