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끓고 있다.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자연계도 마찬가지여서, 하나 뿐인 지구는 온난화의 열기로 몸살을 하고 있다. 어디를 보아도 출구를 찾기 힘든 팍팍한 현실이다. 역사는 발전한다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것일까?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오스트리아 출신 비교행동학자 로렌츠(Konrad Lorenz)는 인간의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동물의 본능적 ‘공격성’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그가 60세 되던 해에 영역본이 출간된 『공격성에 관한 연구』(On Aggression)에서, 로렌츠는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공격성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공격성을 규명하고 있다. 인간도 동물과 동일한 본능의 충동을 받는다. 그러한 인간의 공격성은 특정 조건(공간과 밀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현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에 기초하는 로렌츠의 연구방식을 향한 날선 비판이 나타났다. 정치학자 아렌트(Hannah Arendt)는 로렌츠가 중시했던 동물학적 데이터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아렌트는 『폭력론』(On Violence)에서, ‘밀집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공격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수십 년에 걸쳐 동물 실험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대도시의 빈민가에서 하루를 지내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지적한다. 나치의 칼날을 피해 도피해야 했던 유태계 학자 아렌트로서는 나치의 등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로렌츠의 동물행동학적 연구에 대해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아렌트의 비판을 염두에 두었는지, 로렌츠는 『공격성』 이후 10년 만에 출간한 『현대 문명이 범한 여덟 가지 죄악』에서 자신의 주장을 구체화한다. 그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갈등을 ‘문명화의 해악’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는데, 그가 지목하는 첫 번째 원인이 ‘인구 과잉’이다. 로렌츠는 ‘뉴욕의 버스 터미널’을 지칭하면서, 대도시처럼 좁은 공간에 많은 인간이 밀집해 있는 상황은 인간 상호관계의 고갈과 차단을 통한 인간성 상실과, 나아가 인간 서로를 향한 공격적인 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한다.
로렌츠는 ‘서로를 향해 분출되는 공격충동’이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방향으로 돌려지기를 희망했지만, 오늘의 사회적 조건은 그의 바람처럼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도 로렌츠의 관찰처럼, ‘좁은 공간 안에 개체 수가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한 공격성향이 높아지는 현상’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렌츠는 ‘스포츠, 학문, 예술, 그리고 유머’ 등이 공격성의 분출 방향이 되기를 기대했는데,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언급을 삼갔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기독교는 공격성이 강한 종교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다. 세태를 반영하듯, 교회의 선교 행태는 대단히 공격적이다. 나아가 교회의 존재성 자체를 공격적인 마인드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이런 한국 교회가 장차 사회적으로 편만한 ‘인간관계에서 표출되는 공격성’을 증폭시키는데 기여하겠는가? 아니면 극복하는데 기여하겠는가.
1970년대 초반, 에딘버러 대학의 기포드 강연(Gifford)에 최초의 여성 강연자로 두 차례에 걸쳐 초청받음으로써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던 아렌트는 인간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분야에서 큰 공헌을 이루었다. 아렌트는 정치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자연(자연의 일부인 동물로서의 인간)과 문명(자연계에 그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두 측면을 가진 존재로 이해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인간다움은 인간이 만든 문명 세계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문명 세계는 주로 ‘공적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공적 영역’이 바로 정치적 영역으로써, 다양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형성하게 되는 곳이다. 이렇게 아렌트에게서 ‘공적 영역’을 갖는 인간은 곧 ‘정치적 존재’를 의미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에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세 가지 행위를 구별하는데, ‘삶의 수고(labor), 일(work), 그리고 행동(action)'이다. 여기서 ‘행동’은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적 행위를 가리키며, 인간 조건의 ‘다원성’(plurality)에 상응한다. 인간이 모두 같지 않고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기초한 다원성, 서로 다름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관계성은 정치의 기본 조건이다. 이렇게 아렌트는 정치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형성되는 인간관계의 토대위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정치는 파행으로 치닫게 된다. 관계를 잇는 대화는 뒤로 물러나고 물리적 행동이 앞서게 된다. 정치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물리적 강제력과 같은 폭력적 수단을 내세우게 된다. 그러면 사회는 더 이상 다양성이 공존하는 ‘공적 영역’이 아니라 ‘사적 욕망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갈등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다.
아렌트가 주목했던 현대사회의 문제는, 물리적 힘을 내세우는 정치권력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 of Totalitarianism)에서 대중과 정치체제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인다. 아렌트가 보기에 현대사회는 ‘바르게 구별하여 판단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대중은 누군가 ‘자기가 마치 무엇이나 된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에게 매혹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 결과로 대중적 지지에 기초한 전체주의적 정부가 등장하게 된다. 바로 이 관점에서 로렌츠의 연구를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1938년 3월, 히틀러의 제삼제국 군대는 저항이 아니라 환영을 받으며 오스트리아로 진군해 들어갔다. 당시 대다수의 오스트리아 인들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열광하고 있었다. 지속적인 경제 위기에 심각한 실업사태를 겪고 있었던 그들은 독일에서 나치 정권이 초기 몇 년 동안에 이룩한 대단한 경제 부흥에 매료되어 있었다. 다수의 대중은 나치 정권이라면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비록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게 되기를 희망했다. 로렌츠도 그런 대중의 일원이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뒤 석 달 만에 로렌츠는 나치당에 입당 원서를 냈다. 보다 나은 경제적 삶을 누리며, 자신의 학문 연구를 통해서 국가사회주의 사상에 봉사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치권력은 언제나 스스로를 경제 문제의 해결사로 자처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의 마법에 사로잡힌 대중은 지성이 마비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사회적 악의 평범성을 밝힌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대중은 누구나 악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정치권력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강제력을 사용하라는 유혹을 필연적으로 받게 된다. 그런데 아렌트의 말처럼, 물리적 수단을 앞세운 강제력의 행사는 진정한 힘을 창출할 능력이 없다. 힘의 유혹과 손잡은 권력은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고유한 힘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이 정치권력에 의해서 언제나 무시되어 왔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틸리히(Paul Tillich)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치의 영역에서 역사적 진보는 없다.
틸리히는 「진보 이념의 정당성과 퇴조」에서 정치적 영역을 넘어선 신앙의 영역에서 진보는 없다고 갈파한다. 그리고 적어도 신앙의 영역에서 만큼은 진보가 아니라 ‘성숙함’(maturing), 그리고 질적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카이로스(kairos)의 순간을 논하게 되기를 갈망했다.
교회는 정치의 영역을 논하지만, 궁극적으로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개혁교회의 정치관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정치에 대한 열광적 몰입이 갖는 위험성을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정치에 대한 기대와 열정은 다양한 ‘정치지상주의’의 형태로 반복되어왔지만, 정치권력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잠정적인 수단일 뿐이며, 인간 사회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 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정치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과제는 ‘정치 너머’에 있다. 이 점에서 개혁교회는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를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다. 즉 정치로 하여금 인간의 질적 변화를 지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질적 변화는 역사적 진보의 결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교회는 진보의 거부가 아니라 진보를 넘어서는 궁극적 변화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개혁교회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정치에 희망이 있다.
우리 사회는 관계의 단절로부터 비롯되는 병리적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일방적인 독백뿐이다. 사회적으로 생명의 기운이 돌게 하려면 서로를 소통하게 하는 대화를 회복해야 한다.
대화의 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론』(The Knowledge of Man)에서, 인간을 ‘개인적 존재’로 이해함에서 더 나아가 ‘함께 있는 존재’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인간을 ‘함께 있는 존재’로 이해할 때, 비로소 인간관계의 원리가 되는 이중적 움직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부버가 표현하는 인간관계의 이중적 움직임은 상대방이 독자적인 존재로서 거기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거리두기’(distancing)와 상대방을 나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관계 이루기’(entering into relation)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 사이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대화에는 소리가 필요 없다. 심지어 몸짓도 필요 없다.’고 한다. 말은 어디까지나 말일 뿐이다. 부버는 ‘진정한 대화를 위해서는 말보다 침묵이 더 유용하다. 진정한 관계를 위해서는 소통으로서의 침묵을 나눔으로써 서로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침묵할 때 비로소 듣게 된다. 말을 듣고, 말에 담겨 전달되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느끼게 된다.
부버는 우리가 대화의 상대를 인지하게 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한다. 첫째는 ‘관찰하기’(observing)인데, 상대방이 지닌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일반적인 단계이다. 둘째는 ‘물끄러미 바라보기’(looking on)이다. 바라보는 자는 인위적인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보려하지 않는다. 그저 임의롭게 바라볼 뿐이다. 부버는 ‘모든 예술가는 바라보는 자’였다고 한다. 셋째는 ‘깨어 받아들이기’(becoming aware)이다. 나 자신의 세계로 들어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존재인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부버는 이 단계에 이르면 대화의 상대가 굳이 인간일 필요가 없으며,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 생명이 없는 자연일 수도 있다고 한다. 만일 대화의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깨어있음의 한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살리려면 먼저 교회가 깨어야 한다. 깨어 일어나 잠든 영혼들을 깨워야 한다. 맞서 갈등하는 세력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고 서로 만나게 해야 한다. 남과 북, 동과 서가 통하여 생명의 기운이 힘차게 흐르게 해야 한다.
이사야의 ‘작은 묵시록’(34-35장)을 보니, 이사야가 비전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억압적인 지배자들을 물리치시고, 그의 백성에게 구원의 기쁨과 생명의 환희를 누리게 하신다. ‘그 때에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는 냇물이 흐른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샘터가 된다(35:6-7).’
(이재천 기장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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