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팎의 독재 권력에 맞서며 ‘정의’를 실현한 대학(大學) 한신대가 내년이면 개교 70주년을 맞는다. 초창기에는 교권에 눌린 신학의 해방을, 독재 정권 시절에는 몸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한신대는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송창근, 김재준, 안병무, 장준하, 문익환 등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불길을 일으킨 걸출한 인물들은 모두 한신인으로 통했다.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신은 교회와 사회 속에서 구성원들 간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그만의 역할을 찾아갔고, 또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어둠이 짙었기에 빛은 더욱 밝았다.
그러나 오늘날 한신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선과 악’이란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복잡, 다변한 사회 한 복판에서 ‘그 역할’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역할’을 찾고자 부임 초기부터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채수일 총장을 12일 만났다.
▲ 12일 한신대 오산캠퍼스 총장실에서 채수일 총장을 만났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채수일 총장은 인터뷰 중 “‘소통’은 ‘화합과 일치’를 만들고, ‘화합과 일치’로 형성된 공감대는 미래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베리타스 |
채수일 총장은 ‘역할’을 찾기에 앞서 ‘원칙’을 분명히 했다. 채 총장은 과거 신앙의 선배들이 추구했던 것 처럼 ‘소통’을 강조했다. 지난 9월 1일 부임한 그가 그동안 교내에서 한 일은 학생들, 교수들,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일이었다. 소통은 설문 조사와 같은 무미건조한 방식이 아니었다. 직접 걷고 뛰어 다니며 학생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교수, 직원들과의 소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채수일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 간 소통에 크게 치중한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화합’ 때문이었다. 구성원들 간 화합이 없다면, 한신의 미래는 어둡다는 생각에 발벗고 나섰다. 채수일 총장은 “‘소통’은 ‘화합과 일치’를 만들고, ‘화합과 일치’로 형성된 공감대는 미래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또, 소통의 능력이 떨어지는 대학은 제 역할을 찾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생명력을 잃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학원 밖으로 교회 그리고 사회와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도 인터뷰에서 내비쳤다.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서 새로운 대안가치를 창출해 내는 진보대학의 ‘역할’을 찾겠다는 채수일 총장. 그와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 한신은 기장교단의 상징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국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화살촉으로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격변의 시대마다 한신의 역할은 보다 뚜렷해졌다고 보는데 먼저 한국교회에 미친 신학적 공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한신대학교는 한국역사 속에서 민주화와 인권 신장, 평화와 정의를 위한 희망과 고난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나누어 왔다는 점에서 역사의 화살촉 역할을 했다고 할 것입니다. 기장은 아시는 것처럼 신학으로 출발한 교단입니다. 대부분 교단이 먼저 생기고 신학교가 세워지는 것이 역사적 과정인데, 저희는 신학 때문에, 신학을 위해서 교단이 생긴 것입니다. 한신과 기장은 한국교회에 학문적 신학, 하나님의 선교신학에 근거한 참여적 신앙을 실천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성숙한 발전에 공헌했다고 할 것입니다”
- 한신대의 설립자 장공 김재준 목사가 없는 한국교회는 생각하기 힘들다. 특히 그의 신학사상은 성경무오설에서 문자주의 해석으로 점철되는 당시 퇴보하는 한국교회의 신학풍토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현재 한국교회 신학의 수준을 어떻게 보며 장공의 신학적 호소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가?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반지성주의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 없는 지성은 변혁의 능력이 없고, 지성 없는 믿음은 광신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이 결합될 때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교회 신학은 대화의 능력이 없습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현실과 대화하지 않거나 대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게토화’하는 것입니다. 대화하지 않고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본래부터 신학은 대화 속에 있는 학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성육신은 대화하는 신학의 성서적 전거입니다.
장공 김재준은 단지 교권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적 신학의 전통을 세운 것만이 아닙니다. 신학을 대화의 능력 있는 에큐메니컬 신학으로 그 외연을 넓혔고, 참여적 신앙을 실천했는데, 이런 장공 정신은 지금도 한국교회에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신대는 초창기 신학적 공헌에 이어 70, 80년대 독재정권 시기에는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서 한국사회 변혁을 이끌어 내는 역할도 감당했다. 한국사회, 특히 민주화에 공헌한 한신대의 공헌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지난 10월 22일 한신대 제5대 총장 취임패를 전달 받은 채수일 총장 ⓒ베리타스 DB |
“한신대학교는 비록 규모도 작고 역사도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위대한 대학입니다. 그것은 한신대학교를 세운 분들, 한신이 낳은 인물들이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이들과 함께 한신 정신을 만들어 온 수많은 동문들과 관계 인사들에 의해서 형성된 ‘한신인의 정신’은 ‘역사의식, 진보적 지성, 생명살림, 배려와 협동, 소통과 참여, 도전과 창조’ 등입니다. 이런 정신 위에서 한국사회의 민주화, 인권신장, 평화통일에 공헌한 것에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신인으로서 당시 한국사회에서 주도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교회 안에선 안병무 선생, 교회 밖에서는 문익환 목사를 꼽을 수 있겠다. 안병무 선생은 민중신학을 창안하고, 문익환 목사는 통일운동을 주도했다. 이같이 한신은 역사에서 교회가 성지라는 성벽에 갇혀 있기보다 사회와 소통하면서 구실을 찾아내는데 열심이었다. 최근 한국교회가 추락한 사회적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 앞다퉈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부정적이기만 하다. 사회와의 소통 그리고 행동은 몸이 아닌 정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볼 때, 과거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오늘날 우리가 계승할 정신이 있다면.
“한신정신은 진보성에 있습니다. 오늘 날 진보는 인간의 근본가치 위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안을 찾고, 그 대안을 실천하는데서 그 진정성을 승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스스로 실천하는데서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섬기는 일은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왜 교회가 그런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의 봉사가 의심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과시형, 혹은 알리바이성 봉사는 진정성이 없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봉사에 경계와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 내년이면 개교 70주년을 맞고, 종합대학 승격 30주년을 맞는다. 대학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인재양성이라고 하지만, 존립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타 대학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신이 가진 비전과 정책은 무엇인가?
“저는 한신의 특성화 방향을 지역발전, 평화와 공공성, 아시아 교육, 인품교육으로 잡으려고 합니다. 한신이 위치한 경기지역 발전을 위해 산학협력, 관학협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신이 위치한 지역에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족이 많이 있고,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과의 협력은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국력이나 민주화 경험에서 이제 중요한 선두위치에 서있습니다. 특히 분단된 상황에서 한국은 아시아 평화에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상호이해와 협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한 젊은 세대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평화와 공공성은 매우 중요한 의제입니다. 공공의식을 강화하고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 위에 전문적 역량을 갖춰 어느 영역에서나 신뢰받는 ‘한신출신’을 만드는 것을 특성화 정책의 기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 기독교 대학이자 종합대학으로서 한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교육 커리큘럼이 있다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특화 발전시켜 나갈 계획인지.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사회도 ‘시장근본주의’ 가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만 평가되기 때문에, 사회는 물론 대학까지 서열화,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시장근본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주류 가치에 대항하여 새로운 대안가치를 만들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역점을 두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의 진보대학이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공부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 작업인 대학, 명예를 존중하고 책임적으로 참여하는 대학, 생명을 살리는 대학으로 한신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교육과정의 내실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공간은 사람의 의식을 규정합니다. 민주적 소통과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캠퍼스 공간을 재구성하고, 생태캠퍼스(eco-campus)를 만들기 위한 장기 로드맵을 만들려고 합니다.
▲ 한신대 개교 70주년 총장이 된 채수일 교수 ⓒ베리타스 DB |
저는 직업세계가 급변하고 있고, 직업에 대한 의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기업, 미래 사회가 요청하는 인물은 전문적 역량과 창조성, 자기 변화에의 열정과 책임적 참여의식을 가진 인물일 것입니다. 이런 인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본가치교육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저는 폭넓은 의미에서 인문학적 교양교육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정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교육목적을 경쟁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을 이겨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배려와 협동의 파트너로 이해하도록 돕는데 교육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글로벌 사회’가 차별과 양극화의 극대화가 아니라, 공생의 관계망이 되어야 인류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봉사경험과 세계인식을 확대하기위해 ‘지역사회봉사’, ‘해외평화봉사’, ‘국내외 NGO 활동’ 등에도 학점을 부여하고, 장학금 혜택을 늘려 참여를 독려하려고 합니다. 한신은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세계 교회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장과 세계교회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한신은 훨씬 폭넓은 세계경험의 기회를 구성원들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 내년이면 개교 70주년이다. 70주년 총장으로서 어떤 포부를 갖고 있는가. 개교 100주년을 향한 한신의 로드맵을 그려볼 계획도 있는가?
“새로운 비상은 한신공동체 구성원,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강한 결속력 위에서 가능합니다. 옛말에 ‘밥을 나누면 모두 배부르게 되고, 고난을 나누면 강해지고, 꿈을 나누면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한신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하나 되게 하는 꿈을 나눌 때입니다. 이 꿈은 개교 70주년을 맞아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여,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통과 참여를 활성화하여, 자부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수집과 교육실험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수도권 변두리 대학으로 단지 살아남기 위해 안간 힘을 다해야 한다면 그것은 한신의 비극입니다. 우리는 한국사회가 주목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대학, 아니 아시아가 주목하는 강한 대학이 될 것입니다. 저는 한신공동체가 능히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전통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