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수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 ⓒ이지수 기자 |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양명수 교수가 ‘인문학과 신학 – 힘과 선’이란 글을 발표하며 인문주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신학의 ‘위대함’에 대해 말했다. 발표는 19일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콜로키움’에서 이뤄졌다.
신학 안에 있는 인문주의적 요소
양명수 교수는 먼저 신학 안에 있는 인문주의적 요소부터 발견했다. 신학은 결코 반인문주의적인 학문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표현에서 보듯 인문주의적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을 정의하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인데, 이것은 “신앙의 중심 개념이 ‘힘’에서 ‘선’으로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이는 고대 인문주의자였던 플라톤이 “힘만 있고 덕이나 정의가 없는 신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해로운 존재”라고 주장한 것과 통한다.
양 교수는 “성경에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말은 있어도 ‘하나님은 힘이다’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은 있다”며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원시종교나 신화시대의 신을 넘어 ‘힘’보다는 ‘선’을 더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사랑’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덕목은 ‘좋음’, ‘생명력’, ‘도덕과 정의’ 등이라며, “그런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인문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신학
이어 양 교수는 신학이 어떠한 측면에서 인문주의의 한계를 뛰어 넘는가를 살폈다.
기독교 신학이 인문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지만, 인문주의자들이 보기에 신학은 신(神)을 ‘인격체’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화적(神話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격체로서의 신’은 오히려 인문주의의 결핍을 메우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양 교수는 주장했다. 인격체로서의 신은 “인간의 물질적 궁핍과 윤리적 궁핍을 해결해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그런 문제를 도외시하는 인문주의는 엘리트주의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인간이 삶 속에서 처절하게 마주하는 고통과 고난의 문제가 있으며, 이러한 현실은 “윤리적 요청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삶의 요청으로서의 신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고통이 닥쳤을 때 인간은 인문주의의 윤리적 가르침보다 인간 고통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주는 신을 더 찾는다는 설명이다. '하나님은 먹고 사는 문제에 시달리는 민중의 한과 고난을 알아주고, 자식 염려와 건강의 기원을 들어주어야 한다. 신은 높은 도덕성으로 영혼을 이끄실 뿐 아니라, 인간의 삶의 형편을 도와주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게 인간 실존의 고백이라는 것이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양 교수는 기독교 신학의 ‘사랑’ 개념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는 “주희의 성리학에서 세상을 낳고 움직이는 원리는 인 곧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인은 사람을 위로하거나 사람의 형편을 일일이 살피는 사랑은 아니었다”며 이에 비해 기독교의 ‘사랑’은 위로와 긍휼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또 ‘사랑’의 주체인 하나님은 인간과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인 관계를 맺는다며 기독교의 ‘사랑’이 갖는 차원성을 설명했다.
요컨대 “‘기독교의 ‘사랑의 하나님’은 힘 위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원시종교를 벗어나 선의 이념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사랑에서 나오는 위로의 힘으로 인간의 물질적 궁핍과 윤리적 궁핍을 채워주는 분”이라는 변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