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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곤]신학교육의 전문화와 다원화<2>

제목 / 신학교육의 전문화와 다원화
글 / 김이곤 교수(한신대 명예)
출처 / 김이곤 교수 아카이브 http://www.eekon.org/






2. 100년 전통의 한신을 내다보며: 신학교육의 다원화를 위하여




(1) 다른 분야와 제휴(提携)하는(interdisciplinary) 다원화(多元化) 교육


신학이란 본질상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세상으로부터의 강력한 “도전”(挑戰; challenge)에 직면하게 되어 있고 따라서 그 도전에 대하여 성실하게 응답(應答; response)하여야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신학은 “그리고-신학”(And-theology)이 되기를 불가피하게 요청받는다. 아마도 우리 학교로서는 지금이 그런 때이고, 마침 때맞추어, 수유리 캠퍼스의 “리모델링”(remodelling)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우리의 교육도 이제는 “리모델링”을 해야 할 때를 맞았고 그에 걸맞은 그 대안(代案; alternative)을 나는 “그리고-신학”(i.e., theology and XX)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컨대, 신학과 철학, 신학과 신화(神話), 신학과 문학, 신학과 과학, 신학과 의학, 신학과 사회학, 신학과 문화, 신학과 타종교, 등등을 말해볼 수 있다.(더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의 설정은, 예컨대, 대학원 커리큘럼에서는 아마도 6년 제도에서는 대학원 첫 학기부터, 그리고 7년 제도에서는 둘 째 학기부터 배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배려는 흔히 자주 회자(膾炙)되는 대학원 학생들의 주요 불평, 즉 “4년제 신학과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 새롭게 배울 것이 없다!”라는 불평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응답(response)이 될 것이다.

이 응답에 앞서, 또는 이 응답과 함께 기존의 신학 분야 “장르들” 사이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주는 “팀 티칭”이 또한 “그리고 신학”의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ex.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칼빈(루터, et al.)의 교회신학과 그의 성서신학” “히브리 민중사와 한국의 민중사의 비교연구” 등등, 각 분야 전공 교수님들이 다른 전공자들과 팀을 만들어 팀 티칭으로 가르칠 과목들을 만들어내고 그 과목을 선택적으로 배열해 보는 일).


“신학과 철학”“신학과 신화(神話)”와 더불어, 그 학문적 성격 때문에, 신학이 꽃피기 시작할 초창기 때부터 매우 활발하게 관계되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커리큘럼에서는 자주 등한시되어왔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수정은 매우 필요하다. 특히 신화(myth; 神話)에 대한 오해는 심각하다. 왜냐하면 신을 중심으로 한 전승 설화라는 개념의 “신화”는 그러나 “신들[끼리의]의 이야기”(pace Gunkel)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화(神話)를 모르면, 심지어는, 성서를 해석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른다. 왜냐하면 성서문학의 상당부분이 신화시적(mytho-poetical) 표현으로 케리그마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마르틴 루터는 “성서는 아기 예수를 담고 있는 구유와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성서이해에 있어서는 결정적이다). 그러므로 하여, 우리 안에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이단논쟁” (heresy trials)들이 생겨난 것도 대부분은 이 “신화에 대한 오해”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학과 철학은, “신학은 인간학이다”라는 말이 잘 암시하고 있듯이, 인간과 신에 대한 심각한 존재론적 접근이나 실존론적 접근에 의한 “경험/체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학다운 신학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주제는, “신학과 신화”라는 주제와 함께, 신학대학원 과정의 교과행정에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신학은 철학-심리학-응용심리학-목회상담학 등등의 영역을 통해 인간 삶의 “경험” 세계 속으로 들어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② 성서문학의 신화시적인 현실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에 그리고 또 신학 그 자체의 한계성 때문에 선교의 문이 더 이상 잘 열리지 않고 있는 이러한 틈새에, 예기치 못하게도, 과학(science)이 오히려 이 일을 대신하겠다고 해결사인양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 현상은 첨단 과학의 발전 속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었던 것이다. 물리학, 천문학, 생명공학과 생명과학, 의학, 등등의 분야에서는 그 학문 분야가 첨예화(尖銳化) 되면서는 더욱 그 모든 학문 스스로가 신학적이 되어가고 있음을 본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모든 학문분야는 궁극적으로는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슈바이처나 우리나라 전북 익산의 삼산의원 김신기 박사(81세, 나환자촌 한센인과 더불어 23년간 상생의 삶을 살아왔고 2009년 현재에도 활동하고 계신 분)는 분명 의사(醫師)라기보다는 오히려 “치유 목회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일 것이다.

기독교의 부패와 교회의 부패를 가져온 근원적인 문제점은 오늘의 기독교와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신학교육의 장(場)인 우리네의 신학교(들) 안에 “신학 부재의 현실!!”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 안에 있다고 하겠다. 신학(神學, theologia)은, 그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보면, <우리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테오스) 신앙의 근거를 찾는 학문적 노력(로기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신(神)신앙을 유발하는 “하나님 만남”의 체험도 없고, 그러다보니까, 그 체험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으로서의 “신학”은 더욱 없는 셈이다. 이렇게 “신학”(theo-logia)이 -진리(하나님=진리)를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추구하는 노력(the bottom-up searchings for the truth)으로서의 신학이- 저만치 외곽에 밀려나있으니까, 이와 공통된 이유(common cause, Polkinghorne의 용어)를 갖고서(!!) 진리를 그 밑바닥에서부터 사투하며 찾고 있던 “과학”(science)이 오히려 더욱 열심히 우리를 대신하고 나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인체를 들여다보고 인간의 정신구조까지도 들여다보며, 인간(humanity)이 무엇인지, 신(divinity)은 어떤 존재이며 생명과 죽음(life and death)은 무엇인지, 시간은 무엇이고 공간은 무엇이며, 유(有)는 무엇이고 비유(非有,μή ὄν)와 무(無, οὐκ ὄν)는 무엇인지, 유한(finiteness)은 무엇이고 무한(infiniteness)은 무엇인지를, 그리고 정신은 무엇이고 영은 무엇인지도 <경험에 대한 합리적 조사>(rational inquiry into all experiences)라는 방법을 가지고 인간의 신 체험세계 속으로 무한 도전을 해 들어가고”있는 것이다.(Cf. J. Polkinghorne, Science and Christian Belief, Edinburgh: SPCK, 1993)

실로, 이 방법은 17-18세기, 뉴턴(I. Newton, 1642-1727)과 나란히 동일 반열에 올랐었던 스웨덴의 천재 과학자 스베덴보리(E. Swedenborg, 1688-1772)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의 방법으로 취하였었던 그 방법, 즉 원자물리학으로부터 신비한 영의 세계로(과학자로부터 신비주의자로) 대 전이(轉移)를 해간 그 방법과는 물론 상당히 다르다. 물론, 신앙과 신학을 관념화/추상화하여 우리 인간은 몸인지 영인지, 아니면, 몸속의 영(dualism)인지, 그것도 아니면 영체(소마 프뉴마티콘, 고전 15:44; 사도 바울이 말한 영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지는 스베덴보리만큼은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인지, 그리고 이 세계는 이승과 저승(차안과 피안)으로 나뉘어 있는지 아니면 하나인지 (문학적 허구인지) 그것도 아니면 끊임없이 팽창하는 것인지(cf. 우주 팽창이론?)를 분명하게 하지 못하도록(분명하게 하는 사람은 反 신학자이거나 정신이상자로 분류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면서) 끊임없이 모든 것을 “불확정성” 속으로 몰아가는 현대 신학자들과는 다르게 이와는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을 물리학적으로 규명하려한 스베덴보리의 생각이 오히려 더 솔직한 것이나 아닌지? 그러나 콜린즈(F. C. Collins)는 “진리는 진리일 뿐, 진리가 진리를 반증(反證; disprove)할 수는 없으므로 과학적 진리와 영적 진리는 결코 충돌할 수는 없다.”(The Language of God: A Science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New York: Free Press, 2006, P. 198)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실재”를 심각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믿는 수천 명의 과학자들의 모임(ASA: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www.asa3.org)에 가입하고서 진리(=하나님)를 자기 존재의 밑바닥으로부터 추구하는 삶(the bottom-up searchings for the truth)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 사실은 우리에게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든 아니 가지든 간에, 우리들 신학자들로서는, 즉 우리의 신학이 새로워지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결코 우리의 책무를 과학자들에게 넘겨주고 우리 자신은 이 책무를 방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S. Hawking)이 그의 책 『시간의 역사』(서울: 까치, 1998) 233쪽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되새겨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우주가 무엇인가를 기술하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주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제기할 수 없었다. 반면,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자신들의 직업인 철학자들(신학자들, 필자의 삽입)은 과학이론의 진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머지않아서 소수의 과학자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폭넓은 원리로서 그 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자(신학자, 필자의 삽입), 과학자 그리고 일반인들까지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가 우리 자신과 우주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함께 토론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 물음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③ 그 무엇보다, 신학과 의학은 유전자 연구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복제”에 따른 윤리문제까지 제기하게 하였고 최근 매스컴을 통하여 많이 문제되고 있는 바, 안락사, 존엄사, 등의 문제와 함께 “삶과 죽음”에 관한 신학적 문제들이 또한 매우 급박한 신학적 현안문제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분명 “웰-빙”의 문제보다 “웰-다잉”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신학적 이슈가 되어가고 있는 이 현실은 우리를 결코 여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말하자면, 신학교육의 “전문화”와 “다원화” 문제와 함께 어우러져 이 모든 문제들은 이젠 전적으로 우리의 현안문제가 되고 있다. 이젠 “신학과 사회학”이나 “신학과 문화[학]” 문제들은 좀 낡은 주제로까지 보이게 할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오산 캠퍼스에 있는 여러 타 학문분야들과 제휴 가능한 교과들(interdisciplinary curriculum)이 모두가 동일 범주 안에 들어와 우리의 중요 숙제로 다가온다.

자주 논의되어 왔고 또 심지어는 그 논의 자체가 터부시(視)되기도 한 소위 신학과 타 종교 문제도 이젠 분명 이단논쟁을 저 멀리 밀쳐두고서라도 우리의 커리큘럼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할 때가 도래한 것 같다. 비록, “종교다원주의”라는 용어자체만으로도 뱀이나 전갈같이 취급되는 현실이라고는 하더라도, 이미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의 세계에서는 더욱이 2000년 들어서면서부터는 벌써 『예수는 없다』(서울: 현암사, 2001), 『만들어진 신』(파주: 김영사, 2007), 『예수 없는 예수 교회』(파주: 김영사, 2008)라는 책들이 빠른 반응을 보이며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예수는 없다, 335쪽 분량>는 2001년에 초판이 나온 후 4년 뒤인 2005년 1월에는 30쇄가 발행되고 <만들어진 신, 604쪽 분량>은 2007년 7월에 초판을 발행하였으나 한 달 만인 같은 해 8월에 3쇄를 찍어내었으며 <예수 없는 예수 교회, 300쪽 분량>도 한 달 만인 같은 해 12월에 3쇄를 또한 찍어내었다. 기독교 서적 출판업이 거의 가사상태라고 말하는 이런 와중에서도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책의 흥행성을 두고 비난의 농(弄)을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이러한 현상이 신학의 새로운 분발의 탈출을 촉구하는 일종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말한다.”

로버트 퍼시그


위의 글은 <만들어진 신> 맨 첫 페이지(p. 5)에 나오는 글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이젠 더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서도 우리의 자괴지심(自愧之心)은 충분히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대학(학부)의 커리큘럼과 신학대학원의 커리큘럼이, 학부 4년 과정에서는 “전문화”에 강조점을 두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다원화”에 강조점을 두어서 근원적인 개편이 이루어졌으면 하고 기대한다.



(2) 인프라 구축을 통한 엑스트라 교육활동: 수유리 캠퍼스에 “본관”과 “예배당”이 신축되었고, 여기에, 이미 지어진 “백석관”과 그리고 만수관, 효촌관, 옛 장공도서관까지 활용해 추가한다면, 이 환경에 걸 맞는 엑스트라 교육을 협의를 통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서는, 이미 있는 “교회와 신학 연구소” 이외에 “성서신학 연구소”를 증설하거나, 아니면, 하나의 <교회와 신학연구소> 산하에 <성서신학 연구부, 이론신학 연구부, 실천신학 연구부와 같은 부설 연구소>같은 것을 두어 신학연구를 “본격화”(전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 신학교육의 전문화와 다원화를 통한 신학교육을 발전육성하기 위하여서는 전임교수들과 초빙교수들로 구성된 이들 연구소들을 통한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만일 총장 직속 또는 신학대학원장 직속 <신학교육발전위원회> 같은 특별 부서를 만들 수 있다면(필자의 견해로는 가능하고도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위원회가 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육성과 각 연구소 교수들의 연구를 위한 연구비 조성을 적극적으로 감당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가 왜 이런 기구를 만들어오지 못하였는지는 잘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이러한 “대학발전 기구”를 만들어 활성화한다면(우리 학교의 신학부 정도의 규모인 경우에는 시행 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학생 전원(학부+대학원생 전원 또는 대학원생만 전원)의 교비수학(校費修學=전교생 등록비 면제)과 연구소들의 자립경영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위와 같은 <신학교육발전위원회>와 <신학연구소>의 인프라를 구축하든 않든 간에, 새 캠퍼스와 함께, 신학대학원에서는 다음의 부설기구들, 즉 <평생교육원> <신학대학원 부설 여교육자[전도사]교육원> <목사 연장교육원>(refresher course; 이 이름에 거부반응이 있는 경우 다른 이름 고안) <영성훈련원>(영성연구소 기능을 담당할 정도의 독립훈련원; 갖가지 전문적 명상훈련, 예배음악연구, 성가대 지휘자 훈련, 유치원 교사 자격훈련 및 치유상담자격훈련[자격증을 줄 정도의 법적 기구로 발전시킬 전망을 내다보며]등등), 평신도 지도자 훈련원(성서연구반, 교회법 연구반, 교회학교교사 훈련반 또는 청소년 지도반, 특히 유치부, 초등학교,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학 프로그램, 등등) 등등의 부설기구들을 반드시 고려해볼 일이다. 그 이외에 지역사회 봉사를 담당할 부서(요가, 단학, 검도, 탁구, 야간학교 등등, 옛 장공도서관을 리모델링하여 “사회문화관”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등등을 설치하여 지역과 연관을 긴밀하게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부언: 전문화 교육과 다원화 교육을 시행하려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미리 생각하여 그 해결하는 방안을 사전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심도 있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장학 시스템이 잘 가동되는 경우(학부를 포함한 전교생 또는, 대학원생들만이라도 전원 교비장학생으로 하게 되는 경우), 커리큘럼을 교육부가 정한 학점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는 방법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현행법의 학점규제를 전제하지 말고, 우선 우리 학교가 교육할 목표에 따라 커리큘럼을 먼저 만들어 놓고(위에서 언급한 전문화와 다원화를 우선하여 커리큘럼을 만들어 놓고), 그 틀이 현행법의 학점규제를 넘어갈 때는, 필수과목 우선으로 <괄호 필수학점제>(passing credit system)를 도입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4년제 대학 졸업취득 학점수가 160이었으나 나중에 140으로 낮추어졌는데, 이런 추세를 그냥 따라가기만 하여서는 신학교육의 전문화와 다양화는 물리적으로는 힘들게 될 것이기에.)




나오는 말



신학교육을 철저히 전문화하고 다원화하는 획기적 교육개혁을 수유리 캠퍼스의 새로운 조성과 더불어 성공적으로 이룩해내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균형 있게 맞추어 가야할 것이다. 우선 하드웨어의 가장 급한 과제는 수유리 캠퍼스 본관준공과 함께 일단 마련되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본관과 예배당은 신학교육의 중심부로 하고 또 백석관은 교수 연구동으로 하고 그리고 만수관(기숙사)과 효촌관은 대학원 학생 전원의 기숙을 책임질 수 있도록 리모델링하고, 그리고 나머지 구(舊) 장공도서관은 문화 활동의 센터로 분위기 있게(fashionably) 리모델링한다면, 나머지 공간은 심신(心身)의 기운을 돋우는 아름다운 자연(숲)의 공간이 되도록 조경(造景)에 전념하면 “하드웨어”문제는 우선 어느 정도는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문제가 더 힘이 드는 것인데 이 소프트웨어가 잘 갖추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1)우선 신학교육 지도자들(신학부 교수님들)께서 “새로운 소명감(召命感)”을 가지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2)그리고 이 신학지도자들이 자기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총회 산하의 온 교회들과 교회 지도자(또는 동문)들의 “기도 성원”(祈禱 聲援)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예컨대, “신학교육 주일”이 유야무야되고 있는데 이것을 재정비하여 활성화해야할 것이다). (3)끝으로는 이 전문화와 다원화의 교육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서둘러, 구체적으로 전담직원을 가진 <신학교육발전위원회>를 반드시 만들어 가동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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