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병학 칼럼] 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1)

이병학 교수(한신대학교, 신약학)

본지는 한신대 신약학 이병학 교수의 ‘대량학살의 기억과 반제국주의 운동’이란 연구논문을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인간의 그릇된 폭력의 역사를 해부하는 이 논문은 특히 한국전쟁 전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민간인집단학살 문제를 성서신학적으로 풀어본 글입니다. - 편집자주 


 
이 두 장의 사진은 1950년 7월에 대전에서 남한 군인과 경찰에 의한 정치범 무차별 처형 장면을 미육군이 찍은 사진들로서 2008년 7월에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비밀 해제로 분류된 일련의 사진들 중에서 뽑은 것이다. 당시 대전에서 7천명이 학살되었고 다른 여러 곳에서 수십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1. 서론적 성찰 

 
인류의 역사는 한 편으로는 제국들에 의해서 자행된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폭력의 역사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와 인권을 위한 해방투쟁의 역사이다. 특히 20세기는 인류 역사 중에 가장 야만적이고 유혈적인 제국주의 전쟁과 제노사이드의 세기였다. “자유,” “정의,” “평화,” “번영,” “문명,” 그리고 “민주주의”의 수사학으로 장식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침략 전쟁들을 일으켜서 수많은 원주민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도 국가 발전에 저해가 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자국의 민간인들과 자국의 영토 안에 거주하거나 또는 점령지에 거주하는 외국인 민간인들을 집단적으로 잔혹하게 대량 학살하였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노사이드 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이 체결되었지만, 그러나 비무장 민간인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는 반인륜 범죄인 제노사이드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도처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성서적 계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와 신학이 이러한 대량학살 사건들과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들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치학자인 루돌프 럼멜이 추산한 통계에 의하면 1900년부터 1988년까지 전쟁을 제외한 비전투적인 상황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절대적 권력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학살당한 민간인 남자들과 여자들은 1억 6,919만 8천 명이다. 이 수치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군인 전사자들을 합친 수보다 몇 갑절이나 더 많다. 이처럼 수많은 민간인들의 생명을 파괴시킨 제국주의 정부들에 의한 대량학살의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소련은 1900-1917년에 자국민 1백만 명을 살해하였으며, 그리고 1930-1940년에 자국민과 외국인들을 합쳐서 거의 6천2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멕시코는 1900-1920년에 원주민 1백40만 명을 학살하였다. 터키는 1915-1918년에 자국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인 아르메니아인들 1백80만 명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중국은 1923-1928년에 자국민 3백5십만 명을 학살하였고, 1928-1949년 국민당 정권하에서 자국민 1천10만 명을 학살하였고, 1958-1962년 사이의 대약진운동에서 자국민 3천만 명을 학살하였으며, 그리고 1966-19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자국민 1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나치 독일은 1933-1945년에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자국민 장애자들과 동성애자들, 슬라브인들, 집시인들, 발트인들, 체코인들, 프랑스인들, 폴란드인들, 우크라이나인들, 그리고 또 다른 종족들을 역시 학살하였는데, 6백만 명의 유대인 희생자들을 포함하여 거의 2천1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일본은 1937-1945년에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 6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폴란드는 1945-1948년에 민간인 1백60만 명을 학살하였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정권은 1975-1979년에 급격한 공산주의 집단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국민과 소수 민족을 합하여 2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파키스탄은 1958-1987년에 민간인 1백50만 명을 학살하였다. 그리고 유고슬라비아는 1944-1987년에 자국민 1백만 명을 학살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로 각기 분리된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초고비나, 그리고 코소보는 1991-1999년 사이의 내전과 제노사이드로 인해서 1백만 명의 민간인 피학살자들을 생산하였다. 르완다는 1994년에 인종 갈등으로 1백만 명의 투치족 민간인 피학살자들을 생산하였다. 그리고 과테말라는 1978-1996년에 게릴라 진압 작전과 초토화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원주민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이러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 중에 많은 여성들은 학살되기 전에 성폭행을 당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일본제국은 1919년에 삼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을 체포하여 심문하였을 때 여자들을 성폭행하였으며, 그리고 1932-1945년에 여러 전선에 집단 강간 캠프를 설치하고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수만 명의 나이 어린 한국인 여성들을 성노예로 거기에 장기간 감금하고 체계적으로 강간하였다. 또 다른 실례로서 일제는 난징학살(=남경학살)에서 불과 6주 동안(1937년 12월 13일-1938년 1월)에 30만 명의 중국인들을 갖가지 잔혹한 방법으로 학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2만 명 이상의 중국 여성들과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였으며, 그리고 심지어는 강간 직후에 많은 여자들을 살해하였다.


탈식민지 시대에 여러 독립 국가들 가운데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유혈적인 내전과 대량학살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시 과거의 식민통치 시대에 제국주의자들이 인종을 이간하여 지배하였던 분리 통치 정책이나 종교 정책에서 기인된 것이며, 또는 식민통치로부터 약소국을 해방시킨 또 다른 강대국들의 지배와 유혹으로 인해서 강대국들의 경쟁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운명에서 기인 된 것이다.


일본 제국의 패망과 더불어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의 경쟁적인 이념 대립의 구도에 의해서 한국은 결국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곧 이어서 참혹한 한국전쟁(1950-1953)과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중요한 것은 식민통치 시대의 일본의 반공 정책이 한국의 분단과 민간인 집단학살의 토양이 되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에 “좌익”이라는 말은 “항일”의 동의어였으며, “반공”은 “친일”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일제는 순수한 저항세력인 지하 독립 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들로 몰았으며, 소작쟁의와 노동쟁의를 모두 공산주의자들의 책임으로 돌렸으며, 그리고 반공을 표방한 친일단체들이 조직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였으며, 특히 기독교 단체들이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반공 세력이 되도록 강요하였다. 해방후 친일세력이 미군정의 고위직에 등용되었으며, 일본 경찰에 의해서 훈련된 한국인 경찰의 85%가 미군정의 경찰로 채용되었고, 그리고 그들의 대다수가 정부 수립 이후에 남한 정부의 경찰이 되었다. 한국전쟁 전후의 기간에 남한에서 주로 좌익과 부역 혐의자로 내몰려서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집단적으로 처형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은 1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들은 제주 4ㆍ3 항쟁, 여순 항쟁,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그리고 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의 맥락에서 발생하였다. 그들은 그토록 염원했던 조국의 해방과 자유를 채 누려보기도 전에 그러한 이념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경찰, 국군, 서북청년단과 민간 치안대 등 우익 단체들, 그리고 미군에 의해서 잔혹하게 학살되었다.


이러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들은 반세기 이상 억압과 통제 속에 묻혀있었지만, 1990년대의 한국의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비로소 침묵이 깨어지고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무죄한 피학살자들의 유족들은 숨을 죽이면서 서러움과 통한의 삶을 견디어 왔을 것이다. 한 실례를 들면 서영선은 12살 소녀였을 때 부역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집에서 향토방위 특공대원들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면서 슬퍼하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여덟 달 된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로 1951년 1월 초순에 강화도 바닷가에서 총살되었다. 


“10명씩 갯벌에 세워 놓고 총을 쏘았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아침이면 시신들은  다 떠내려갔겠죠. 강화 앞바다는 물살이 세거든요. 엄마는 아마 처음 60명을 죽일 때 죽었을 거예요.”


국가폭력에 의한 이러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들과 무죄한 희생자들이 기억되지 못하고 점차 망각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요한묵시록에는 로마제국이 자행한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이 보존되어 있다. 요한묵시록의 저자의 인식에 의하면, 하느님이 로마를 심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로마제국이 단지 그리스도인들만을 박해하고 학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울타리 밖에 있는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을 역시 잔혹하게 학살하였기 때문이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18:24).


나는 대량학살을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요한묵시록의 일곱 나팔들의 환상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에 대한 요한의 기억과 대안적 세계의 도래에 대한 그의 갈망과 신앙 실천이 이러한 폭력과 학살의 역사가 반드시 곧 끝장날 종말의 도래를 확약하는 일곱 나팔들의 환상(8;2-11:19)에 표출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의 뼈대는 출애굽의 재현이다. 하느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예속되었던 이스라엘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사”(출2;24) 그들을 해방하기로 작정하였다. 이집트 제국에서의 출애굽의 목적은 단지 억눌린 이스라엘인들을 바로의 폭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고 자유를 선사하는 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시내산 계약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얻게 하고, 하느님을 예배하며 나아가 타자에게 봉사하는 자유를 가지게 하는 데 있었다(참조, 출6:5-7). 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재현되는 출애굽은 로마의 제국주의 체제와 압제로부터의 자유에서 나아가 타자를 배려고 봉사하는 자유를 지향한다. 


자유와 평화는 인간의 근본적인 갈망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매우 효력이 있지만, 쉽게 오용되기도 한다. 자유의 개념은 때때로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오용되었다. 어떤 형태의 자유에 대한 방어와 신장은 또 다른 형태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적 구실로 자주 사용되었다. 타자를 위한 자유가 없는 해방은 오직 힘없는 자들이 강자들의 위치에 올라가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에 억압이 반복될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뿐만 아니라, 힘없고 가난한 타자를 배려하고 섬기는 헌신과 봉사를 위한 자유를 포함한다.


로마제국에서 일어나는 출애굽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물리적인 탈출이 아니다.  그것은 로마의 제국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영적인 탈출이다. 요한은 하느님이 과거에 이집트에서 바로의 폭압으로 신음하던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출애굽을 일으켰던 것처럼, 지금 폭력과 학살이 지배하고 있는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고난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억눌린 약자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출애굽 사건을 다시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일곱 나팔들의 환상을 매개하여 그의 수신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의 구조는 요한묵시록의 저자인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과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발생하게 될 미래적인 사건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처음 여섯 나팔들(8:6-9:21)은 요한의 시대에 이미 발생해서 지나간 사건들을 가리키며, 그리고 일곱째 나팔(11:15-19)은 폭력과 학살이 지배하는 현재의 시대에 종말을 가져올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발생하게 될 미래적인 사건인 것이다. 요한과 그의 수신자들이 서 있는 위치는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10:1-11:13)의 기간인 현재의 시대이다. 이 현재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의 신앙실천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곱째 나팔의 선포를 촉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곱 나팔들의 환상에서 묘사된 여러 가지 표징들은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해서 하느님이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일으킨 새로운 출애굽을 위한 그의 해방적 행동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다수의 서구 주석가들과 국내 학자들은 그러한 표징들을 단지 장차 불신자들과 불신 세계에 대재앙을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과 세계의 종말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반제국주의 운동으로서 새로운 출애굽을 일으킨 그의 해방적 행동들을 가리키는 표징들의 정치적 의미가 묻혀버리고 말았다.


나는 요한묵시록의 일곱 나팔들의 환상에 나타나는 표징들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약자들과 희생자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읽고 해석함으로써 기존의 왜곡된 해석들을 비판하고 일곱 나팔들의 환상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나는 대량학살 사건들이 더 이상 한반도와 세계 도처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산 자들로 하여금 민간인 피학살자들의 억울한 죽음과 한을 기억하도록 촉구하며,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에 빈곤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가난한 자들과 약자들의 인권, 성평등, 생태 보존, 민족 통일,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절박하다는 점을 신학적으로 환기시키고자 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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