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세대 토착화신학자들의 과제를 명시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한영 박사(감신대 강사, 조직신학)는 잡지 <신학사상> 겨울호에 발표한 <토착화신학의 흐름과 재고>에서 제 3 세대 토착화신학자들이 전 세대 토착화신학자들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은, 신학의 내용뿐 아니라 신학자가 처한 시대를 반영코자 하는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토착화신학은 그 이름에 붙은 ‘토착화’라는 말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문제 제기에 부딪혀 왔다. 예를 들어 “정치와 사회 문제를 뒤로한 채 문화에 안주하려는 듯 보인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주의를 고수하려는 듯 보인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의 뿌리 내리기만을 고집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
그러나 이한영 박사는 이 같은 시비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윤성범, 변선환, 이정배 등 토착화신학의 대표주자들은 ‘시대와 호흡하는’ 신학을 했다고 주장했다. “신학은 시대와 장소의 반영이며 역사와 문화의 산물인데, 토착화신학 역시 그러했다”는 것.
그러면서 세 신학자-윤성범, 변선환, 이정배-의 연구를 살폈다. 이들만을 논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토착화신학자들의 사상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연속성의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으며, 위 세 사람은 그러한 의미에 부합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윤성범의 신학이 “선험적인 전이해의 신학에서 전재적인 존재론적 신학으로 전개되면서 토착문화에 대한 관심이 신유학의 성(誠) 개념으로 정착하게 되었으며”, 변선환의 신학은 “비서구화 신학의 관심에서 출발하여 종교다원주의신학으로 전개되면서 아시아 신학과의 토착화 연대와 세계의 신학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고 정리했다. 또 “그의 실천적 관심은 정치적 관심으로 확장되어 갔으며, 이 양자는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의 합류로서 종교해방신학의 제언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정배의 신학은 앞서의 신학을 계승하고 비판하면서 전개됐다. 생명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생명에 대한 낭만적 독법이 아니라 전세대의 비서구화의 관점을 계승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 3세계의 아픔을 생명의 관점에서 담아내려고 시도하였으며, 이러한 관심은 신중심적 사고에서 영중심적 사고로 전환하면서 동서양종교에서의 수행전통과의 연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 신학자가 ‘시대’를 반영한 신학을 전개하였음을 말했다. 변선환이 처한 시간적 자리는 “다원주의 사회의 자리였으며 정치적 독재에 대한 참여의 자리”였다며 “그에게 다원주의란 하나의 이념이 아니라 우리 민족, 아시아 민족, 세계의 구성원들의 해방의 목소리로 자리매김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정배의 시간적 자리는 “환경, 생태, 생명이 문제가 되는 시간의 자리였으며, 이것은 생명의 문제에 대한 낭만적 접근이 아니라 생명을 유린하는 세력들에 의해 아파하는 뭇 생명들에 대한 정치적 관심으로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상의 고찰에서 볼 때 “토착화신학의 사상사적 흐름은 결코 편협한 민족주의, 퇴행적 전통주의, 현실도피적인 문화주의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오히려 토착화신학은 민족성과 세계성을, 전통성과 전위성을, 종교성과 실천성을 함께 아우르면서 전개되었다”고 말했다. 또 그것은 “각 신학자가 처해있던 ‘상황의 자리’에서의 응답”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제 3세대 토착화신학자’들의 과제를 명시했다. 그는 “전통, 문화, 역사, 종교, 경제, 정치, 생태 등 이전의 토착화신학자들이 제시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창조적으로 계승되어야 할 문제이며, 그러므로 가난, 환경, 민주주의, 인권, 생명, 문화 등은 여전히 토착화신학이 담아내야 할 것들”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변화인 다문화, 다민족 시대로의 진입 또한 다뤄야 할 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새로운 시대’가 제시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끌어안는 토착화신학은 토착화와 탈토착화의 담론을 넘어 ‘에큐메니컬한 토착화신학’, ‘글로벌한 토착화신학’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