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 시인이 발표하고 있다 |
김지하씨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장공과의 몇차례 만남 속에 있었던 헤프닝을 떠올리며 잠시동안 장공과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첫째는 민주화운동을 상의하고자 그가 장공의 수유리 자택을 방문했을 때였다. 허름한 런닝과 파자마 차림으로 김지하를 맞은 장공이 던진 첫마디가 “밥은? 밥부터 먹자”였다는 것이다. 김지하씨는 “그 때의 놀라움은 이미 내게 있어 큰 가르침이 됐다”고 전했다. 다름아닌 할아버지의 따뜻한 가르침이었던 것.
둘째는 YMCA 3층 찻집에서 있었던 최초의 유신 헌법 반대 선언식 때였다. 선언식 뒤 일행이 경찰에 의해 트럭을 타고 종로경찰서로 연행될 때 트럭 위 건너편에 앉아 있던 장공이 마중편에 앉아 있던 김지하에게 던진 눈빛. 김지하는 평생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 눈빛속에)지극한 연민을 봤다”며 “당시 나는 결혼 직후였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이 장공과의 추억을 회고한 데에 “생명세계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 비전을 물음에 있어 장공 목사님의 기억을 전제하는 것은 이제 기독교신학에 대해 생명의 땅 동북아시아와 한국에로의 견문이 필요함을 말하고자 해서다”고 설명했다.
본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나 기독교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시인 김지하는 그 배울점으로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에도 희망하고 투신하는 섬김 △죽음과 부활 △원수사랑과 초월 △비둘기의 순결과 뱀의 슬기의 균형 △선과 악 사이의 상호보완적 반대 등을 들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지금 참으로 파국적인 생명위기와 동서 종교간의 갈등 그리고 악질만세(惡疾滿世)의 대병겁(大病劫)과 이를 틈탄 전체주의적 에코·파시즘의 어두운 동굴 앞에 서있다”고 평가하며 장공의 사상과 함께 이를 뚫고 나갈 길을 모색했다.
앞서 지구의 생명 위기와 관련, 김지하 시인은 지난 세기부터 지구는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흙과 물과 숲과 동물들이, 공기와 사람들이 병드는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생명위기가 전면화되어 오늘에 이르러서는 수없이 많은 종(種)들이 멸종 파괴, 변질되며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과다 배출로 인한 온실가스로 온난화가 극에 달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온난화 사이사이에 간빙기(間氷期)가 겹쳐들면서 더위와 추위가 교차 생성하며 기괴한 바이러스와 전염병이 여기저기서 창궐하기 시작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또 인간 생명계의 일반에도 기괴한 변동이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불임, 불감증, 극도의 괴로감으로 인한 절대노동력 감퇴, 암, 원인 모를 병들의 속출 그리고 죽지 않는 괴생명체의 출현과 수십 종 곤충날개에서 이미 아득한 옛날에 퇴화돼 버린 날개가 다시 돋아나는 재진화 현상 그리고 스스로 생명을 죽음과 뒤바꾸는 자살(우리나라는 대학생 자살자수만 한달 평균 30명에 달하는 등 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 생명 전반의 위기 앞에 장공의 사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김지하 시인은 동서문명을 막론하고, 그 사상을 수용한 장공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가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신교의 섬김, 불교의 화엄경 그리고 십이연기법 그리고 동학 등을 연구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어 장공의 생명, 평화 그리고 자유의 사상은 생명위기 시대 기독교 비전의 구조 안에서 동아시아 유·불·선과 한국 남조선사상사의 통합에서 재발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굿간에서 출생한 예수의 지극히 낮아짐 그리고 죄없는 자의 십자가 죽음에서 개신교의 섬김을 발견할 수 있으며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심성은 연기설의 시초로 불교의 나눔 정신이 근간이 된다. 또 “‘무(無)’는 ‘공(空)’이요 ‘허(虛)’다. 무궁(無窮)이요 무극(無極)이다”는 동학사상은 도를 넘어선 인간의 욕구본능을 제어한다.
하지만 동서문명의 사상으로 인해 더욱 빛을 받게 되는 것은 “예수의 이른바 최고의 사랑”이라고 전한 시인 김지하는 “이것이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가르침에 따른 생명세계의 위기에 대한 기독교의 비전에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주최,‘생명세계의 위기와 기독교 비전’이란 주제로 한국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린 제11회 장공기념강연회에는 강당이 꽉 들어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