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수일 교수 |
최근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 충격을 주고 있다. 모방자살도 늘어나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아직도 자살을 종교적으로 죄악시함으로써, 죽은 자의 명예는 물론, 유족들의 가슴에 더 큰 상처를 주고 있는 현실이다. 자살은 죄다, 자살한 사람은 지옥에 간다, 자살한 사람에 대한 교회장례예식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주장도 자살을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정말 자살은 죄일까?
대부분의 유신론적 종교는 자살은 신에 대한 죄이며, 벌 받을 행동으로 판단한다. 까닭은 사람이 스스로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을 거둘 권리 역시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세 그리스도교 법에 따르면 자살을 기도한 것만으로도 처벌될 수 있었으며, 자살자의 교회 예식에 따른 장례식은 거부되었다. 이런 도덕신학적 교리전통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v. Aquin)에 근거하여,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생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주님이시며,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으로부터 대여 받았을 뿐, 자신의 생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퀴나스는 중세 후기, 세 가지 이유에서 자살을 반대했다: 첫째, 인간의 자기 사랑과 자기 보전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의무이다. 둘째, 인간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 셋째, 생명의 처리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게만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살의 동기가 자살에 대한 신학적 판단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곧 어떤 동기에 의해서 자살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D. Bonhoeffer)는 ‘자살의 동기의 저급성이 자살을 비난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저급한 동기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고, 고상한 동기에서 삶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자살의 동기 그 자체가 자살에 대한 신학적 판단의 기초가 못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어디에 근거해서 자살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리스도교가 자살을 거부하는 이유는 복음 때문이다. 자살에 대한 비난은 어떤 율법이나, 혹은 어떤 창조주에 대한 신앙에서부터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기쁜 소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운명의 힘의 지배를 받는 예속으로부터 이미 해방되었고, 우리 자신의 죄의 짐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우리를 구원하신 분에게 속해 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때부터 육을 따라 살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6 이하)이다. 삶이란 하느님의 은총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살의 원인은 다양하지만(생활고, 병고, 비관, 염세, 가정불화, 양심의 가책, 결백의 주장, 배신감, 실연 혹은 자발적 안락사 등), 자살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살한 사람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자살한 사람은 이미 자살을 통하여 윤리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거운 상처를 주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구원의 은총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적 인간이 취할 마지막 선택이 아니다.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생명이해는 인간이 살 권리만이 아니라 죽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한다. 삶은 권리만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만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삶은 권리만이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의도대로 끝맺을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자살의 동기가 사회적 배경을 가진 것이라면, 자살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가 나누어 짊어져야 한다. 자살을 강요한 필연적인 개인적,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무관심에 대해서도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자살이 죄냐 아니냐,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가느냐 아니면 지옥에 가느냐는 질문은 교리적, 신학적 질문은 되지만, 윤리적 질문은 될 수 없다.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자살자의 결단은 너무 쉽게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적 조건을 극복할 책임과 노력을 나누어 가진다. 이것이 자살자의 심리적 상황을 분석하고 책임을 자살자 자신에게 돌리거나, 자살은 죄라는 단순한 종교적 신념을 설교하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가 취할 태도이다.
채수일 교수(한신대학교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