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석 유영모 선생 |
“인간은 직립하여 하늘을 지향하는 존재다. 하늘을 그리워하고 하늘을 탐구하는 존재다. 하늘은 영과 신의 세계다. 직립하여 신을 탐구하는 인생은 만물과 생명의 진화과정을 완성하고, 모든 신비의 지식을 드러낸다”
궁신지화(窮神知化). 하나님을 탐구하면 만물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주창한 이 이론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박재순 소장(씨알사상연구소)이 4일 ‘유영모의 사상과 영성’ 네번째 강좌를 진행한 것이다.
이날 박재순 소장은 “다석이 말하는 것은 인간을 생물학적 진화발전의 과정 속에서 본 것”이라며 “다석은 지성(땅의 본선)에서 천심(하늘의 본성)에 이르는 것이 인간의 자연과 본성이라고 봤다”며 하나님을 탐구하고자하는 인간의 본성을 나타냈다.
다석에 따르면 자연만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생명의 세계가 펼쳐지고 생명의 세계에서 절대의 차원과 상대의 차원이 함께 결합되고 자연 만물의 세계는 크고 작고, 들쑥날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힘없이 변화하고 발달한다. 다석은 또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이러한 자연을 연구해 법칙을 찾고,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신비의 문이 인생”이라고 했다고 박 소장은 전했다.
다석의 이러한 견해는 인간의 정신과 영성을 자연과학으로 환원시키는 과학철학자들의 결정론적 주장이나 유전공학의 지식과 원리에 기초해 자연과학과 종교 문화를 아우르는 지식의 대통합을 추구한 에드워드 윌슨의 견해와는 상반된다.
윌슨은 정신과 영의 존재를 물질과 육체의 존재의 지평으로 환원시키는 하양일치를 주장했다. 이같은 윌슨의 자연과학적 환원론에 박 소장은 “물질-생명-정신-영은 존재의 위계가 다르다”며 “물질에 없는 존재의 차원이 생명에 있고, 생명에 없는 존재의 차원이 정신에 있으며, 정신에 없는 존재의 차원이 영에 있다”고 반박했다. 큰 존재를 작은 존재의 지평으로 끌어내려서 일치시키려는 것은 존재론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어 윌슨의 지식 대통합론은 과학과 자본의 권력으로 예술과 종교, 과학의 진리를 억압한다고 박 소장은 주장했다. 그는 “지식은 지식으로 통합될 수 없다”며 “이성적 설명은 사물의 존재와 삶의 변화를 다 드러낼 수 없고, 설명에 머무는 인간은 존재의 삶의 변화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연과학적 환원론 그리고 이성의 설명능력에 의지한 지식 대통합론 등 서구철학의 한계를 지적한 박 소장은 다석의 사상이 서구 과학철학의 결론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강조했다. 다석은 궁신지화. 신을 탐구하고 신에 이르러야 모든 지삭과 앎이 통합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신을 알 때 수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모든 것이 신통에 이른다.
윌슨의 주장과는 반대로 보다 높은 존재의 차원에서 자연과학과 생물학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상대화되고 겸허해져야 지식의 소통과 통합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 다석의 견해였다.
그렇다면 신을 탐구하는 인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다석은 먼저 궁신하는 것은 절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다석은 특히 신과 절대자를 구별한다.
박 소장은 “동아시아에서 신(神)은 인간에게 속한 개념이면서 인간을 넘어서 초월적인 정신과 소통하는 개념”이라며 “따라서 신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다석은 자유롭게 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인간을 신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신은 인간 본성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뜻하는데, 이 정신은 초월적인 하나님과 소통하고 일치하는 존재를 말한다. 박 소장은 이를 “(다석은)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신성과 신적 씨앗으로서 신성이 인간에게 내재한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석은 인간의 본성에 깃든 정신을 뜻하는 ‘신’과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 하나님을 뜻하는 ‘신’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박 소장에 따르면 다석은 인간이 결코 절대자가 아님을 단언했다고 한다.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고 상통하는 존재이지만 절대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또 “궁신지화하는 인간의 자세는 극히 겸손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며 신비주의에 빠지기 보다 오히려 현실적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다석 역시 그의 다석일지에서 이같이 말하고 있다. “높 하늘의 뜻을 받아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어 얕이 차리고, 이치를 찾아 채우고, 땅을 드디고 현실에 입각하여 현실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지화다”『유영모, “매임과 모음이 아니!”, 다석일지 상(영인본) 744쪽』
끝으로 다석은 하나님과 통한 그래서 우주와 생명의 중심이 된 ‘나’를 이같이 표현했다. “길은 언제나 환하게 뚫려야 한다...비록 성현이라도 길을 막을 수는 없다...언제나 툭 뚫린 길 이 길로 자동차도 기차도 비행기도 자전거도 나귀도 말도 벌레도 일체가 지나간다. 이런 길을 가진 사람이 우주보다 크고 세계보다도 큰 길이다. 이런 길을 활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다...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가 나다. 그것은 지강지대(至剛至大)하여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고 아무도 견줄 수가 없다. 그것이 나다”『유영모, “속알”, 다석일지 상(영인본) 86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