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기독교 사회 윤리학’ 학문(學問)이 될 수 있을까?

기사윤, 창립 10주년 기념학술대회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회장 문시영, 기사윤)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19일 숭실대학교 벤처관에서 기념학술대회를 열었다.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는 크게 △한국 기독교사회윤리학의 학문적 정위 △한국 지식 사회와 기독교 사회윤리 △한국 기독교 지식인들의 사회적 책임 등을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 종합토론시간. 한신대 강원돈 교수가  참석자들의 질의에 응답하고 있다 ⓒ베리타스

이 중에서도 기독교 사회 윤리학의 학문화(學問化)를 시도하는 연구 논문들은 참석자들에게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의 학문적 정위(定位)’란 주제의 발표회에선 노영상 교수(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강원돈 교수(한신대, 사회윤리), 이장형 교수(백석대, 기독교윤리학)가 각각 발표했으며 서울장신대 박도현 박사, 숭실대 이지성 박사, 루터대 오지석 강사가 논평했다.

노영상 교수는 발표한 논문에서 신학이 학문으로 성립될 수 있다면, 기독교사회윤리학 역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주장을 설득력있게 폈다.

학문은 논증적이라는 점에서 일반윤리학은 기독교의 학문화에 ‘신에 대한 논의는 논증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들어 공격을 가한다. 이에 노 교수는 “신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신학의 학문성을 담보했다.

노 교수는 또 폴 틸리히의 방법론에서 보면 기독교의 계시가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 신학 언술들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학문의 가해성을 충족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기독교 사회 윤리학의 학문적 정위를 위해 날카로운 비판도 가했다. 노 교수는 “급변하는 세상과 문화나 과학의 발전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내놓은 대안이나 의견들이 세상에서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제 교회는 세상을 바꾸어가는 변혁 공동체가 아닌 세상에 보수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했다.

노 교수는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과 자각으로 기독교사회윤리학과 사회과학과의 만남을 종용했다. 그는 “기독교사회윤리학은 사회과학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학제간 협력을 이루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에 대해 신속하고도 전문적이면서 세상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신학자들과 평신도 전문가들 간의 끈끈한 연대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같은 주제로 발표한 강원돈 교수는 ▲기독교사회윤리학의 대상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교의학과 윤리학의 올바른 관계 규정 ▲기독교사회윤리학의 대상으로 설정되는 제도적인 것의 인문·사회과학적 분석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규명했다.

이 논문에서 강 교수는 마르틴 루터, 슐라이에르마헤르, 로테, 라인홀드 니버, 고범서, 리히 등 사회 윤리를 신학의 과제로 삼은 이들을 조명하며 “제도적인 측면을 다루는 윤리학이 따로 설정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사회윤리”라고 전했다.

이어 “기독교사회윤리학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추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하나는 제도적인 것을 이해하는 신학적 패러다임을 가다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도적인 것에 관한 윤리적 판단과 행위의 원칙을 밝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교의학과 윤리학의 관계를 주목한 강 교수는 “윤리학은 교의학으로부터 독립된 분야로 인정되어 확연히 구별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도적인 것을 보는 신학적 관점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파울 알트하우스, 베르너 엘러트, 에밀 부루너가 강조한 ‘제도적인 것의 실정성’을 살펴본 강 교수는 “이들처럼 인간 세상의 제도들을 하나님의 창조 질서 혹은 보전 질서로 간주하게 되면, 이 제도들은 지양될 수도 폐지될 수도, 유효성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제도들의 실정성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는 관점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제도’와 ‘윤리학’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시도한 강 교수는 본훼퍼와 브라켈만의 신학적 통찰에 주목했으며 이들의 말을 인용해 “‘이미 지금’ ‘아직 아니’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을 제도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보면서, 인간은 기존의 구조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지 말고 지속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제도적인 것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되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좀더 정의로운 제도를 찾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윤리적 판단 규준을 “궁극적인 것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제도적인 것과 관련해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원칙을 가다듬는 것”이라고 했으며 윤리적 행위 준칙을 “이러한 원칙적 판단에 가급적 충실하면서 역사적으로 제약된 조건들을 감안하고 제도적인 것을 가능한 최선의 것으로 형성하는데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강 교수는 기독교사회윤리학이 제도적인 것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분석을 수용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관점을 설명했다. 그는 ▲우선 사회의 기본 제도나 기본 질서들은 인간들이 자연적 조건과 문화적 조건 아래서 역사적으로 형성해 왔던 것이라는 점 ▲둘째로, 제도를 형성할 때 제도의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 ▲셋째, 제도의 문제는 현재 인류가 도달한 기술 능력 수준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제도적인 것을 규율하는 규범과 법을 제정하는 제도적 절차는 민주주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장형 교수는 그레고리의 한글 번역서 『도덕학』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 참석자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도덕학』은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이며 숭실대학과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스왈른(1865∼1954)이 1915년 역술한 서적이었다. 

오지석 루터대 강사는 이 교수의 논문에 “기존의 연구는 학국인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논자의 연구는 기독교윤리학교과서에서 한국교회가 섭취한 기독교윤리학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며 “이점이 이 논문이 갖는 의의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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