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궁극적실재,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수 없다”

씨알재단 11월 월례모임, ‘함석헌과 종교’ 주제 특강

“신비주의 전통에서는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나 문자로 표현된 것에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9일 열렸던 11월 씨알사상 월례모임에서 오강남 교수(리자이나大 종교학 명예)가 ‘함석헌과 종교’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오 교수는 신비주의적 관점으로 함석헌 선생의 사상에 접근했으며, 그같은 관점에서는 문자주의에 갇히지 않고 타종교를 배척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오 교수가 말하는 신비주의란 초자연적 현상이 아닌,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종교적 체험을 목표로 하는 것(Mystik),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부흥회 도중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 인간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비적 체험은 쉽게 말이나 글로 표현되지가 않는다. 오 교수는 美 종교심리학자 윌리엄제임스의 말을 빌어 “신비체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궁극 실재나 진리는 말로 표현하 수 없으므로 문자적인 뜻에 사로잡히지 말고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은 함석헌 선생의 사상에도 나타난다. 함 선생은 “경전의 생명은 그 정신에 있으므로 늘 끊임없이 고쳐 해석하여야 한다. 소위 정통주의라 하여 경전의 글귀를 그대로 지키려는 것들은 역사의 행진에서 버림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오 교수는 “함 선생의 이러한 가르침은 문자주의를 극복함으로 종교의 진수에 접하라는 권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성서를 읽되 조선인들에게 성서가 줄 수 있는 더 깊은 뜻을 찾아내려고 했다”며 “그는 종교적 진술이나 예식을 상징적으로 은유적으로 읽었고, 문자주의를 극복할 때 신앙이 완전한 데 이를 수 있다고 보셨다”고 전했다.

인간의 신비적 체험이 말과 글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면, 인간이 체험한 그 실재 즉 ‘궁극적 실재’를 말과 글로 서술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 교수는 “신비주의적 전통에서는 궁극적 실재가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말과 문자로 표현된 것에 절대적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석헌 선생도 이와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우리의 생각이 좁아서는 안되겠지요. 우주의 법칙, 생명의 법칙이 다원적이기 때문에 나와 달라도 하나로 되어야지요.  사람 얼굴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아요?  생명이 본래 그런 건데, 종교와 사상에서만은 왜 나와 똑 같아야 된다고 하느냐 말이야요.  생각이 좁아서 그렇지요.  다양한 생명이 자라나야겠는데....”

오 교수는 이런 견해를 다종교 현상에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어떤 경전이나 사상도 완벽하게 궁극적 실재를 구현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많은 종교의 신도들이 문자주의적, 교리 중심적, 기복주의적, 자기중심적, 배타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저는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는 결국 신비주의적 차원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한편 오 교수는 “다석 류영모 선생님이나 신천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종교학회(AAR)에서 씨알사상 연구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지금까지는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지난 여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철학자대회에서 그들의 사상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있어 앞으로 기대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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