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 강원용 목사 설교] 잠에서 깨어나야 할때

2000년 12월 3일 경동설교

말라기서 3:1-2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주가 문득 자기의 궁궐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 남겠느냐? 그는 금과 은을 연단하는 불과 같을 것이며, 표백하는 잿물과 같을 것이다.

로마서 13:11-12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마태복음 8:23-26

뭡厠꼈?배에 오르시니,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그런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물결에 막 뒤덮일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서 예수를 깨우며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오늘 설교는 참 어렵습니다. 대림절 절기가 시작되었으니 대림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이 교회 창립 55주년입니다. 그러니 교회 창립 55주년 이야기도 해야겠고, 역시 설교니까 오늘 본문의 메시지도 전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다 해야겠는데 시간은 세 배를 주지 않고, 오히려 성찬식 때문에 다른 주일보다 설교를 짧게 해야 하니, 대단히 힘들게 생겼습니다만, 여러분들은 머리가 아주 좋은 분들이니까 열 마디를 한 마디로 표현해도 잘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로 생각할 것은 오늘 읽은 말라기의 대림절에 관한 본문입니다. 말라기서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너희가 오래 기다리던 너희의 주가 문득 자기 궁궐에 이를 것이다.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뎌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남겠느냐!”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언제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나타났는데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를 배척하고 죽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말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궁궐에 나타나야 됩니다. 만 왕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 예수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이 세상에 와서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사람들, 믿음이 적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오시는 메시아가 바로 이렇게 불의를 심판할 그런 분이라는 것을 잘 안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그분이 오시면 도끼로 나무를 찍어내듯이 모든 불의한 것을 심판해 버릴 테니까 너희들은 그 심판을 면하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무서운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무서운 심판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눈을 감고 심판을 건너뛴 것은 아닙니다. 그 무서운 심판을, 그 아래에서 살아남을 자가 없는 그 심판을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 자신이 스스로 받고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것이 대림절의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그들은 바로 궁궐에 나타나는 메시아, 그리고 불의한 모든 이를 심판하고 없애는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도 바로 이 예수님을 바르게 맞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지킬 때마다 설교대와 후드에 이렇게 보라색을 씁니다. 이 보라색은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고를 깨끗이 뒤집어 보지 않으면 우리 역시 유대인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정말 1900년대를 지나서 2000년대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 오늘 역사 속에 오시는 예수님, 그분을 우리가 바르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20세기까지 살아온 우리의 모든 생활과 생각을 한번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 빈 마음을 가지고 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지 않으면 우리도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다시 기다리게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창립 55주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교회가 첫 예배를 드리던 때, 55년 전 그날은 12월 2일이었으니까, 오늘보다 하루 전입니다. 그날의 첫 예배는 내가 인도를 했고, 우리 가운데 목사라고는 조향록 젊은 목사 한 분밖에 없었는데, 그분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 2시에 조향록 목사가 와서 그 당시의 이야기를 하실 것입니다. 저는 예배 인도하던 그 당시 목사도 장로도 아니고 28세의 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향록 목사처럼 다른 교회로 떠나가지 않고 오늘까지 이 교회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받으며 55년을 살아왔습니다. 이 교회 안에서 55년을 살아온 제가 그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한없이 한없이 많은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창립 40주년 때의 한 이야기에다가 요약하려고 합니다.

창립 40주년 되는 때에 우리 교회 성가대가 작곡을 하여 칸타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창립 40주년이 되는 날 저녁에 음악회를 했는데 그때 칸타타 제목이 ⌈광야에 세운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7일과 8일 이틀 동안에 연극을 했습니다. 그 연극은 이강백 집사가 대본은 쓰고 직접 연출을 했고, 그때에 주역, 말하자면 내 역할을 한 사람이 박상영 집사입니다. 연극 공연을 이틀 동안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여기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40주년 때의 우리 성가대원들이 생각한 우리 교회의 모습은 “들판에 세운 십자가”였다, “광야에 세운 십자가”였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강백 집사가 본 경동교회는 40년 동안 “항해하는 배”였다 그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이 평신도들이 경동교회를 바르게 본 것입니다. 지난 55년 동안 이 교회는 광야에 세운 교회였다 그 말입니다.

광야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곳입니다. 떡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물질만능주의, 권력만 잡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권력지상주의, 그리고 예수를 믿고 기도하고 헌금 많이 하면 복을 많이 받고 기적도 나타난다는 이 광신적인 기복종교의 시험입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 이 교회가 해온 일은, 광야의 예수님처럼 바로 이 경제지상주의, 개발독재와 부단히 싸워왔고, 그리고 또 권력만능주의와 싸워왔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광신적인 기복종교와 싸워온 것입니다. 이 교회는 그야말로 빈 들판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길이었습니다. 또 이강백 집사가 본 대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이 경동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배에 제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거센 풍랑에 빠져죽게 되니까 당장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때에 잠을 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시 이런 거센 풍랑 가운데에서 항해를 해왔습니다. 일일이 이야기할 것 없습니다. 바로 이 교회가 세워진 초창기는 우리나라의 좌익과 우익의 충돌이 논쟁의 차원을 넘어서 서로 잡아다 때리고 죽이고 테러하던 때였습니다. 우리 교회 뒤에 높은 빌딩이 하나 있었는데 이 빌딩에서는, 반공청년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쳐죽이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러한 좌우의 치열한 대립 가운데서 우리 교회는 때로는 좌익테러를 당하고 때로는 우익테러를 당했습니다. 밤에 예배드리다가 우익청년들이 우리를 공산당 무리들이라고 쳐들어오는 바람에 교회의 뒷담을 뛰어넘어 도망치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기독교 안에는 극보수적인 세력과, 서울대학을 중심으로 한 무교회주의 세력이 있었고, 이들 틈바구니에서 작은 교회가 시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6.25전쟁이 모든 사람에게 비극이었습니다만, 아마도 우리 교회처럼 큰 곤란을 겪은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두 번이나 폭격당해서 많은 신도들이 죽었고,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용군으로 잡혀가고 행방불명이 되는 그러한 고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4.19라는 거대한 사건이 생길 때 지금도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이윤식 집사가 서울대학 학생회 회장이었고 이영일 집사가 간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우리 교회 나오는 박상헌씨가 고려대학 학생들을 끌고 4월 18일에 데모하러 나왔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이 지도적인 위치에서 4.19를 일으키기 때문에 자연히 큰 풍랑이 이 교회를 덮친 것입니다. 그 후에 소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긴 세월동안 우리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탄 배는 계속해서 폭풍우 소용돌이 속에서 시련을 겪었고, 이 시련 속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바로 주님께서는 극심한 풍랑 속에서 직접 나서서 노를 젓지 않고, 우리에게 노를 저으라고 맡기고서,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노를 저으라고 맡기고서 주무시고 계신 것입니다.

80년대 즉 창립 40주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교회를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당시 제가 생각한 것을 김수근씨가 설계로 구현했습니다만, 강단은 다른 교회와 비교해 지극히 낮게 하고 그리고 예배실 전면에는 대형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 십자가가 위쪽은 하늘로 난 창이 뚫려 있어서 하늘의 빛을 받도록 했습니다. 예배실에 들어오면 십자가밖에 안 보입니다. 이 교회의 스탠드글라스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는 출구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저 스탠드글라스에는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들어와서 예배드릴 적에는 이 한 개의 십자가를 향해 예배드리지만, 끝나고 돌아서서 이 예배당을 나갈 때에는 각 사람이 작은 십자가를 메고 나갑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교회를 지을 때의 신학적 의미였습니다.

40주년 때에 우리가 한 것 중에 교회 기를 만든 일이 있습니다. 한번 우리 교회 기를 자세히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기를 만들 당시에 우리나라의 교회는 당시 제가 말한 대로 세 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책을 쓴 것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 그 당시에 강원용 목사라는 사람은 한국교회가 성부파, 성자파, 성령파로 나뉘었다면서 삼위일체 신학을 내세웠다고 썼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을 밤낮 부르짖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만 바라보는 거예요. 또 한쪽으로는, 주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죽은 바로 그 성자 예수만을 믿고 항상 이것을 외치던, 특히 70년대, 80년대의 운동권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성령, 성령, 성령을 부르짖는 기복적인 성장파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 셋으로 대개 나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분열 속에서 우리 교회가, 내가 부르짖은 것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습니다. 수원 ⌈내일을 여는 집에서 우리 교회 제직들이 모여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회가 지향할 신학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굳게 지키고 나가자고 결의했습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 40주년 당시에 형상화되었습니다.

이런 항해를 계속하다가 5년 전 50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60년, 70년대의 그 구호를 부르짖을 수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온 세상의 생명이 죽어가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만을 구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어서, 50주년 바로 그때에 낮예배 설교에서 저는 “만물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우주의, 전 지구의 생명이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 대상이라고 했고, 그날 밤에 이강백 집사가 만든 그 연극은 노아 홍수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생태계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55주년을 맞이하는 때는 21세기에 들어가는 때입니다. 바로 이때에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그때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 우리가 선교하는 이 세상이 아주 놀랍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제국 말기, 역사의 큰 전환점에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여러분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것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우리, 5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 교우들에게 오늘 주어진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이 40년대, 50년대, 60년대와 많은 측면에서 달라집니다만,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지던 그 해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해였습니다. 55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은 이 분단을 넘어서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는 그러한 역사적 환경을 맞고 있습니다. 진정 오늘의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이 뭐냐! 에베소서 2장 14절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누구냐.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물러 세상에 오신 분, 갈라진 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십자가르 지신 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55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경동교회가 전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의 열려진 이 평화가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한반도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이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의 평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세계평화와 직결됩니다. 21세기가 정말 평화로운 세상이 되느냐, 전쟁으로 끝나는 세상이 되느냐 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성취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어제, 그제 2, 3일 동안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우리도 함께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 이 지구 위의 과거 역사 속에 같은 형제자매가, 같은 부모자식이 한 땅에 살면서 55년 동안 얼굴 한번 못보고 지내냐 하는 데가 있단 말입니까? 지금도 겨우 만나봐야 겨우 이틀 동안 울면서 만나고 울면서 헤어지는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비극이 이제는 끝나야 합니다. 이 비극이 끝나게 하는 일이 바로 오늘, 5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적인 과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각 속에서 저는 우리 박종화 목사와 함께 이 평화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저는 옛날에 골리앗 장군 앞에 섰던 소년 다윗보다도 더 약한 것을 느낍니다. 소년 다윗은 돌팔매라도 있었습니다. 그 돌팔매마저도 내 손에 과연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이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와 협력으로 이 일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이 컴퓨터 시대, 인터넷 시대, 이런 첨단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놀라운 변화, 이것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제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에 불완전하겠습니다만, 이책 저책 읽어보는 중에 최근에 레풀즈 베일이라는 사람의 아직 발표하지 않은 책 원고를 소개한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이 “영적 기계의 시대” The Age of Spiritual Machine입니다. 이분은 우리가 살아온 20세기가 N, B, C에 의해서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NBC의 N은 핵이요, B는 생물학이요, C는 화학입니다. 이러한 핵무기와 생물학적 무기와 화학적 무기에 의해서 전 인류가 몰살당할 수 있는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이류는 21세기로 넘어가는데, 이 21세기를 이 사람은 GNR 기술시대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G는 유전공학, N은 나노, R은 로봇의 첫 글자입니다. 이러한 GNR의 시대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세계이며, 얼마나 놀랍게 변하는 세계인지를 이분은 길게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거기에서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30년경이 되면 로봇이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거꾸로 사람을 움직이는 로봇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Spiritual Machine 곧 영적 기계로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모든 능력을 훨씬 뛰어넘어서 이제는 사람을 조종하는 그런 기계인간이 태어날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이 기계인간은 그 번식이 굉장히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파괴력은 핵무기나 생화학무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나타나는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렇듯 무서운 세계를 앞에다 둔 우리가 사는 길은 무어냐? 딱 한 가지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모든 과학의 발전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포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저는 그 이야기를 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무서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20세기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앞에 오는 새 세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잠에서 깨어난 우리들에게 특별한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늘 우리가 바로 여기 십자가 아래에 있는 이 어둠 속의 촛불 한 대를 바라봅니다. 어둠 속에 딱 한대의 촛불이 켜져 있는 이것이 대림절 첫주일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어둠 속에서 하나의 촛불을 보면서 이 땅에 말구유에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무서운 파도 가운데서 우리 배가 타이타닉호처럼 바다로 빠져들어가는데, 이 배 속에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하는 것입니다. 포기하는 길 외에 아무 가능성이 없으나 포기할 수 없는 이 역사적 기가막힌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분을 통하여 이 역사를 구원할 수 있는 창조적인 소수자들이, 창조적인 과학자들이 나타날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쨌던 오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이러한 로보트가 사람이 하는 짓을 다 하면서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점보다, 하기야 그것들이 2030년대에 나타난다고 하니까, 제가 죽은 다음이니까, 저는 별로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만, 오히려 문제는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잔뜩 사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뭐가 인간입니까.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다 버린 기계인간들이 지금 이 서울 거리에, 국회의사당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경제사정이 나빠져가고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난리인데, 그 사태를 질책하느라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국회의원 들이, 그래 자기들의 월급을 13.4나 올리고도 뻔뻔스럽게 나서서 자기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건 기계인간들이지 영혼을 가진 인간들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서운 범죄들이 계속되는 속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우리가 탄 이 무서운 배 속에서 버려진 듯이 보입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버려두느냐 하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버려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님은 우리에게 역사를 맡기고 주무시고 계시지만, 우리에게 아주 맡긴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이제 깨어나십니다. 깨어나서 날뛰는 이 바다를 향하여 소리쳐서 잔잔하게 해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의 항해는 오늘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항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이 주님을 모시고. 어디를 향하느냐? 마지막에 도착할 항구가 어디냐? 그것은 새하늘과 새땅,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새로 지은 새하늘과 새땅입니다. 그 항구를 향하여서 우리는 계속해서 항해할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하는 때 하나님 앞에서 큰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의 큰 잔치를 우리는 항해 도중 이곳에서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나누는 이 성찬상입니다. 우리는 이 성찬상에서 그 맛을 미리 보면서, 도착할 항구를 향하여서 주님을 모시고, 이 시간과 공간 안에 어떤 사건이 생기든지 그것을 넘어서 항해를 계속할 것입니다.

이 경동교회란 배를 맨처음에 예배로 인도하던 나 자신은 그때 스물 여덟 살이었습니다만, 이제 오래지 않아서 여러분의 눈앞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저보다 젊지만 여러분들도 하나하나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 우리 모두를,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자기의 지체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55년 전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사람들 가운데 우리 곁을 떠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분들은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경동교회의 배를 함께 타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넘어서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의 한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도착할 항구를 향해서 꾸준히 나가면서, 그 주님을 모신 증거로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 먹는 이 성만찬을 행하는 우리들은 항상 잠에서 깨어나서 주위를 살펴야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우리가 할 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혼이란 뭡니까. 인간이란 뭡니까. 사람이 할 일을 사람보다 훨씬 더 잘하는 기계인간이 나옵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정말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삶의 문이 닫히는 시간까지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삶을, 주님을 모시고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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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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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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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