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국의 가난> 표지 |
‘돈, 많이 벌고 싶다’라는 홍보 문구를 단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다. 기복신앙을 버리고 깨끗한 부자가 되라고 설파하는 이 책이 ‘틀렸다’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래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건 확실하다. 사회에 만연한 가난의 문제를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부자 돼라’고 말하는 한 목사로부터 한국교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신간 <한국의 가난>(한울아카데미 펴냄)은 기독교 지성인들이 꼼꼼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900만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가난의 문제가 얼마나 어둡고 짙은 것인가를 일깨워주며 한국교회의 할 일을 자각시킨다.
현재 우리나라의 빈곤율은 15%를 넘어섰다. 6~7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왜 빈곤한가? 팔자 탓, 게을러서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구조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근로 빈곤층’의 문제로서 이들은 산업구조의 변화와 노동시장의 불안정 속에서 양산되는 저임금 노동자층이다. 이들의 빈곤은 다시 그들의 부양하는 노인이나 아동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근로 빈곤층의 60~70%는 여성이다. 여성 가구주의 비율이 20%를 넘지만 아직도 여성의 노동은 부업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그것보다 적으며, 육아, 간병, 가사 등 집안일은 여성이 일에 몰두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여성 빈곤층보다 더 힘든 계층이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이다. 노인, 장애인, 만성 및 중증질환자가 있는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가난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야말로 전통적인 빈곤층에 속하는 이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고 그래서 그 대책도 발전해왔지만, 사회에서 여전히 가난한 이웃의 전형으로 남아있다. 이들을 지원해야 할 공공부조제도는 비현실적인 잣대로 도움이 절실한 대상자를 외면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사회적으로 크게 우려할 만한 가난이 있다. 바로 부모가 가난해서 자식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나,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 없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나마 예전에는 ‘교육’이 가난의 세습을 탈출하는 방편으로 효과적으로 작용했지만, 근래 들어 교육은 오히려 빈곤 세습을 고착화하는 핵심 원인이 되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가난에 따른 차별을 겪기도 한다.
이렇듯 ‘가난’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사회에서 가난은 ‘개인의 죄’ 쯤으로 치부되고 있을까. 저자는 이 사회에 만연한 ‘자수성가의 신화’가 가난의 문제를 올바로 보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빈곤층이 15%가 넘는데도 가난은 당사자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보호받을 권리는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가난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세 사람의 협동작업으로 저술되었다. 김수현(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부교수)은 철거민, 노숙인 문제 등을 다루며 빈곤 문제를 몸소 체험하며 연구했고, 이현주(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와 손병돈(평택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은 각각 차상위 빈곤계층과 노인 빈곤문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이들은 외국의 빈곤 문제를 다룬 서적은 넘쳐나도 ‘한국’의 빈곤 문제는 전문가들의 과제 정도로만 다뤄지고 있다며, “한국의 빈곤 문제를 일반 대중도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다”고 밝혔다.
1부에서는 빈곤의 뜻과 쟁점, 현주소를 다뤘고, 2부에서는 노인 빈곤, 노숙인 빈곤, 탈북자와 이주여성의 빈곤, 주거 빈곤 등 가난의 여러 모습을 그렸다. 3부에서는 빈곤의 이유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다뤘으며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빈곤 극복의 길을 정책적 관점에서 모색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의 꿈을 감히 ‘빈곤 극복’이라고 정하자”고 한다. 한국교회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총 310쪽 ㅣ 2만 3천원